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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정체성 모호한 ‘짬뽕 전공’ 누가 맛있어 할까

중앙일보 2015.12.24 01:52 종합 32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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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유
논설위원

 젊은이들은 우울하다. 매년 50만 명이 넘는 대졸자(전문대 포함) 중에서 일자리를 얻는 건 절반 남짓에 불과하다. 경제 상황만 탓하기에는 대학 문을 나선 이들의 전공과 일자리 미스매치(mismatch)가 심각하다. 개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외려 2024년까지 대졸자 79만 명이 노동시장에 초과 공급될 것이란 전망이다. 인문·사회·사범 계열은 넘쳐나고 기계·금속·전기·전자·건축·화공 등 공학계열은 더 부족해진다는 것이다(한국고용정보원). 취업 스트레스와 울분, 분노의 분출이 가득한 울혈(鬱血)사회가 심화될까 걱정된다.

전공 융·복합 명분으로 여러 학과 뒤섞는 레시피론
니트족만 양산 우려, 기득권 혁파가 대학 개혁 본질


 일자리 미스매치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구직자의 눈높이와 역량, 일의 질, 기업체의 고용력 등이 얽혀 있다. 이를 풀려면 대학의 역할이 중요하다. 글로벌·디지털 시대에 맞는 진화가 필요한 것이다. 한데 ‘통조림화(canned)된 전공’에만 집착한다. 당연히 순수·기초 학문은 존중돼야 한다. 그렇다고 전국 350개 넘는 대학이 그 많은 붕어빵 전공을 운영할 필요가 있을까. 학부 과정 기초 학문은 국립대와 일부 사립대가 주로 맡고, 심화 과정은 대학원으로 연계하는 발상의 전환이 절실하다. 대신 중규모 대학들은 실용적이고 창의적인 전공 중심의 리모델링을 고민해야 한다. 그래야 ‘문송(문과라 죄송)’이나 ‘인구론(인문계 90%가 논다)’ 같은 말이 생기지 않는다. 신조어는 시대의 상징이다. 단어에 응축된 뜻이 송곳처럼 날카롭다.

 그런데 송곳이 또 생겼다. ‘전짬뽕(전공 짬뽕)’이다. 대학이 구조조정을 한답시고 여러 전공을 조금씩 섞는 걸 빗댄 말이다. 어찌 보면 맛있을 것도 같다. 대학들이 나름 고민한 레시피이고, 또 입맛 까다로운 기업체의 요구를 반영했을 테니까. 하지만 무슨 맛인지 알 수 없는 게 수두룩하다. 굳이 대학명은 밝히지 않겠지만 다음의 덧셈을 풀어보자.

 “영어+일본어+중국어=글로벌지역문화학과, 도시지역학+건축학+컴퓨터공학=에너지플랜트학과, 테솔 영어과+일본어과=항공서비스학과, 일어일문과+프랑스어문과=일본프랑스어문과.”

 ‘대학내일20대연구소’가 조사한 학과 통폐합 사례다. 사회 변화를 따라잡기 위한 고뇌라기보다는 반발하는 교수들의 자리 보전을 위한 ‘억지 합방’에 가깝다. 더 희한한 일도 벌어지고 있다. 교육부가 한 대학에 연간 300억원씩 3년간 최대 900억원을 대주는 산업 연계교육 활성화 선도대학(일명 프라임 사업)을 내걸자 유수 대학들이 ‘전짬뽕’ 경쟁에 뛰어들었다. 일부 대학에선 경영학부·무역학부·물리학과·수학과 정원을 일부 빼다 융합경영금융학과를, 기계·전기·전자·의학·생명공학 5개 학과를 묶어 바이오메디컬엔지니어링공학과를 만들겠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자존심도 없느냐”는 반발에 부닥치자 일단 멈칫하는 모양새다. 새해에 발표한다니 두고 볼 일이다.

 물론 대학의 변신은 시급하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한국 대학의 경쟁력을 세계 60개국 중 53위로 매긴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고등교육 이수율은 세계 최고인데 교육의 질과 사회 흡수력은 낙제란 얘기다. 하지만 인위적인 전공 급조는 곤란하다. 자칫 학생도, 취업자도 아닌 니트(NEET: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족만 배출할 우려가 있다. 니트족을 연구한 김광석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15~29세 청년층 니트족 163만 명 중 70% 이상이 대졸자”라며 “전체 대학의 절반 이상은 전공 운영의 틀을 바꿔야 한다”고 진단했다.

 세밑 젊은이들의 얼굴이 어둡다. 새해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 정년이 60세로 늘어나는 걸 달가워 않는 눈치다. 젊음을 울혈케 하는 어른들의 책임이 크다. 그 책임의 일부를 대학이 나눠야 한다. 교수부터 기득권을 내려놓고 제자의 미래를 열어줘야 한다. 레시피만 화려한 짬뽕 전공으론 일자리 미스매치나 니트족을 줄여나갈 수 없다. 대학 개혁의 급소는 구성원의 기득권에 있다. 교육부의 ‘돈 낚시’에 좌고우면 말고 자존심을 지키며 자발적으로 혁파해야 한다. 구각을 깨려면 아픔이 상당할 것이다. 새해 대학이 가야 할 방향이다.

양영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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