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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물이라 해도 믿겠네, 비누로 빚은 도자기

중앙일보 2015.12.24 02:08 종합 25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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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고재 상하이’에서 열린 첫 중국전에서 중국 도자기를 비누로 번역한 작품 앞에 선 신미경 작가. 중국
평론가 두안쥔(段君)은 “이번 전시가 중국 미술계에 새로운 성취를 가져올 것”이라고 평했다.

조각가 신미경 상하이서 개인전
독특한 비누 작품에 관람객들 매료
점점 닳아가는 화장실 불상 등 눈길

비누는 흔한 물건이다. 하루에도 여러 번 손이며 얼굴을 씻는 이라면 미끌미끌 손아귀에서 닳아버리는 비누를 하찮게 본다. 조각가 신미경(48)씨는 비누를 허투루 보지 않았다. 영국에 유학 가서 서구 미술 본바닥 애들과 뭔가 다른 작품을 창조하려고 고민하던 어느 날, 비누를 재발견했다. 학교 화장실에서 엄지손톱만하게 작아진 비누를 만났는데 그 비누가 갑자기 조각처럼 보이면서 어린 시절 동무들과 비누를 깎아내 이것저것 만들던 추억이 떠올랐다. 이날부터 그는 비누에 매달렸다. 비누는 묘하게 매력적인 물성(物性)을 나타냈다. 비누는 아침저녁 점점 사라지는 제 몸으로 시간의 흐름을 보여줬다. 때로 이야기도 들려줬다. 한국에서 갈고닦은 테크닉으로 고대 그리스·로마의 여신과 영웅 상을 비누로 조각했다. 교수도, 동료들도 혀를 내둘렀다. 비누조각가 신미경의 탄생이었다.

 지난 19일 중국 상하이 예술특구 모간산루(莫干山路) 50호의 ‘학고재 상하이’는 신미경 작가의 중국 데뷔전을 축하하러 모인 사람들로 붐볐다. ‘진기한 장식장’이라 이름 붙여진 개인전은 그동안 신 작가가 개척해온 비누 작업을 모두 보여주는 종합 무대였다. 그의 대표작인 ‘트랜스레이션’ ‘트랜스레이션-고스트’ ‘풍화’ ‘페인팅’ 시리즈와 ‘화장실 프로젝트’까지 세계 미술계에 ‘비누 작가’로 각인된 그의 전모를 펼쳐놓았다. 지난 몇 년 새 국제 미술시장에서 뚜렷한 상승세를 보인 중국 미술계에 이름을 알리는 자리였다.

 신 작가는 각 대륙이나 나라에 내려오는 유물이 비누라는 재료를 만나 새롭게 탄생하고 전혀 다른 곳으로 이동해 보여지면서 생기는 문화의 차이를 ‘번역’의 과정으로 풀었다. 그는 “서로 다른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전달과 이동, 향유는 각각의 맥락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관람객들은 실물보다 더 진짜 같은 중국 도자기들 앞에서 연신 사진을 찍었다. ‘붉은 방’이라 불리는 단독 전시장에 진열된 투명 적색 도자기들 앞에서는 말문을 잃었다. 속이 들여다보일 만큼 비누를 유리에 가깝게 깎아 낸 작품은 작가 손에서 새 차원으로 번역되는 물질과 정신의 신세계를 보여준다.

 학고재 갤러리와 별도로 상하이의 룽 미술관을 비롯해 5개 미술관에서 진행되는 ‘화장실 프로젝트’는 비누의 물성에 영혼을 불어넣은 독특한 작업이다. ‘비누도 늙는다’랄까. 공공 화장실에 불상 모양으로 조각한 비누 조각을 비치하고 이곳을 드나드는 관람객이 비누를 쓰면서 점점 변해가는 비누의 이야기를 일정 기간 뒤에 전시장에서 만날 수 있다. 비누의 영혼이 들려주는 서사성이 녹록치 않다. 전시는 내년 1월 31일까지. 

상하이=글·사진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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