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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일본 남성들의 ‘아빠 육아휴가’ 권리 찾기

중앙일보 2015.12.26 00:03 종합 30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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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헌
도쿄 특파원

2010년 3월 일본 도쿄 분쿄(文京)구 청사. 나리사와 히로노부(成澤廣修·49) 구청장이 기자회견 도중 폭탄선언을 했다.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2주가량 육아휴가를 쓰려고 합니다.” 당시 44세 남성 구청장의 발언에 기자들은 놀란 표정이었다. 일본에서 선거로 뽑힌 남성 자치단체장이 유급 육아휴가를 쓴 전례가 없었기 때문이다. 분쿄구 남성 공무원의 육아휴가 사용률도 0%였다.

 나리사와는 복잡 미묘한 시선들을 뚫고 회견을 계속했다. “결혼하고 9년간 아이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힘겹게 얻은 첫아이인 만큼 함께 있는 시간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러면서 들뜬 표정으로 덧붙였다. “아내가 아이를 어떻게 돌봐야 할지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아빠로서 육아의 기쁨은 물론 어려움과 고통도 나누고 싶습니다.”

 애절하면서도 당찬 초보 아빠의 육아휴가 선언에 누구도 이의를 달지 못했다. 그는 본인이 솔선수범하면 남성 직원들이 맘 편하게 휴가를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예정대로 육아휴가를 다녀왔고 3선에 성공하며 8년째 구청장으로 일하고 있다. 이후 유자키 히데히코(湯崎英彦·50) 히로시마(廣島)현 지사와 스즈키 에이케이(鈴木英敬·41) 미에(三重)현 지사 등 다른 남성 자치단체장들도 육아휴가를 떠났다.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 일본에선 남성 육아휴가를 적극 권장하고 있다. “육아를 하지 않는 남자를 아빠로 부를 수 없다”는 캐치프레이즈까지 등장했다. 하지만 대부분 직장과 상사의 눈치를 살피느라 정당한 권리를 포기한다. 실제 휴가를 쓴 남성은 2%대에 불과하다. 후생노동성이 남성 육아휴가를 처음 실시하거나 관련 매뉴얼을 정비한 기업에 각각 30만 엔(약 290만원)의 보조금을 주고 있지만 효과는 미미하다.

 최근 집권 자민당의 남성 국회의원이 ‘아빠 육아휴가’에 다시 불을 지폈다. 주인공은 교토(京都) 제3구의 미야자키 겐스케(宮崎謙介·34) 중의원 의원. 지난 2월 자민당 가네코 메구미(金子?美·37) 중의원 의원과 결혼했다. 내년 2월 첫아이가 태어나면 1~2개월 육아휴가를 신청하겠다고 밝혔다. 일본 국회에서 남성 의원의 첫 육아휴가다. “아이는 부부가 함께 키워야 합니다. 육아에 동참하면 보다 현실적인 정책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미야자키는 동료 남성 의원 10여 명과 함께 육아휴가 연구회도 발족시켰다.

 자민당 내부 반응은 엇갈린다. 다니가키 사다카즈(谷垣禎一) 간사장은 “육아휴가는 고용주와 피고용인 관계에서 규정되는데 국회의원은 그런 관계가 아니다. 긴박한 국면에서 1표에 의해 법안 통과 여부가 결정되는데 어떻게 할 것인가”라며 부정적인 의견을 나타냈다. 반면 여성 중진인 노다 세이코(野田聖子) 전 총무회장은 “훌륭한 일이다. 윗사람들이 뭐라고 해도 잘 극복하고 아빠의 권리를 찾길 바란다”고 응원했다.

 2016년 희망찬 새해엔 한국에서도 용기 있는 아빠들이 많이 나오길 기대한다. 물론 출산과 육아 환경 개선을 위한 정부와 기업의 노력이 선결 과제다.

이정헌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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