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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사랑할수록 미워지는데, 그래도 사랑일까요 '조선마술사' 유승호 인터뷰

중앙일보 2015.12.24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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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이 상식을 뛰어넘듯, 여기 운명을 거스른 사랑이 있다. ‘조선마술사’(12월 30일 개봉, 김대승 감독)는 조선시대, 가상 공간인 평안도의 이름난 유흥업소 ‘물랑루’에서 펼쳐지는 판타지 멜로 사극이다. 물랑루의 이름난 환술사(조선시대 당시 마술사를 부르는 말) 환희(유승호)는 화려하고 신기한 환술 공연으로 큰 인기를 누리지만, 어릴 적 청나라 마술사 귀몰(곽도원)에게 끌려가 학대당한 기억에 괴로워한다.

정략 결혼으로 청나라 왕자에게 팔리듯 시집 가는 조선의 공주 청명(고아라)의 신세도 처량하긴 마찬가지다. 물랑루에서 마주친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의 아픔을 알아보고 사랑에 빠진다.

군 제대 후 첫 영화로 ‘조선마술사’를 택한 유승호(22)는 액션 블록버스터가 포진한 연말 극장가에 애틋한 멜로 연기로 온기를 가득 불어넣을 참이다. 그가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자, 스튜디오엔 마치 마법 같은 기운이 휘몰아친 듯 탄성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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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내년에 벌써 스물세 살이에요.” 유승호가 말한다. 까마득한 청춘이구나 싶은데 정작 그의 표정은 사뭇 진지하다. “군 복무한 2년 동안 연기에 대한 감을 잃는 것 같아 불안했어요. 다시 카메라 앞에 서는 게 무서워지고.” 고민 끝에 그가 선택한 복귀작이 바로 ‘조선마술사’다. “조선시대와 마술의 조합이 새로웠어요. ‘번지 점프를 하다’(2001) ‘혈의 누’(2005) ‘후궁:제왕의 첩’(2012)을 연출하신 베테랑 김대승 감독님, 연기 잘하는 고아라 누나에게 얹혀 가고 싶은 마음도 조금 있었고요(웃음).”

그렇다고 유승호가 ‘조선마술사’에 출연한 것이 마냥 안전한 선택이었던 건 아니다. 유승호는 그동안 영화 ‘집으로...’(2002, 이정향 감독) ‘마음이...’(2006, 오달균·박은형감독) ‘블라인드’(2011, 안상훈 감독)와 TV 드라마 ‘공부의 신’(2010, KBS2) ‘무사 백동수’(2011, SBS) 등에서 주연을 맡아왔지만, 이번처럼 작품의 맨 앞장에 서기는 처음이다. 유승호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조선마술사’는 환술사 환희를 중심으로 청명과의 사랑, 귀몰과의 악연, 마술이라는 볼거리를 다양하게 보여주는 영화예요. 그 중심에 선 배우로서 책임감이 막중하죠(웃음).”

우선, 이 영화가 최고의 볼거리로 내세우는 건 화려한 마술이다. 유승호는 손재주가 좋은 편이라 마술을 금방 익혔다. “조선시대 환술사라는 게 그저 상상만이 아니라, 실제로 당시 남사당패에 ‘얼른쇠’라고 마술을 보여주는 사람이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거기에 자신감을 얻어 요즘 마술사들이 하는 현대적인 마술도 조금 가져다 썼어요. 그뿐 아니라 물랑루라는 큰 무대에서 어떻게 조직적?체계적으로 마술을 하는지 그 과정을 상세히 보여줘요. 환희가 마술을 펼치는 장면에서 카메라가 무대 밑을 비추면 사람들이 끈과 도르래를 움직여 무대 장치를 바꾸는 걸 보실 수 있을 거예요.”

마술이 ‘조선마술사’의 얼굴이라면, 환희와 청명의 사랑은 이 영화의 심장이다. “20대 남녀의 풋풋한 사랑이라 생각하고 연기했어요. 환희가 청명에게 첫눈에 반해요. 환희는 청명이 공주인 줄 모르고, 물랑루에 붙잡혀 있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라 생각해요. 그래서 계속 도와주다 보니 사랑이 점점 커지고, 결국 그 사랑을 위해 운명을 거스를 용기를 내는 거죠.”

