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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시간 만에 … 4층 높이 흙더미 갇힌 생존자 구출

중앙일보 2015.12.24 02:44 종합 16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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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광둥성 선전의 광민신구에서 ‘인공 산’이 무너져 산사태가 발생한 지 사흘째인 23일 노동자 톈저밍(田澤明)이 극적으로 구조됐다. [선전 신화=뉴시스]


지난 20일 발생한 산사태로 76명이 실종된 중국 광둥성 선전시 광밍(光明)신구 산사태 현장. 사고 사흘째인 23일 새벽 3시30분쯤 생존자 추적장치를 통해 흙더미에서 생명 반응이 나왔다. 소방관들은 좁은 통로로 기어들어가 잔해를 일일이 손으로 치운 뒤 3시간 만에 생존자를 구출했다. 67시간 동안 흙더미에 파묻혀 있던 이는 중국 서남부 충칭(重慶)에서 이주한 19세 노동자 톈저밍(田澤明)이라고 중국 언론은 전했다. 톈은 구조 직후 산소 공급과 링거 투여 등 응급조치를 받고 병원으로 이송됐다. 구출 뒤 그는 의료진과 간단한 대화를 나누는 등 의식이 뚜렷했고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선전시 최악 산사태
문짝에 끼어있던 19세 노동자
건축폐기물 쌓인 ‘인공 산’ 무너져
‘속도 제일주의’가 낳은 최악 인재


 톈은 산사태로 건물이 무너질 때 방에서 나오려 했다. 건물이 무너지며 팔과 다리가 문짝에 끼었다. 문짝 덕분에 흙더미 속에서도 숨쉴 공간이 생겼다. 톈은 구조 뒤 부러진 팔과 다리를 수술 받았다. 한쪽 다리는 잃을 수 있다고 수술 의사는 밝혔다. 톈의 옆에 매몰돼 있던 실종자는 숨진 채 발견됐다. 이로써 산사태 실종자는 74명으로 줄었다. 이날 신화통신과 중국중앙(CC)TV가 전한 톈의 구조작업 전말이다.

 톈의 구출 소식에 중국인들은 환호했다. 밤을 낮 삼아 구조작업을 벌인 구조대원들에게 찬사를 보내며 새로운 생존자가 나타나기를 바라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하지만 염원과는 달리 구조·수색 작업은 더디다. 실종자 중 시신이 발견된 경우도 한 구에 불과하다. 나머지 실종자들은 건물 4층 높이 흙더미에 매몰된 상태다. 흙더미에 묻힌 지역이 워낙 광범위하기 때문이다. 면적은 축구장 50개를 합친 것에 해당하는 36만㎡에 이른다. 흙더미 속에 공업단지와 인근 사택 등 건물 33채가 파묻혔다.

 산사태의 규모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사고 원인이다. 폭우나 홍수 등 자연재해로 산이 무너져 내린 게 아니라 ‘인공 산’이 무너져 발생한 것이다. 붕괴된 인공 산은 건설 현장서 파낸 흙과 건축 폐기물을 쌓아 생겼다. 높이가 100m에 이르렀다고 주민들은 증언한다. 사고 지역에 인공 산이 생기기 시작한 건 2년 전부터다. 주민들은 “밤낮없이 하루 수백 대의 덤프 트럭이 흙과 폐기물을 싣고 와 쌓았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붕괴 위험성이 있다며 관할 관청에 적절한 대책을 세워달라고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번 사고는 법과 안전 규정을 무시한 것은 물론, 사전 경고마저 묵살한 결과로 빚어진 전형적인 인재다.

 선전은 중국의 자존심이자 중국 굴기(屈起)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다. 한적한 어촌에 불과하던 선전은 1980년 경제특구로 지정되며 중국의 개혁개방을 선도했다. 특구 건설이 한창이던 1980년대에 덩샤오핑(鄧小平)은 ‘선전 속도’란 말을 유행시켰다. 자고 나면 새 마천루가 올라가고 계획보다 빨리 신도시가 완성되는 눈부신 발전 속도를 중국 전역에 확산시켜야 한다는 뜻에서 사용한 말이다.

 이번에 사고는 선전 외곽의 신개발구에서 발생했다. 중국은 기존 도심이나 산업단지가 포화상태에 이르면 외곽 지역에 신개발구를 건설한다. ‘선전 속도’는 이런 신개발구 건설에서 따라야 할 모범이다. 속도를 우선하다 보니 안전 규정을 지키고 점검하는 데는 소홀해 질 수 밖에 없다. 문제는 이런 신개발구들이 중국 전역에 산재해 있다는 점이다. 고도 성장 과정에서 불가피했던 속도 지상주의의 홍역을 중국은 뒤늦게 앓고 있다.

베이징=예영준 특파원 y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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