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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한·중 해양경계의 법적·정치적 함의

중앙일보 2015.12.25 00:25 종합 29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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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위
서울시립대 교수
국제해양법학회회장

지난 22일 제1차 한·중 해양경계 회의가 서울에서 열렸다. 양국은 1997년부터 14차례나 해양경계를 포함한 관련 현안을 논의했다. 하지만 해양경계에 대한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경계획정의 출발선, 원칙, 고려할 사항에 대한 입장이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양국 정상의 2014년 합의로 본격적인 협상이 이제 시작됐지만 사정은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다.
 

중간선 국제판례 무시하는 중국
통일 이후 북쪽 한계도 정하고
“이어도=과학기지” 납득시키되
남중국해 분쟁도 적극 활용해야


 한국은 중간선 원칙과 관련 사정을 적용해 합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중국은 육지(대륙붕)의 연장을 강조한 형평의 원칙을 적용하고 해안선의 길이, 인구, 어업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국은 서해의 해저지형을 고려해 중간선보다 한국 측에 근접한 경계선을 채택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400해리 이내의 해양경계는 거의 중간선으로 됐다는 국제판례와 국제적 관행을 한국이 설명해도 중국은 듣지 않는다. 거리 개념에 입각한 배타적경제수역은 해저지형이나 육지의 연장과 무관하다는 해양법의 기본도 중국은 외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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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이렇게 중국의 태도는 완고하고 비논리적인가. 아편전쟁과 청일전쟁에서의 굴욕적 패배와 미국과 소련의 해양패권에 반대한 역사로부터 이를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파라셀군도의 무력 점령, 남중국해에서의 인공섬 건설 등 아세안 국가들과의 분쟁을 생각하면 중국의 입장은 너무 비이성적이라 볼 수 있다. 지난 10월 27일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건설 중인 수비 환초(Subi Reef·渚碧礁) 근처를 미국 해군의 구축함 라센이 통항했을 때도 중국은 핵심이익에 대한 도전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지난 8월 중국 군함 5척이 알래스카의 영해를 통항했을 때 미국은 항의하지 않았다.

 인공섬은 자체의 영해를 갖지 못한다는 해양법협약 규정(제60조)도 중국은 무시한다. 중국은 지난 2년간 남중국해의 수중 암초나 간조노출지(밀물 때는 바닷물에 잠기지만 썰물이 되면 일시 육지로 변하는 곳)에 7개의 인공섬을 건설했지만, 일본의 오키노토리시마(沖ノ鳥島·도쿄 남쪽 1740㎞에 위치하는데, 일본은 섬이라 주장하며 도쿄도 오가사와라촌에 편입시켰지만 중국은 암초로 주장하며 일본 영해만 인정한다) 매립에 대해서는 2009년 유엔에서 앞장서서 반대했다. 요컨대 중국은 자국의 모순된 태도와 해양법 위반을 개의치 않을 뿐 아니라 이를 설명하거나 변명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집권 이후 중국이 강조하는 해양굴기(海洋?起)와 일대일로(一帶一路)는 남중국해와 동중국해를 자국의 호수화하겠다는 해양정책의 소산이다. 중국은 15세기 초 정화(鄭和)의 원정을 제외하고 명대부터 쇄국정책을 고수해 왔다. 이제 중국은 그런 쇄국정책을 버리고 해양강국을 도모하고 있다. 중국이 대륙국에 집착하다 근대화에 실패한 이후 해양강대국으로 변신하겠다는 것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진정한 해양강국은 해양에서 법의 지배를 중시해야 한다. 21세기의 강대국은 책임 있는 강대국이 돼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29일 헤이그의 중재재판소는 남중국해 분쟁에 대한 중재판정에서 필리핀의 손을 들어줬다. 사실 중국이 주장하는 9단선(중국과 대만이 주장하는 남중국해의 가상 해상경계선)은 남중국해 대부분을 자국의 바다로 한다는 황당한 논리다. 국제법적 근거가 전혀 없다. 중국이 주장하는 역사적 권리는 관할 수역의 설정을 정당화하지 못한다. 따라서 항해의 자유를 중시하는 우리는 중국을 지지할 수 없다.

 문제는 이제 시작된 중국과의 협상이다. 해양경계의 획정은 육상의 국경획정만큼 중요하다. 이는 연안국들의 주권과 관할권의 배분에 대한 기준선이 된다. 그 기준선이 모호하면 연안국들은 해양자원의 이용이나 보존, 해양환경의 보호, 과학적 조사, 그리고 안보 문제까지 서로 충돌하게 된다. 더구나 우리는 중국과 합의한 해양경계의 연장선에서 통일 후에 추가 협상을 해야 한다. 따라서 해양경계의 대상수역은 이를 고려해 북쪽 한계를 정해야 한다.

 특히 출발선으로 중국의 직선기선(연안선의 굴곡이 심하거나 섬이 있는 곳에서 적당한 지점을 직선으로 연결해 영해를 정하는 것) 주장부터 막아야 한다. 이어도 해양과학기지는 평화적 목적으로 건설됐다는 것도 분명히 해야 한다. 어업은 원주민이나 경제적 약자를 보호할 때만 일부 고려된다는 점도 납득시켜야 한다. 중국 산둥성의 어민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 한국 해경의 과잉단속으로 중국 어민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주장에는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 중간선에 따른 2001년 중국과 베트남의 통킹만 경계획정도 강조해야 할 것이다.

 물론 협상은 상대가 있어 쉽지 않다. 법의 지배를 무시하는 강대국과의 협상은 더욱 그렇다. 그러나 중국은 지금 남중국해 분쟁으로 국제사회의 비난에 직면해 있다. 이를 우리가 잘 활용하면 한·중 해양경계가 합리적으로 획정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해양경계가 갖는 법적·정치적 함의를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창위 서울시립대 교수 국제해양법학회회장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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