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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볼수록 매력적인 남자…족구왕 안재홍

중앙일보 2015.12.25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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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에 족구왕이 나타났다. 말 그대로 족구를 잘해서 족구왕이다. 제대 5일 만에 복학한 대학생 홍만섭(안재홍)은 족구할 권리를 당당히 주장한다. 학교에 족구장 건립을 건의하고, 족구를 찌질한 복학생들의 전유물쯤으로 여기는 학생들 앞에서도 기죽지 않는다. 좋아하는 일에 열심인 만섭의 열정이 캠퍼스의 청춘들을 변화시킨다. 건강한 청춘영화 ‘족구왕’(8월 21일 개봉, 우문기 감독) 얘기다. 극 초반의 만섭은 세상에 이런 덜떨어진 복학생이 있나 싶을 정도인데, 점점 그의 단단한 청춘을 응원하게 되고, 결말에 이르면 그가 꽤 멋있어 보이기까지 한다. 공을 때리는 팽팽한 다리 근육부터, 좋아하는 여자의 눈을 또렷이 바라보며 사랑을 고백하는 용기 있는 모습까지, 신인배우 안재홍(28)은 족구왕 만섭을 늠름하게 연기한다.

장성란 기자 hairpin@joongang.co.kr 사진=라희찬(STUDIO 706)

-극 중 족구를 정말 잘하는 것처럼 나온다. 공을 찰 때의 움직임이 재빠르고 다부지다.
“원래 구기종목을 잘 못한다. 족구도 많이 안 해봤다. 군 복무 때도 잘 못하니까 선임들이 안 시켰다. 그래서 책만 읽었다(웃음). 이 영화에 출연하기로 하고 나서 족구를 잘해야 한다는 부담이 너무 컸다. 한국 남자 대다수가 족구를 하는데, ‘저게 무슨 족구왕이야? 나보다 못하네’ 소리 들을까 봐. 촬영 한 달 반 전부터 열심히 연습했다. 혼자 공을 차다 공이 터진 적도 있다. 족구 장면은 만섭이 축구선수 출신 교내 스타 강민(정우식)과 일대일로 대결을 하는 신을 처음 찍었다. 걱정이 많았는데, 그 장면부터 ‘공이 발에 쫙쫙 붙어 쭉쭉 나간다’는 느낌이 들었다(웃음).”

-교내 대회 결승전에 앞서 만섭이 러닝셔츠 차림으로 사물함 앞에서 혼자 몸을 푸는 장면이 슬로모션으로 잡힌다. 촌스러운 모습이 웃기면서도 만섭의 결기가 또렷이 전해지는 묘한 장면이다.
“우문기 감독님이 그 장면을 스포츠 브랜드 광고처럼 찍어 보자고 했다. 순간 테니스 선수 마리아 샤라포바의 광고 영상이 생각나더라. 사물함을 양 팔로 짚고 가슴과 허리를 튕기며 웨이브를 타는 동작은 거기서 훔쳐온 거다. 흠하하하.”

-주인공은 만섭이지만 그의 갈등과 변화 보다는 그로 인해 주변인물들이 변화를 겪는 이야기가 중심인 영화다.
“맞다. 만섭은 영화 내내 족구만 한다(웃음). 만섭이 족구 할 때 너무 싱글벙글하면 초반에야 재미있는 인물처럼 느껴지겠지만, 계속되면 너무 실없어 보여서 다른 인물들이 왜 그를 좋아하게 되는지 설득력이 떨어질 것 같았다. 그래서 만섭을 연기할 때 만섭이 직접 나서서 웃기려고 들면 안 되겠다, 묵묵한 느낌을 살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문기 감독님도 만섭은 ‘깊은 물 같은 인물’이라고 했다. 아주 맑아서 바닥이 다 들여다보이지만, 바람에도 잘 흔들리지 않는, 수심이 깊은 물.”

-‘1999, 면회’에서는 재수생 승준 역으로 순간순간 상황과 행동을 자연스럽게 살리는 세세한 연기로 웃음을 터뜨렸는데 '족구왕'의 연기는 그와는 또다르다.
“‘1999, 면회’의 승준은 자다 일어나서 뭐 먹고, 또 자다 일어나서 술 마시고, 다시 자다 일어나서 강아지 쓰다듬다가 뛰어다니는 식이었다.(웃음) 그때그때 극에 잘 스며들어야 하는 역이었다. ‘족구왕’의 만섭은 극의 전면에 나서는 역할이라 그렇게 하면 안 되겠다 싶었다. 어떤 역이든 영화 전체의 분위기에 맞춰서 연기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몇몇 장면이 재미있는 영화가 있는가 하면, 영화 전체가 좋은 느낌으로 남는 작품이 있지 않나. 나 혼자 웃기는 영화가 아니라, 영화 전체가 즐거운 작품을 만들고 싶다.”

