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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위 있는 죽음’ 연명의료 중단 법안 이끈 윤영호 교수

중앙일보 2015.12.25 01:41 종합 18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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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피스·연명의료 중단 법제화를 이끈 서울대 의대 윤영호 교수가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서 무의식 상태의 말기암 환자에게 주입되고 있는 약물을 바라보고 있다. [김경빈 기자]


‘국회의장이 방망이를 두드리며 법 통과를 알리자 기쁨의 눈물이 난다. 옆에서 어머니가 환하게 웃고 있다.’

2015 새뚝이 ⑤ 의료·과학 <끝>


 윤영호(50) 서울대 의대 가정의학과 교수는 지난 9일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한 직후 이런 꿈을 꿨다. 이 법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 처리를 남겨두고 있다.

 윤 교수의 어머니는 지난 4일 세상을 떠났다. 평소 뜻대로 심폐소생술 같은 연명의료를 하지 않았고, 임종실에서 편히 눈을 감았다. 윤 교수는 빈소를 찾은 새정치민주연합 원혜영 의원에게 “어머니 임종 을 지켜보니 법 통과가 절실하다는 것을 느꼈다”며 법안 통과를 부탁했다고 한다.

 윤 교수는 1989년 서울대 의대 본과 4학년 때 연명의료의 문제점을 알게 됐다. 40대 말기 환자 자원봉사를 하러 갔다가 소생 불능 단계에서 심폐소생술을 하는 것을 보고서다. 의대 졸업 후 호스피스를 위해 가정의학과를 선택했다. 서울대병원 펠로(임상강사) 시절 종양내과 허대석 교수에게 말기 환자 완화의료 훈련을 받았다. 호스피스·연명의료 중단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은 2000년 국립암센터 삶의질향상연구과장이 되면서다.

 2001년 4월 존엄사를 담은 의사윤리지침(회복 불능 환자 진료 중단), 2002년 대한의학회의 임종환자 연명치료 중단 지침, 2009년 의사협회·병원협회·의학회의 연명치료 중지 지침 등의 작성에 참여했다. 2002년 복지부를 설득해 호스피스 제도화를 이끌어낸 것도 윤 교수다.

 그는 18, 19대 국회에서 발의된 몇 가지 호스피스와 연명의료 관련 법안의 조문화 과정에도 깊숙이 관여했다. 종교계·정부·의료계의 입장 차이를 조율했고 국회의원실을 수없이 드나들었다. 올해 1월에는 1만4865명이 참여하는 호스피스 국민본부(공동대표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를 발족하는 데 실무 총책을 맡았다. 지난달 국회가 “사회적 합의가 덜 됐다”는 이유를 들어 법안 처리에 소극적 자세를 보이자 긴급 여론조사를 실시해 ‘연명의료 중단에 국민의 80%, 호스피스에 95.5% 찬성’이란 결과를 제시하며 국회를 압박했다. 이번 법안의 국회 복지위 통과는 그가 15년간 노력한 결실이다. 윤 교수는 “19대 국회를 넘기면 또 4년 허송세월한다고 생각하니 가만 있을 수가 없었다”며 “본회의에서 속히 처리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글=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사진=김경빈 기자

새뚝이=기존의 장벽을 허물고 새 장을 연 사람을 말한다. 독창적인 활동이나 생각으로 사회를 밝히고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이다. 중앙일보는 1998년부터 매년 스포츠·문화·사회·경제·과학 분야에서 참신한 성과를 낸 이들을 새뚝이로 선정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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