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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대통령 진박 밀어주기, 정도가 심하다

중앙일보 2015.12.24 01:44 종합 34면 지면보기
박근혜 대통령이 ‘진실한 사람’을 다시 언급했다. 박 대통령은 올해 마지막 국무회의에서 “들어갈 때 마음과 나올 때 마음이 한결같은 이가 진실한 사람”이라고 정의를 내렸다. 이어 개각으로 국무회의를 떠나는 장관 이름을 하나하나 거명하며 감사를 표시했다. 거명된 장관 5명은 한결같이 총선 출마 예정자다. 지난달 10일 “진실한 사람들만이 선택받을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국무회의 발언에 이은 진실 시리즈 2탄이다.

출마 장관 옆에 두고 ‘진실한 사람’ 언급
TK에 친위 세력을 심겠다는 오해 자초
대통령은 선거 중립 지켜야 할 국가원수

 박 대통령 발언은 각종 법안의 시급한 처리를 당부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입법 마비 상황인 정치권을 떠올리면 국정 최고책임자의 고민과 충정으로 이해될 여지는 있다. 하지만 형식과 시점 모두 부적절했다.

 두 차례 모두 출마 장관들을 옆에 두고 현역 의원을 비난하는 형태로 나왔다는 게 문제다. 정치권은 ‘물러나는 장관들이 진실한 사람’이란 메시지와 ‘장관들은 국회에 돌아가도 마음을 바꾸지 말라’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니 여당에선 “경선에서 박 대통령 사람들로 물갈이하려는 의도”라고 의심한다. 야당에선 “총선에서 야당 의원을 겨냥하는 노골적 선거개입”이라고 비판한다.

 공천도 앞뒀다. 가뜩이나 새누리당은 ‘TK(대구·경북) 물갈이’와 ‘진박(진실한 친박) 논란’으로 자중지란이다. TK 지역에선 대통령과의 친밀도를 인도의 카스트 제도에 빗댄 ‘친박 4대 계급론’이 퍼졌다고 한다. 박 대통령이 “배신의 정치를 심판해 달라”고 유승민 의원을 찍어낸 뒤 생긴 현상이다. 유 의원과 경쟁하는 이재만 전 대구 동구청장 출정식엔 친박계 의원들이 몰려가 “이재만은 진실하다”는 말을 쏟아냈다.

 더욱 걱정스러운 대목은 여당의 이런 ‘진실 찾기’ 행태가 유 의원과 가까운 사람을 대상으로, 더 나아가 TK만이 아닌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인천 송도와 경남 사천에서 열린 대통령 행사엔 이 지역 총선 예비후보인 민경욱 전 청와대 대변인과 최상화 전 청와대 춘추관장이 참석해 박 대통령과 사진을 찍었다. 대통령 행사엔 경호에 따른 청와대의 사전 승인이 필요하다. 인천공항공사 박완수 전 사장, 한국공항공사 김석기 전 사장 등 친박 인사들도 공기업을 팽개친 채 선거판으로 달려가 ‘진실한 사람’을 외치고 있다.

 총선에서 개혁적 인물을 공천해 새 바람을 일으키는 건 정치발전 측면에서 바람직하다. 그러나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구현할 장관이나 청와대 출신을 텃밭 지역에 꽂아 넣는 걸 개혁 공천이라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대통령 임기 후반과 퇴임 뒤를 보장해 줄 친위 세력 구축용이란 의심을 산다. 출마할 장관들을 옆에 두고 대통령이 국회의원들에 대한 심판을 거듭 호소하는 건 국정은 뒷전이고 총선에만 관심을 둔다는 비판을 받을 만하다. 국회의원 겸직 장관 탓에 생긴 시한부 내각, 경력 관리용 장관을 만든 대통령의 인사도 국정 비효율의 원인 아닌가. 무엇보다 대통령은 선거에 개입할 수 없는 국가원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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