환희가 청명과 함께 절벽에 다다르는 장면을 찍었던 순간을 돌이키며 유승호가 말한다. “사랑의 결단을 보여주는 중요한 장면인데 시간이 부족해서 약간 정신없이 찍었어요. ‘컷’ 소리가 나고 모니터로 가서 영상을 확인하는데, 제가 진짜 환희처럼 보이더라고요(웃음). 아라 누나가 많이 끌어주긴 했지만. 그럴 때 연기가 정말 재미있어요.”

그 이야기를 듣다 문득 궁금해졌다. 일생에 한 번 할까 말까한 운명적 사랑, 그 강렬한 감정을 그는 알까. “솔직히 말해서, 사랑이라는 감정이 진짜 뭔지 잘 모르겠어요. 멜로연기를 하면서 제가 느끼는 감정을 사랑이라 할 수 있을까요?”

유승호는 2000년 일곱 살에 TV 드라마 ‘가시고기’(MBC)로 데뷔했다. 그리고 아홉 살에 대표작을 만났다. 영화 ‘집으로...’ 말이다. 버스도 타기 힘든 시골집, 백발의 할머니(김을분)와 철부지 일곱 살 손자(유승호)가 함께 지내는 이야기를 정감 어리게 그린 이 영화에서 할머니에게 삐죽거리며 말썽을 피우는 꼬마를 연기했던 그는 더할 나위 없이 깜찍했다. “저도 알아요. ‘집으로...’ 이후 꾸준히 연기를 해왔지만 유승호란 배우를 알릴 만한 작품이 없었다는 거. 그래서 많은 분들이 유승호 하면 ‘대학도 안 가고 군대 빨리 다녀온 착한 청년’이란 이미지를 제일 먼저 떠올린다는 것도요.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다양한 작품에서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하루 빨리 관객에게 ‘믿고 보는 배우’로 인정받고 싶어요.”

일곱 살에 데뷔해 쭉 연기를 해왔다고 해서 그에게 연기가 늘 하나뿐인 길이었던 건 아니다. “대중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이 좋기도 하지만 솔직히 부담스럽기도 해요. 평소 집에 있을 때조차 누군가 나를 계속 쳐다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사람들이 기대하는 대로 올바르고 착한 사람이 돼야겠다고 다짐하면서도, 가슴이 답답해지기도 하고요. 그럴 때마다 ‘내가 잘 살고 있는 건가?’ 하는 의문이 생기고. 그래서 연기를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죠. 그런데 정작 제가 할 줄 아는 게 연기 밖에 없더라고요. 지금은 촬영장에 있을 때가 마음이 제일 편해요(웃음).”

스물셋은 여전히 고민이 많은 나이다. “어떤 감정을 파고들다 보면 그 감정이 점점 복잡해져요.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인데, 그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밉기도 한 그런 이상한, 딱 잘라 말할 수 없는 감정 아세요? 감정을 그 상태까지 몰고 가는 게 맞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사랑이란 감정을 연기해야 하는데, 그 감정을 너무 깊이 품다 복잡해지면 그건 더 이상 사랑이 아닌 거잖아요. 그래서 어떤 캐릭터를 연기할 때 그 감정에 너무 깊숙이 빠지지 않으려 해요.”

그에게 배우로서의 삶과 스물세 살 청년의 평범한 삶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중인 것 같다고 했더니 깎은 밤처럼 말쑥한 그의 얼굴에 알 듯 모를 듯한 미소가 번진다. “맞아요. 그 조화를 찾아야죠. 아유, 근데 모르겠어요. 생각은 많은데(웃음).” 고민은 무겁고 말[言]은 가볍다. 그 답을 찾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몫이라는 것을 유승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 않을까.

장성란 기자 hairpin@joongang.co.kr 사진 = 전소윤(STUDIO 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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