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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원에게 “지지정당 없다” 답하라는 새정치련 의원들

중앙일보 2015.12.25 02:26 종합 4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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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새정치민주연합 A의원 측에서 지역 인사들에게 돌린 문자.

전북 익산에 사는 새정치민주연합 권리당원 L씨는 지난 18일 지인으로부터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문자엔 “12월 21~31일 현역 의원 평가 여론조사가 실시된다”는 공지와 함께 전화설문 응답 요령이 상세히 담겨 있었다. “▶A의원을 잘 알고(인지도) ▶A의원을 지지하며(후보 지지도) ▶지지 정당은 없다(정당 지지도)고 답변하시면 된다”는 내용이었다.

‘하위 20% 공천 배제’ 걸린 조사
의원 지지도, 정당보다 높으면 유리
‘000 지지, 지지 당 없다’ 모범답 돌려
현역 의원과 공천 경쟁 후보들은
‘000의원 지지 안 한다’ 역공작도

 당 선출직공직자평가위원회(위원장 조은 동국대 명예교수)의 의원 평가에 대응하기 위한 꼼수였다. 당이 쪼개질지 모르는 상황이지만 한편에선 ‘하위 20% 컷오프(공천 배제)’에서 살아남기 위한 의원들의 수명연장 노력이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의원 평가는 ▶여론조사(35%) ▶의정활동 및 공약이행(35%) ▶선거기여도(10%) ▶지역활동(10%) ▶다면평가(10%) 등으로 이뤄진다.

 평가항목 중 여론조사는 ‘의원 지지도’가 ‘정당 지지도’보다 높을수록 유리하게 설계돼 있다. 그러다 보니 권리당원에게 “지지 정당은 없다”고 답하라는 꼼수까지 등장했다.

 이런 문자메시지가 돌아다니자 해당 지역구의 한 당원은 23일 “현역 평가 여론조사에서 심각한 해당(害黨) 행위가 발생했다”며 중앙당 차원의 징계를 요구하는 탄원서를 냈다.

 눈치 빠른 의원들은 증거가 남는 문자메시지 대신 ‘구두(口頭) 전파’를 지시한다고 한다. 전북에 지역구를 둔 B의원실 보좌관은 “지역에서 보는 눈이 한둘이 아니라 안면 있고 친한 사람들에게 ‘B의원을 지지하지만 지지 정당은 없다’는 모범답안을 말로 설명해주는 게 최고”라고 했다.

 수도권 B의원의 보좌관은 “지지자들에게 답변 시 연령대를 속여 20대, 30대라고 답하라고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전화 여론조사만으론 정확한 연령대 파악이 어렵다는 점을 노린 것이다. 여론조사는 20대부터 60대까지 인구비율을 정해놓고 진행한다. 하지만 20, 30대 연령층은 보통 응답률이 낮다. 가령 20~30대 100명을 정해놓고 조사를 하다 50명밖에 채우지 못할 경우 가중치(50명X2)를 준다. 만약 50대 응답자가 20대라고 속이고 응답한다면 한 명 이상의 효과를 낼 수도 있다.

 지지율을 조금이라도 끌어올리기 위해 ‘유선전화→휴대전화 착신 전환 요령’도 문자메시지로 돌아다니고 있다. 여러 대의 유선전화를 사들여 휴대전화 착신 전환을 하면 여론을 왜곡시킬 수 있다.

 지역구 지인들에겐 아예 ‘24시간 대기령’도 내린다고 한다. 전남에 지역구를 둔 C의원 보좌관은 “전화벨이 세 번 울리기 전에 뛰어가서 받아야 한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고 말했다.

 ‘역공작’도 치열하다. 수도권 재선 D의원 측은 “지역의 지지자가 ‘가르쳐준 요령대로 의원 평가 설문조사를 잘 마쳤다’고 해서 확인해 보니 맨 마지막 질문 구성이 원안과 살짝 달랐다”며 “상대 진영에서 일부러 사이비 여론조사를 돌려 답변이 반영됐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집전화 대기조에서 이탈하도록 작전을 편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역 의원이 아닌 후보 측에선 자기 지지층에게 ‘○○○의원을 지지하지 않고, 정당은 새정치연합을 지지한다’는 응답 요령을 전파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렇게 답변하면 정당 지지도가 높아져 현역 의원 지지도가 잠식된다.

 이런 꼼수가 난무하는 가운데 평가위는 내년 1월 12일까지 평가를 마칠 계획이다. 평가 결과는 의원명을 암호화하고 최종 점수만 밀봉한 상태에서 2월께 구성되는 공천관리위나 전략공천위로 넘어간다.

김형구·강태화 기자 kim.hyoung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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