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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들의 글루미 크리스마스 "케빈아 올해도 너뿐이다"

중앙일보 2015.12.25 16:12
“내 생일도 아닌데 크리스마스라고 설렐 게 뭐 있겠어요.”

회사원 김명준(34)씨는 올해 크리스마스를 집에서 혼자 보낸다. 주말까지 계속되는 이번 휴일엔 밀린 ‘미드(미국드라마)’나 실컷 볼 생각이다. 김씨는 “어차피 밖에 나가봤자 사람만 많고 돈만 쓴다”며 “소중한 휴일이긴 하지만 크리스마스가 다른 휴일보다 더 특별하게 느껴지진 않는다”고 말했다.

루돌프 탄 산타 할아버지를 기다릴 나이는 지났지만 올해 크리스마스를 맞는 2030세대들의 반응이 유독 시큰둥하다. ‘솔로라서’ ‘사람 많은 게 싫어서’ ‘종교가 불교’ 등 표면적인 이유는 각양각색이다. 여기에 등록금 걱정ㆍ취업 걱정ㆍ생활비 걱정 등 보다 현실적인 고민이 더해져 이들을 크리스마스에 더 무뎌지게 만들었다. 결혼정보회사 가연이 운영하는 모바일 결혼정보서비스 ‘천만모여’가 최근 20~30대 미혼남녀 365명(남 195명ㆍ여 17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19.7%만이 ‘크리스마스가 설렌다’고 답했다.

연인이 있어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로맨틱한 데이트를 꿈꾸며 밖으로 나가면 ‘바가지 물가’가 기다리고 있다. 취업준비생 강모(27)씨는 “여자친구와 특별한 하루를 보내고 싶어도 크리스마스에는 어딜 가든 비싸서 오히려 더 할 게 없다”며 “여자친구도 크게 기대하지 않는 눈치”라고 전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일찌감치 밖에 나가길 포기한 ‘방콕족’도 많다. 페이스북ㆍ트위터 등 소셜미디어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케빈 예찬론’이 이어졌다. 올해도 각 방송사에서 영화 나홀로집에ㆍ해리포터 등을 연속 편성했기 때문이다. 한 트위터 사용자(@HN****)는 “케빈아 너뿐이다. 올해도 너랑 보내는구나”라고 적었다. 또 다른 사용자(@91******)는 “나홀로집에와 해리포터는 불멸이다”고 말했다.

이마저도 사치인 이들은 휴일을 반납하고 ‘일’을 택했다. 구인ㆍ구직 업체 알바천국이 대학생 340명에게 ‘크리스마스 계획’을 물은 결과 ‘아르바이트를 하겠다’(29.4%)는 응답이 1위를 차지했다. 대학생 이유진(25)씨는 친구와 함께 한 대형마트에서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판매하는 단기 알바를 한다. 이씨는 “내년 등록금을 조금이라도 보태려면 이런 날도 허투루 쓸 수 없다”고 말했다.

몇몇 아르바이트 업체 사이트에는 크리스마스 몇 주 전부터 ‘단기 알바’가 검색어 1위를 차지했고, 크리스마스 당일 아르바이트를 찾는 사람들의 문의가 쏟아졌다. 일일산타나 행사 보조 등 인기 아르바이트의 경쟁률은 몇십대 일로 치솟기도 했다. 24일부터 단기 아르바이트로 레스토랑 서빙을 시작한 대학원생 윤모(30)씨는 “2주 전부터 알바 자리를 알아보고 시작한 일”이라며 “멋지게 차려입고 식사하러 오는 사람들을 보면 내 처지가 씁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홍상지 기자 hong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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