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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 인생베팅 ‘대박’ 쳤다…‘대우증권 올인’ 전략 대성공

중앙일보 2015.12.24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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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 미래에셋 회장


‘베팅’의 결과는 ‘대박’이었다. 인터넷전문은행을 과감히 포기하고 KDB대우증권 인수에 ‘올인’한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이 쟁쟁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대우증권을 거머쥐는데 성공했다. 이로써 미래에셋증권은 명실상부한 국내 1위의 증권사로 우뚝 서게 됐다. 승부사로 유명한 박 회장의 과감성과 판단력이 제대로 빛을 발했다.

지난 여름까지만 해도 미래에셋증권은 인터넷전문은행에 사운을 걸고 달려든 것처럼 보였다. 어느 정도의 자금여력과 야심이 있는 증권사들은 모두 인터넷전문은행이 되기 위해 내달렸던 시기였다. 하지만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박 회장은 깜짝 놀랄만한 결단을 내렸다. 금융의 미래로 지목된 인터넷전문은행을 과감히 포기하고 대우증권 인수전에 그룹의 역량을 총동원했다.

실탄을 마련하기 위해 1조원대의 유상증자를 단행했다. 자기자본 2조5000억원 정도로 업계 5~6위권이던 미래에셋증권은 유상증자 이후 자기자본이 3조5000억원대로 늘어 업계 4위로 부상했다. 그리고 자신보다 덩치가 큰 대우증권(자기자본 4조4000억원)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면서 자기자본 7조9000억원대의 압도적인 업계 1위로 부상할 기회를 잡았다. 자기자본 4조6000억원대로 업계 1위인 NH투자증권을 훌쩍 뛰어넘는 규모다.

주역은 역시 박 회장이다. 박 회장은 개척자이자 승부사로 유명하다. 끝없이 새로운 영역에 대한 도전에 나섰고, 실패한 적이 별로 없다. 1983년 동원증권에 입사해 단 45일만에 대리로, 1년 1개월만에 과장으로 승진한데 이어 32세에 최연소 지점장에 오르며 승승장구하던 박 회장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았다.

당시 서초지점장으로 있던 최현만 현 부회장 등을 은밀히 모아 직접 회사를 설립했다. 1997년 미래창업투자와 미래에셋자산운용을 잇달아 설립하고 이듬해 12월 국내 최초의 뮤추얼펀드인 ‘미래에셋 박현주 1호’를 출시했다. 500억원의 한도액이 불과 3시간만에 다 찼다. 미래에셋 신화의 시작이었다.

한국이라는 틀에 안주하지도 않았다. 2003년 국내 최초로 해외운용법인인 미래에셋자산운용(홍콩)을 설립했고 이후 전세계 12개국으로 네트워크를 확대했다. 자산관리 분야에서도 선구자다. 지난해 3월 개인연금 자산 1조원을 돌파했고, 올해 5월엔 연금자산이 5조원을 넘었다.

이번 대우증권 인수전에서도 박 회장은 승부사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1조8000억원대로 추산되는 적정 가격을 크게 뛰어넘는 2조4000억원대의 통 큰 베팅을 해 업계를 놀라게 했다. 경쟁사들이 미처 예상하기 힘든 거액이었다.

대우증권 인수가 완료되면 미래에셋증권은 명실상부한 국내 1위 증권사로 등극한다. 하지만 이게 종착역은 아니다. 박 회장에게 있어서 대우증권 인수는 새로운 도전의 시작일 뿐이다. 박 회장은 2007년 자서전 『돈은 아름다운 꽃이다』에서 자신의 인생 목표를 제시했다.

그는 “미래에셋그룹을 아시아 1위의 금융투자회사로 키워 모건스탠리·메릴린치·골드먼삭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싶다”고 말했다. 새로 만들어질 초대형 증권사를 세계적인 대형투자은행(IB)으로 육성한다는 게 박 회장의 목표다.

그가 대우증권에 탐을 낸 것도 이 때문이다. 대우증권은 채권운용·투자금융 등 IB 분야에서 국내 1위 증권사다. 해외지점이 12개로 국내 증권사 중 가장 많은 곳이기도 하다. 미래에셋증권은 연금과 자산관리(WM)에 특화된 증권사다.

두 업체의 결합이 상당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킬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박 회장의 야심찬 도전이 또 다른 대성공으로 이어져 미래에셋이 노무라증권이나 모건스탠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형IB로 거듭날 수 있을지 이제부터 지켜볼 일이다.

박진석기자 kaila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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