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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만 닮았대요, 그처럼 열심히 살 거예요

중앙일보 2015.12.24 02:58 종합 10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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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착 희망난민제도’ 도입 후 처음으로 정부가 받아들인 미얀마 난민 22명이 23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인천공항=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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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국제공항에서 열린 환영행사에서 쿠투(43·왼쪽) 일행에게 관계자들이 방한복을 전달하고 있다.

한국까지 오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지난 22일(현지시간) 태국·미얀마 접경지대 메솟에서 우리를 태운 버스는 방콕 공항을 향해 울퉁불퉁한 정글길을 달렸다. “아빠, 우리 언제쯤 도착해?” 아들 크파우와(6)는 차 안이 갑갑한 듯 채근했다. “좀 있으면 비행기 탈 거야. 코 자면 금방인걸.”

미얀마 난민 쿠투 ‘한국 입국기’
군부에 쫓겨 20년 넘게 난민생활
지뢰로 발목 잃었지만 희망 안 놓아
반팔 차림 입국, 점퍼 선물 고마워

 9시간 동안의 버스 이동 내내 가족들에게 속마음을 들킬까 봐 애써 태연한 척했다. 한국에 간다는 설렘과 함께 불안감이 커져만 갔다. ‘사랑하는 우리 오남매와 조카는 한국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까’.

 “병만씨!(쿠투의 별명) 표정이 너무 심각해, 걱정할 필요 없어요.” 나를 한국 연예인 ‘김병만’과 닮았다고 한 한국 법무부 난민과 정금심(44)씨의 말에 위안이 됐다. 눈을 감고 있던 아내(43)가 말없이 내 손을 잡았다.

 나의 난민 생활은 199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얀마 군부는 내 부족인 카렌족을 지독하게 괴롭혔다. 미얀마 사람과 얼굴이 다르다 는 이유로 동족을 죽이기도 했다. 나는 국경을 넘어 메라 난민캠프에 터를 잡았다. 150바트(6000원)의 일당을 받으며 여덟 가족을 악착같이 부양했다. 벌목 일을 하다 지뢰를 밟아 오른쪽 발목을 잃는 사고도 있었지만 20여 년간 희망을 잃지 않았다. 지난 8월 도움의 손길이 다가왔다. 한국 정부가 ‘재정착 희망난민제도’를 시범 시행하면서 내게 문이 열렸다. 이는 해외 난민캠프에 있는 한국행 희망자들을 유엔난민기구(UNHCR)의 추천과 정부 심사를 거쳐 수용하는 제도다. 두 달간 까다로운 심사 과정을 거쳐 우리를 포함한 미얀마 난민 네 가족(22명)이 선발됐다.

 23일 오전 8시30분. 우리는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반팔·슬리퍼 차림이다 보니 한국의 찬 공기가 살갗에 그대로 닿았다. 환영 인파와 취재진 때문에 긴장도 됐다. 오른발 의족이 불편했지만 멀쩡하게 걷는 척했다. 가장으로서, 한국에 처음 온 재정착 난민으로서 당당하게 보이고 싶었다.

 한국 정부는 우리에게 패딩 점퍼를 선물했다. K팝을 좋아하는 둘째 딸(18)이 “좋아하는 한국 가수가 입은 옷”이라며 활짝 웃었다. 오랜만에 본 딸의 함박웃음이었다.

 우리들은 인천에 있는 출입국·외국인지원센터에서 한국어 교육 등을 받게 된다. 경기도에 미얀마인이 모여 사는 정착촌이 있다고 하니 그곳에 살게 될지도 모르겠다.

 적응이 쉽지만은 않을 것임을 알고 있다. 나와 닮은 한국 연예인 김병만은 엄청난 노력으로 성공을 거둔 사람이라고 들었다. 우리 가족도 새 세상에서의 새 삶을 일구기 위해 열심히 살아갈 것이다.

글=장혁진 기자 analog@joongang.co.kr
사진=박종근 기자

※쿠투(43)와의 인터뷰와 난민 심사를 맡은 법무부 직원들을 취재한 내용을 토대로 재구성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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