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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심덕 이후 90년, 캐럴 대신 겨울을 노래하다

중앙일보 2015.12.24 02:07 종합 25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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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시대-태티서는 이달 초 겨울 스페셜 앨범 ‘디어 산타’를 발표했다. 요즘 가요 시장에서는 전통적인 캐럴보다 새롭게 만든 겨울 시즌송이 인기다. [사진 SM엔터테인먼트, 이경호 음반수집가,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DSP 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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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윤심덕의 ‘파우스트 노엘’

12월은 전통적으로 가요계의 비수기다. 콘서트로 한 해를 갈무리할 뿐 새 앨범을 내는 가수가 없어서 그렇다. 하지만 예외도 있다. 캐럴 앨범이다. 과거에는 외국곡에 가사만 한글로 고친 번안곡이 대다수였다. 귀에 익은 전통적인 멜로디의 캐럴이다. 요즘 가수들은 크리스마스에 국한하기보다 겨울 시장 전체를 노린다. 새롭게 만든 시즌송을 통해서다.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나는 발라드곡이나 경쾌한 댄스곡 위주다.

대형 기획사 창작곡 위주로 재편
예전엔 주로 외국곡 번안해 인기
SM·스타쉽엔터 등서 시즌송 봇물
스마트폰에 이어폰 꽂고 듣는 시대
거리에 울려퍼지던 캐럴 사라져

 아이돌 그룹이 많은 대형 소속사가 먼저 시동 걸었다. 팬 서비스 차원에서 소속 가수가 모두 함께 부르는 단체곡이 특징이다. 스타쉽 엔터테인먼트는 이달 들어 씨스타, 보이프렌드, 정기고, 매드클라운, 몬스타엑스 등 소속 가수 열 팀이 함께 부른 겨울송 ‘사르르’를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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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대 캐럴음반 ‘메리 크리스마스’

이런 단체곡 형태의 시즌송을 처음 선보인 것은 SM엔터테인먼트다. 1999년 12월 HOT, SES 등 소속 가수의 단체 앨범 ‘크리스마스 인 에스엠타운 닷 컴’을 내놨다. 올 겨울에는 태티서(‘디어 산타’)와 엑소(‘싱 포 유’) 등의 겨울 스페셜 앨범을 발표했다. 이 중 엑소의 앨범은 12월 2주차 가온차트 종합 1위(앨범)를 달리고 있다. 온라인 음원사이트 지니에 따르면 12월 음원 차트 100위권 안에 든 아이돌 그룹의 겨울 시즌송은 지난해(4곡) 대비 올해(14곡) 250% 늘었다.

 실력파 가수들의 콜라보레이션 시즌송도 겨울 시장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가수 박정현은 남성 2인조 그룹 플라이투더스카이와 조관우의 ‘겨울 이야기’를 리메이크한 곡을 선보였다. 이문세는 로이킴과 함께 부른 노래 ‘디스 크리스마스’를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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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심형래의 코믹 캐럴 음반

◆한국 첫 캐럴 앨범은=번안곡 ‘사의 찬미’를 부른 가수 윤심덕이 1926년 10월 발표한 ‘파우스트 노엘’과 ‘싼타크로쓰’가 국내 최초의 캐럴 앨범으로 기록된다.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는 “파우스트는 영어 ‘퍼스트(First)의 20년대 일본식 발음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퍼스트 노엘’을 부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캐럴이 보편화 된 것은 해방 이후 미군을 통해 들어온 외국 팝가수들의 캐럴 음반을 통해서다. 50년대부터 창작 캐럴이 유행하기 시작하는데, 트로트 리듬에 캐럴 느낌이 나는 가사를 입혔다.

 캐럴하면 코미디언이 부르는 코믹 버전을 빼놓을 수 없다. 최초의 코믹 캐럴은 66년 코미디언 서영춘과 여성 듀오 갑순을순이 부른 ‘징글벨’이다. 80년대 들어 코믹 캐럴 시장은 폭발적으로 커졌다. 82년에 나온 코미디언 심형래의 캐럴 음반은 수십만 장이 팔리기도 했다. 코믹 캐럴은 전통적인 캐럴의 멜로디를 그대로 썼는데, 대다수 노래가 저작권이 소멸돼 비용 걱정 없이 자유롭게 쓸 수 있어 인기였다. 통상 저작권자의 사후 70년이면 저작권이 모두 풀린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따르면 ‘징글벨’(1893년 소멸) ‘기쁘다 구주 오셨네’(1872년) ‘고요한 밤 거룩한 밤’(1963년) ‘위 위시 유어 메리크리스마스’(16세기) ‘퍼스트 노엘’(16세기) 등의 저작권이 이미 끝났다. 이 노래를 똑같이 부르든, 리메이크하든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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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에이프릴의 앨범 ‘스노우맨’

 그런데도 사람들은 왜 캐럴이 점점 안 들린다는 걸까. 업계에서는 아이돌 중심으로 재편된 가요 시장의 트렌드가 겨울 캐럴 시장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본다. 전통의 캐럴 대신 겨울 시즌송이 가요 시장을 장악했고, 새로운 캐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 박성민 홍보팀장은 “2000년대 들어 기존 캐럴을 리메이크하기 위해 저작권 협의를 하는 건수가 확연히 줄었다”고 전했다.

최규성씨는 “거리에서 캐럴이 사라졌다고 느끼는 것은 가수들이 창작곡을 주로 발표하는 이유도 있겠지만, 스마트폰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는 디지털 시대의 산물이기도 하다”고 분석했다.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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