-만섭은 학교 퀸카 안나(황승언)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일에도 열심이다. 영어수업 때 발표를 틈타 영어로 고백하는 장면이 특히 인상적이다. 만섭의 정직한 발음에 킥킥대다가도 그 진심에 감화된다.
“그 장면을 찍을 때는 단 하나, 안나의 눈을 보면서 만섭의 진심을 전하는 것만 생각했다. 지금도 이 영화 보다가 그 장면에서 울컥한다(웃음). 그 장면의 영어 대사를 외우고 또 외워서 그런지, 지금도 누가 어깨를 툭 치면 무의식적으로 ‘아이 원 비어 절크 디스 타임(I won’t be a jerk this time, 이번엔 바보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하면서 그 대사가 줄줄 나온다. 부산에 사시는 아버지께서 젊은 시절 카투사에서 군 복무를 하셨는데, 지난해 10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보시고는 ‘발음 좋던데, 영화 공부하냐?’고 하셨다(웃음). 우문기 감독님이 카투사 출신이라 영어 발음 지도를 해줬다. ‘angel(천사)’를 ‘엔젤’이 아니라 ‘에인절’로 발음해야 한다는 걸 이 영화 찍으면서 처음 알았다(웃음).”

-장편영화를 혼자 이끌어가는 역할은 처음인데.
“첫 장편 ‘1999, 면회’를 찍고 나서 느낀 게 있었다. 난 내 출연작을 보고 또 보는 편이다. ‘1999, 면회’를 계속 보니, 장편은 단편과 달리 그 인물의 캐릭터가 점점 쌓여서 극 후반에는 딱히 연기를 세게 안 해도 그 캐릭터가 보이더라. 그 때 배운 걸 이번에도 잊지 않으려 했다.”

-민망해서 자기 출연작을 잘 못 보겠다는 배우도 많던데.
“난 내 영화를 제일 많이 본 사람이 내가 될 때까지 보고 또 본다. 처음엔 내 영화라 다 좋기만 한데, 계속 보다 보면 점점 객관화되면서, 연기가 모자란 부분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카메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홍상수 감독님의 신작 ‘자유의 언덕’(9월 4일 개봉)애 스태프로 참여했는데, 주인공 모리 역을 맡은 일본 배우 카세 료가 카메라에 잡히는 걸 보니 그 얼굴이 바로 멜로더라. 내 얼굴은 보조출연자 느낌? 흐흐흐 흐흐흐흐. 아유, 보조출연자 분들게 실례가 되는 말이다. 그 분들 중에도 미남 미녀 많은데! 카메라에 찍힌 내 모습이, 내가 거울로 보는 내 모습보다 못생긴 것 같다(웃음).”

-자신을 객관화하는 데 익숙한 것 같다.
“어! 정말 그런 것 같다. ‘1999, 면회’의 김태곤 감독님이 나한테 멋있는 역할은 생각도 하지 말라고 진지하게 여러 번 말했다.”

-조선 고종 때 판소리꾼 신재효(류승룡)와 그의 제자 진채선(수지)의 이야기를 그린 사극 ‘도리화가’(이종필 감독)에 출연한다고.
“신재효의 제자 중 한 명으로 나온다. 극 중 해학을 담당한다(웃음).”
 

대표작

안재홍(29)은 배우치고는 정말로 부담없는 외모를 가졌다. 길에서 수도 없이 마주쳤을 법한 친근한 얼굴로 어떤 역할이든 자연스럽고 매끄럽게 소화해낸다. 그의 대표작은 ‘족구왕’(2014, 우문기 감독)이다. 첫 장편 ‘1999, 면회’(2013, 김태곤 감독)로 주목받은 그는 이 영화에서 누구라도 응원해주고 싶은, 찌질하지만 순수한 복학생 만섭 역을 열연하며 ‘포스트 송강호’라 불렸다. 사석에서 만난 송강호가 “네가 족구왕이냐? 난 반칙왕인데”라고 농담하며 그의 연기를 칭찬했다고. ‘도리화가’(11월 25일 개봉, 이종필 감독)에선 이 드라마에서 동룡 역을 맡은 이동휘와 함께 판소리 문하생으로 출연했다.


※magzine M 77호(2014년 8월 22일자)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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