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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히말라야' 이석훈 VS '대호' 박훈정…대작으로 맞붙은 두 감독

중앙일보 2015.12.25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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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라희찬(STUDIO 706)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히말라야’(12월 16일 개봉)는 혹독한 촬영 환경에서 만들어진 ‘극한 체험’의 영화다. 등반 대원들이 고산 지대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며 발걸음을 힘겹게 이어가는 첫 장면부터 제작진의 고생이 객석에 고스란히 전해진다. 세트나 CG(컴퓨터 그래픽)에 기대지 않은, ‘진짜’ 풍광을 담으려는 제작진의 진심이 있었기에, 동료 박무택 대원(정우)의 시신을 수습하러 고난의 길을 떠난 엄홍길 대장(황정민)과 휴먼 원정대의 스토리가 더 큰 감동으로 다가올 수 있었다. 이석훈(43) 감독은 “원래는 히말라야 해발 7000m까지 올라가고 싶었지만, 여건상 4300m에 만족해야 했다”며 산 너머 산이었던 촬영 과정의 뒷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정현목 기자 gojhm@joongang.co.kr 사진=라희찬(STUDIO 706)

 
연출 제안을 받았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
“‘해적:바다로 간 산적’(2014, 이하 ‘해적’)의 후반 작업을 하던 중 제작자인 윤제균 감독으로부터 제안을 받았다. 다른 감독이 준비하고 있었는데, 배우 캐스팅이 난항을 겪으며 진척이 안 되던 상태였다. 황정민이 출연을 결정하면서 다시 힘을 받게 돼 다른 감독을 물색하고 있더라. 산악영화에 대한 편견도 있고, ‘해적’에 이어 또다시 힘든 영화를 찍는 게 부담스러워 거절하려 했다. 하지만 윤 감독과 황정민이 나를 선택해 줬는데 안 하는 건 도리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의리가 작용했다는 말인가.
“흥행작 ‘해적’이 개봉도 안 한 상태에서 ‘댄싱퀸’(2012)을 함께 했다는 경험만으로 나를 택한 것 아닌가. 무척 고마웠다. ‘해적’을 하며 CG가 많이 들어가는 영화에 대한 자신감도 생긴 상태였다.”
실화를 다룬 영화여서 부담이 컸을 텐데.
“다 아는 이야기를 왜 영화로 만드느냐, 실화보다 더 감동적일 수 있겠냐는 지적이 있었다. 게다가 실화를 돈벌이에 이용하는 것 아니냐는 말을 들을까봐 상당히 조심스러웠다. 진심을 다해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촬영장엔 늘 긴장감과 엄숙함이 감돌았다.”
어떻게 엄 대장과 유가족의 허락을 얻어냈나.
“엄 대장은 10년 전 윤 감독이 처음 접촉했을 때는 거절했다. 다른 영화사도 거절당했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엄 대장이 영화를 만드는 게 고인들의 명예를 위해 좋을 수 있겠다고 생각을 바꾸고, 윤 감독의 JK 필름에 전화를 건 게 영화의 출발점이었다. 유가족 문제도 엄 대장이 앞장서서 해결해 줬다.”
캐릭터 구축이나,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 어느 정도 극화가 필요했을 텐데.
“내가 감독을 맡은 뒤 받아 본 초반 시나리오는 너무 사실에 가까웠다. 관객이 몰입감을 갖고 볼 수 있으려면 유머와 긴장감·감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엄 대장의 허락 하에 원래 시나리오를 많이 바꿨다. 심각한 부상 때문에 은퇴한 엄 대장이 후배 박무택의 죽음을 접하고 다시 산에 오른다는 게 대표적인 극화다. 그렇게 살을 붙이지 않고선 원래 시나리오가 너무 밋밋해 영화로 만들기 어려웠다.”
또 어떤 대목을 보탰나.
