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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 다 어디 간거야

중앙일보 2015.12.25 01:22 종합 21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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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이 장기화하면서 새해 달력 보기가 어려워졌다. 하지만 고급스러움을 더하거나 재미있는 스토리를 담은 달력은 인기다. 왼쪽 아래부터 시계 방향으로 신세계·유한킴벌리·JTBC·BYC의 달력. [이현택 기자]


새해 달력이 귀해졌다. 불황이 장기화하면서 기업 홍보달력이 ‘비용 절감 1순위’로 지목된 탓이다.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 중인 금호건설은 내년도 달력을 아예 만들지 않았다. 금호그룹의 주력계열사인 아시아나항공과 금호타이어도 달력 제작을 일부 줄였다. 외환은행과 합병한 KEB하나은행은 겹치는 거래처 등을 조정하면서 달력 부수를 지난해의 절반으로 줄였다. 두산인프라코어 등 계열사가 자금난을 겪고 있는 두산그룹도 내년도 달력을 예년보다 15% 줄였다. 두산그룹 관계자는 “계열사별로 달력을 신청하고 각각 비용을 내는데, 사정이 어려운 계열사들이 신청 부수를 줄였다”고 말했다.

불황에 비용 절감 1순위로 지목
기업들 부수 확 줄이거나 안 찍어
삼성그룹 VIP달력도 제작 중단
속옷·주류회사 “홍보효과 커” 유지


 소비재 업체도 예외는 아니다. 농심은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기존에 23만9500부 발행하던 달력을 24.7% 줄여 18만300부만 찍었다”고 말했다.

 하나로마트를 운영하는 농협유통도 달력 발행비용을 13% 줄였다. 이렇다보니 중소 인쇄업체들이 일감을 많이 잃었다.

 익명을 요청한 한 인쇄업체단체장은 “올해 달력 인쇄 시장이 절반으로 줄어든 것 같다”며 “특히 고급스러운 디자인과 재질로 단가가 높고 이익이 많이 남는 ‘VIP 달력’ 시장은 없어지다시피 했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VIP 달력으로 꼽히는 삼성그룹의 VIP달력도 발행이 중단됐다. 최근 20년간 삼성문화재단에서 각계 주요 인사들을 위해 매년 5만부 가량 찍었던 달력이다. 한 부당 제작 단가가 10만원이나 했다. 2015 달력은 단원 김홍도, 긍재 김득신, 혜원 신윤복 등 조선 시대 3대 풍속화가의 작품으로 만들었다. 홍라희 리움미술관장이 작품 선정과 디자인까지 직접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인쇄업계에 따르면 부수를 줄이지 않더라도 달력 종이의 질을 낮추는 등의 방법으로 개당 가격을 최대 15~20%까지 낮추는 기업도 적지 않다.

 최승재 소상공인연합회장은 “경기가 내년에도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달력 인쇄업체들이 직격탄을 맞았다”고 말했다.

 자금 사정에 여유가 있는 기업도 종이 달력 발행을 줄이기도 한다. 일정 관리 기능이 있는 스마트폰 달력이 보편화하면서 종이 달력에 대한 수요가 줄었다는 분석에서다. CJ그룹은 내년도 달력을 지난해(21만4400부)보다 33.3% 줄여 14만3000부만 발행했다. 탁상달력은 지난해보다 약간 발행 부수를 늘렸지만 벽걸이 달력과 한 면에 3개월치씩 날짜가 표시된 ‘3개월 달력’은 제작을 중단했다.

 CJ관계자는 “발행 비용이 많진 않지만 사람들이 안쓰는 벽걸이 달력을 굳이 만들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계열사가 늘면서 달력 발행 부수가 늘어난 기업도 있다. 롯데렌탈(옛 kt렌탈)과 삼성 3개 화학계열사 등을 인수한 롯데그룹의 내년도 달력은 예년보다 20% 늘어난 9만2000부다.

 하지만 유통가에서는 아직도 달력이 인기다. 소비자가 일상에서 지속적으로 접할 수 있는 홍보수단으로 효과적이라는 판단에서다. 속옷업체 BYC는 제품 화보를 겸할 수 있는 달력을 발행한다. 가맹점주들이 달력을 소비자에게 보여주면서 옆에 메모를 해가며 설명까지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나무심기사업 등 환경캠페인을 기업의 상징으로 내세우는 유한킴벌리는 콩기름으로 인쇄하고 숲 일러스트를 넣은 달력을 선보였다. JTBC는 인기 예능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에 출연 중인 셰프들의 요리법(레시피)를 테마로 한 달력을 내놓아 화제다. 롯데·신세계 등 주요 백화점들도 회원용 달력을 몇만부씩 발행하고 있다.

 문성현 신세계백화점 홍보팀장은 “백화점 VIP 회원만 받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홍보효과가 더 크다”고 말했다.

 ‘응답하라 1988’에 나올 법한 ‘맥주회사 달력’도 여전히 나온다. 다만 회사마다 특징이 다르다. 하이트진로는 영업 판촉용으로 여성 모델이 몸매를 많이 노출한 ‘수영복 달력’을 발행하고 있다. OB맥주 달력에는 캐주얼한 복장의 여성 모델이 등장한다.

 롯데주류(클라우드)는 “음주 조장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달력을 발행하지 않는다.

이현택·임지수 기자, 강민경 인턴기자 mdf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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