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분수대] 연말앓이

중앙일보 2015.12.26 00:02 종합 31면 지면보기
기사 이미지

전수진
정치국제부문 기자

이게 다 연말 때문이다.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애틋해지면서 헛헛해지는 마음 말이다. 교통 체증 때문에 현실에선 짜증 유발자에 가까웠던 서울역 고가도로도, 막상 폐쇄된다고 하니 왠지 섭섭하다. 때로 휴식처로 삼았던 종로구의 작은 영화관 시네코드 선재가 폐관했다는 소식에도 마음이 어지러웠다. 그러고 보니 핸드드립 커피를 머그잔에 정성스레 담아내던 동네 카페도 얼마 전 편의점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던가. 왠지 억울하다. 현재를 과거에 빼앗기는 느낌이 들어서다.

 작가 고(故) 박완서 선생은 이런 심술에 일침을 가한다. 에세이 모음집 『호미』에서 선생은 어린 시절 추억이 담긴 종로서적의 폐점을 이렇게 추모했다. “내가 정말로 종로서적을 사랑했다면 다소 불편하더라도 사줬어야 하지 않을까. 나 아니라도 누가 하겠지 하는 마음이 사랑하는 것을 잃게 만들었다. 관심 소홀로 잃어버린 게 어찌 책방일까.” 그러고 보니 내가 억울해했던 것도 그간 내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때문이다. 머리로만 생각하고 그 극장으로, 그 카페로 몸을 움직이지 않았던 내 탓이다.

 추억 소환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 사람들이 유난히 열광하는 현상은 돌아갈 수 없는 시절에 대한 애틋함으로 설명된다. 책임을 져야 하는 지금 이 순간 현재보다 내가 어찌할 도리가 없는 과거가 아름답게 채색되기 마련이다. 드라마 속 석유곤로나 버스 회수권이 88년 당시에도 그리 소중했을까. 오히려 비루한 현실의 상징에 가까웠을 터다. 사라져 버린 것을 추억이란 이름으로 포장해 내어 놓으니 열광의 대상이 된다. 훗날, 2038년께 되면 ‘응답하라 2015’를 보며 우리는 작금의 힘든 현실을 추억이란 이름으로 그리워하고 있겠지.

 영어 단어 ‘nowhere’를 사전은 “아무 데도 없다, 어디에도 없다”로 정의한다. 하지만 잘 뜯어보자. 이 단어는 ‘no’와 ‘where’의 결합일 수도 있지만 달리 보면 ‘지금’을 의미하는 ‘now’와 ‘여기’를 뜻하는 ‘here’의 만남이기도 하다. ‘아무 데도 없다’가 사실은 ‘지금 이 순간, 바로 이곳’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 흥미롭지 않은가. 마음먹기에 따라 삶이 달리 보일 수 있다는 얘기라고 멋대로 해석하고 용기를 얻어보면 어떨까.

 어찌 보면 연말이 있어 다행이다. 새로운 현재를 위해 다시 심호흡하는 계기가 되니까 말이다. 2015년을 과거로 보내며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해주면 어떨까. ‘수고했어, 올해도’. 그러곤 최선을 다하자. 지금 이 순간, 바로 이곳에.

전수진 정치국제부문 기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