“엄 대장과 박무택이 만나 형제처럼 가까워지는 과정을 코믹하게 극화했다. 캐릭터 구축을 위해서도, 관객이 산악영화에 편하게 접근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도 필요했다. 둘이 칸첸중가 정상에 오르기 전 비박(등반 도중 야외에서 밤을 지새는 것)하는 건 사실이지만, 히말라야 16좌에 함께 오르기로 약속하고, 엄 대장이 박무택에게 돌아가면 헤어진 여자친구 수영(정유미)과 잘 해 보라고 충고하는 대화 내용은 극화다.”
박무택의 아내가 된 수영이 휴먼원정대의 베이스 캠프까지 따라간 것 또한 사실과 다르다.
“많이 고심했던 부분이다. 원래 시나리오에선 휴먼원정대가 박무택의 시신을 끌고 내려오는 게 너무 힘들고, 자칫 또 다른 희생자가 나올 수도 있어 베이스캠프에서 엄 대장에게 시신을 두고 그냥 내려오라고 지시한다. 엄 대장은 그럴 순 없다고 계속 거부하다가 결국 돌무덤을 만들어주고 하산한다는 결말이었다. 다큐멘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내용이다. 영화적으론 부족한 결말이라 생각했다. 엄 대장의 포기를 비장하게 만들어 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그게 아내 수영이었다. ‘오빠가 산에서 내려오고 싶지 않은가 봐요’라며 오열하는 아내의 결단을 누가 거역할 수 있겠나.”
그런 설정이 너무 신파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그렇게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신파인지 아닌지는 관객이 판단하는 것 아닌가. 시나리오를 각색할 때 내가 내놓은 중요한 아이디어 중 하나였을 뿐이다. 다들 좋다고 판단했다.”
히말라야 해발 4300m까지 올라 촬영했는데, 그런 ‘고난’의 길을 택한 이유는 뭔가.
“시간만 허락된다면 더 올라가고 싶었다. 더 좋은 그림이 나올 테니까. 하지만 배우와 스태프 중 10%가 고산병을 앓고 있는 상황에서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처음에 시나리오를 접했을 땐 7000m까지 올라가서 찍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힘들게 찍지 않고서 ‘진정성 있는 영화니까 잘 봐주세요’라고 말할 순 없지 않나. 편안한 환경에서 이 영화를 찍는 것 자체가 위선이라 생각했다.”
촬영하면서 위험했던 순간도 있었겠다.
“늘 위험이 상존했다. 주인공이 추락하거나, 눈사태에 휩쓸리는 액션 장면을 찍은 국내 촬영장이 더 위험했다. 강원도 영월의 채석장에서 찍다 보니 낙석에 맞아 다친 사람도 있었다. 프랑스 몽블랑에서 찍을 땐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악천후 때문에 진짜 조난당할 뻔도 했다.”
박무택이 크레바스(빙하의 갈라진 틈)에 빠지는 신을 굳이 실제 크레바스에서 찍어야 했나.
“기존 산악영화의 크레바스 신은 세트 촬영과 CG로 만들어 가짜란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고 실제로 찍기엔 너무 위험한 딜레마에 빠졌는데, 예산이 증액된 데다 올 초 영월 날씨가 춥지 않아 찍지 못한 분량이 많이 생기면서 몽블랑에도 가게 됐다. 장소 헌팅 때 봐둔 촬영에 적합한 크레바스가 있어 거기서 촬영했다. 줄 하나에 의지해 용기 있게 크레바스에 들어간 정우에게 감사하다.”
‘이 영화를 왜 한다고 했을까’란 회의가 ‘하길 잘했다’란 확신으로 바뀐 때는 언제였나.
“촬영 초반엔 황정민과 눈만 마주치면 ‘왜 우리가 이걸 한다고 했을까’란 이야기를 했다. 고된 것도 있었지만, 외로움과 중압감이 우리를 괴롭혔다. 앞으로 찍어야 할 것도 말 그대로 산 넘어 산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황정민이 울면서 전화했다. 캐릭터와 영화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야겠다는 반성과 함께, ‘나도 힘든데 감독은 오죽하겠냐’며 위로를 건넸다. 그리곤 다음날부터 나를 극진히 모시더라(웃음). 인생의 큰 교훈을 얻은 느낌이었다. 그때부터 이 영화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 대장과 박무택이 나란히 앉아 비박하다가 아침을 맞는 장면은 공들여 찍은 느낌이 들었다.
“엄 대장이 술자리에서 그 경험을 이야기할 때, 엄청난 무용담을 듣는 느낌이었다. 나도 그런 체험을 했으면 좋겠다는 동경까지 생겼다. 그 느낌을 관객과 공유하고 싶어 영화에 넣었다. 그 장면만 있으면 이들이 왜 산에 오르는지 논리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없지 않나. 정말 소중한 장면이다.”
엄 대장은 영화를 보고 어떤 말을 했나.
“VIP 시사 때 보고선 ‘내가 10년 전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들었다. 고생 많았다’면서 어깨를 두드려주셨다. 영화를 통해 사람이 가장 소중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죽은 사람이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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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여다연(STUDIO 706)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대호’(12월 16일 개봉)는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비장한 진혼제다. ‘신세계’(2013) 이후 2년 만에 신작을 발표한 박훈정(41) 감독은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와 그의 거울상인 호랑이 사냥꾼 천만덕(최민식)을 통해 기억 속에서 잊혀졌던 소중한 가치를 불러낸다. 최민식의 표현대로 ‘충무로의 이야기꾼’인 박 감독은 “‘대호’는 운명 같은 작품”이라고 말했다. ‘악마를 보았다’(2010, 김지운 감독) ‘부당거래’(2010, 류승완 감독)의 각본가로, 한국형 누아르 ‘신세계’의 연출로 각광받은 그는 세 번째 연출작 ‘대호’로 CG 호랑이와 인간이 교감하는, 한국영화에선 전인미답의 길을 개척했다. 인간과 자연, 욕망의 시대에 저항하는 인간 그리고 돌고 도는 업보에 대한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품고 있는 영화 속에서 박 감독을 만났다.

김효은 기자 hyoeun@joongang.co.kr 사진=여다연(STUDIO706)

 
시나리오를 쓸 때만 해도 영화화될 줄은 몰랐다고 들었다. 본인이 연출을 하게 될 줄은 더 몰랐고.
“2009년에 제작사에 팔기 위해 썼던 시나리오다. 소재의 측면에서 끌리는 부분은 있었지만, 일단 제작자들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를 써 본 것이다. 솔직히 내 취향과 정반대에 있는 이야기라 끝까지 연출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데 배급사인 NEW도 그렇고, 민식이 형(박 감독은 ‘신세계’에서 함께 작업한 최민식을 형이라 불렀다)도 ‘당신이 썼으니 당신이 연출하라’고 몰아붙였다. 나는 욕도 하고 폭력도 있는 ‘청불(청소년 관람불가)’ 영화를 해야 마음이 편한 사람이다. 그런데 ‘대호’는 큰 예산을 다루는 작품이고, 전 연령대를 고려해야 하는 것은 물론 은유가 많은 영화라 이야기를 풀어가는 게 만만치 않았다.”
안 그래도 ‘혈투’(2010) ‘신세계’ 등 전작과 정말 다르더라. 그동안 인간과 인간 사이의 비릿한 욕망과 팽팽한 갈등을 그렸는데, ‘대호’는 자연·산·호랑이가 나온다. 자연이 나오면 교훈적이고, 착한 영화가 될 수 밖에 없지 않나.
“착한 영화 맞다(웃음). 사실 나는 ‘대립의 이야기’를 해 온 사람이다. 내 성향이 그렇다. 어차피 인생은 혼자고 다 각자다. 서로 대립하는 생각이 혼재돼 있고 그걸 서로 극복하거나 부딪치면서 사회 현상이 일어나고 드라마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대호’는 대립이 극명하지 않고, 결국 ‘공존’을 이야기한다. 전래 동화나 설화 같은 이야기이지 않나. 나는 여기서 ‘판의 미로-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2006,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를 떠올렸다. 내가 보면서 눈물을 흘린 유일한 영화다. 무거운 시대의 ‘어른 동화’처럼 만들고 싶었다. 전작과는 다른 이야기지만 같은 방식이 동원됐다고 해야 할까.”
‘신세계’로 흥행과 비평에서 인정을 받은 뒤에 ‘대호’를 선택한 건 모험일 수 있는데.
“솔직히 말해서 돈을 벌려면 지금 관객이 딱 좋아할 만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 지금 관객은 대립이 극심한 이야기를 좋아한다. 극심하면 극심할수록 잘 팔린다. 결국 내 선택이었다. 관객이 내게 기대하는 영화를 할 것인가, 아니면 그에 반하는 영화를 할 것인가. ‘신세계’ 이후에 나도 그렇고, ‘명량’(2014, 김한민 감독)을 끝낸 민식이 형이나 제작사(사나이픽쳐스) 모두 분위기가 좋았다. 그래서 새로운 시도를 해보자고 뜻이 모아졌다. 너무 빨리 영화를 소비하는 시대에 곱씹을 수 있고 해석이 열려 있는 영화, 누군가에게 레퍼런스가 될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보자는 마음이었다.”
 
보통 자연과 인간의 대결을 그린 영화를 보면 양자 구도가 흔하다. ‘대호’도 대호와 대호를 잡으려는 자, 즉 일본에 부역하는 포수 구경(정만식)의 대결로 그릴 만한데 여기에 대호를 잡지 않으려는 자, 만덕을 주인공으로 삼각 구도를 만들었다.
“캐릭터만 놓고 보면 만덕은 영화의 주인공으로 적합지 않다. 주인공은 목적과 욕망을 갖고 이야기를 추동해야 한다. 그런데 만덕은 욕망이 거세된 인물이다. 세상 자체와 단절되어 있고, 아들을 보호하는 것 외에 목적이 없는 사람이다. 정말 상업영화로 재단하려면 만덕을 배제하고, 구경과 대호만 놓고 둘의 추격 구도를 스릴과 서스펜스를 넣어서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대호’는 처음부터 그런 스릴러가 아니었다.”
최민식이 인터뷰에서 “만덕은 평범한 민초로서 자신이 쌓은 업을 지고 사라지는 인물이며 산에 대한 예의를 다한 것”이라고 했던 게 기억난다.
“만덕은 전통적인 가치관을 지닌 인물이다. 사실 만덕이 대호를 쫓다가 오발로 아내를 죽였을 때, 일반 사람이라면 복수하러 나서야 마땅하다. 그런데 만덕은 그것을 초월한다. 자신의 업보라 생각한다. 과거에 당겨서는 안 될 방아쇠를 당겼고, 잡아서는 안 될 호랑이를 잡은 거다. 나는 만덕을 통해 대호를, 대호를 통해 만덕을 봐주길 바랐다. 두 존재는 서로에 대한 업으로 엮여 있는, 갈라놓을 수 없는 운명의 관계다. 시나리오엔 포수가 되고 싶어하는 아들 석(성유빈)에게 만덕이 ‘불을 당기면 그에 따른 업이 생기기 마련’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었다. 민식이 형이 그 대사를 좋아했는데, 너무 직접적이고 ‘TV 문학관’스러워서 ‘눈빛으로 이야기하시면 안 될까요?’라며 생략했다(웃음).”
영화가 139분이라 다소 길다는 반응도 나온다.
“원래 시나리오는 2시간 10분 남짓한 이야기였다. 그런데 뭔가 아쉽고 결말에 힘이 없는 거다. 만덕과 대호가 닮았다는 것을 관객에게 설득시키려면 만덕의 과거사를 잘 그려줘야 한다고 봤다. 주변 인물의 설명으로 넘어갈 수도 있지만, 하나하나 꾹꾹 눌러 담으면서 느리게 가야 유장하게 보일 것 같았다. 거만한 생각이지만 우리가 상품을 만들긴 하나 그게 작품이기도 하다. 짧은 버전은 누가 찍어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또 최민식이란 배우가 스크린을 꽉 채우는 모습을 더 많이 보고 싶었다.”
1920년대 일제강점기가 배경이다. 당시는 ‘민족 수탈의 시대’로 기억된다. 그런데 오히려 이 시기를 욕망의 시대로 진입한 시기로 읽은 것 같다.
“물론 일본은 조선을 많이 수탈했다. 그런데 일본이 수탈하고 남은 것을 또 수탈하는 것이 조선인이었다. 사실 일제강점기 이전엔, 사냥꾼을 예로 들자면 올무를 쓰지 않는 시대였다. 무엇이 걸릴지 모르니까. 새끼 딸린 어미도 잡지 않았다. 어미를 죽이면 새끼는 기껏해야 늑대밥이 되니까. 잡을 만큼만 잡는 시대였다. 그런데 일제시대엔 기존의 신분 질서나 가치관이 전부 흔들렸다. 특히 조선에 상주하던 일본의 권력자들은 조선에서 일본으로 돌아갈 때 호피 같은 사치품을 꼭 가져갔다. 조선인에게 호랑이 한 마리는 복권에 당첨되는 거나 다름없었다. 먹고 살기 위해 필요한 만큼 사냥하는 게 아니라, 돈이 되기 때문에 사냥하기 시작한 것이다. 다른 직업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무엇이 민초를 그렇게까지 내몰았을까.
“당시 백성들은 조선이란 나라와 자신을 동일시했다. 그런데 조선 왕실과 고위 관료들이 나라를 넘기고, 호의호식하는 걸 보면서 혼란이 왔을 것이다.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되는구나. 저렇게 해도 천벌을 받지 않는구나. 나는 이 시기가 우리 민족으로 봤을 때 개인적 욕망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린 시대라고 본다.”
어찌 보면 천민 자본주의의 시작인 거다.
“그렇다. 과정은 필요 없고 결과만 좋으면 무조건 괜찮은 시대가 도래한 거다.”
그래서 이 영화의 결말을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대호와 만덕의 마지막 선택은 한 시대의 종말이나 다름없다. 이것은 자연의 패배인가, 아니면 자연의 역습인가.
“자연에 대한 순응인 거다. 결말을 파국이나 비극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건 해피엔딩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더 이상 살아남을 수 없는 존재다. 더 산다면 분명히 더 상처받고 시대와 불화하다가 죽게 될 것이다. 이미 모든 것을 잃었고,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존재다. 대호와 만덕은 영화 내내 단 한 번도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했다. 마지막 선택만은 자신들이 했고, 그것은 스스로 명예와 존엄을 지킨 행위다. 결국 일본 고관 마에조노(오스기 렌)는 모든 권력을 동원해도 절대 대호를 얻지 못한다.”
모든 감독은 평생 여러 작품을 찍지만 결국 하나의 이야기로 귀결되는 것 같더라.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일까.
“‘대호’를 끝내고 찬찬히 다시 봤는데 내가 ‘정서적으로 어두운 사람’이란 걸 느꼈다. 차기작으로 지독하게 악랄한 여성이 주인공인 ‘마녀’(가제)를 준비 중인데, 그 역시 시나리오를 다 쓰고 보니 또 결론이 비슷하더라. 결국 사회를 움직이거나 지탱하는 힘은 선의에 의한 행동이 아니라 이기적인 행동에서 나온다는 것, 악의가 선을 구축하는 이야기. 그게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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