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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멈추고, 보다

중앙일보 2015.12.24 01:43 종합 34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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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훈
디지털제작실장

#1. “피자가 먹고 싶어요.”

 고작 피자라니. 예린(가명)이가 심리 전문가에게 했다는 첫마디는 사소했다. 오늘도 어느 집에선가 아이들이 칭얼대며 할 법한 얘기였다. 지옥에서 살아 나왔는데 고작 피자라니. 너무 일상적이어서 오히려 마음이 아렸다. 예린이는 아버지의 학대 속에 살던 11살 아이다. 12일 인천의 한 수퍼마켓에서 빵을 훔치려다 ‘발견’됐다. 아이가 훔치는 행위를 통해 우리에게 신호를 보내지 않았다면 모르고 지났을 것이다. 영하 6도에 반바지를 입고 맨발로 집에서 나와야 했던 아이를 말이다.

 피자가 일상적이어서 아팠다면 16㎏은 현실적이지 않아서 아렸다. 키 1m20㎝, 몸무게 16㎏인 5학년 아이의 모습을 머리로 떠올려 볼 재주가 내게는 없다.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키우던 강아지가 더 포동포동했다”는 취재 기자의 목격담만이 환청처럼 남았다.

 #2. “어쩐지 혼날 것 같았어요.”

 아이는 말한다. 아버지가 가두지는 않았다고. 그러나 밖으로 나가면 혼날 것 같았다고 했다. 그래서 이사 온 후 2년간 이웃은 아이의 존재를 몰랐다. 그 가족의 주인은 아버지였고 아버지는 아이의 주인으로 군림했다. 주인과 소유물이라는 인식은 모든 가정 폭력의 근원이다. 집 울타리를 넘어도 별반 다르지 않다. ‘갑질’의 근원 역시 여기에 있다. 모두 자기보다 약한 존재의 주인이고자 하고, 모두 자기 집단의 중심이고자 한다. 노자의 『도덕경』은 도(道)의 실천을 형상화한 15장에서 도를 주인이 아닌 손님(儼兮基若客)에 비유했다. 철학자 최진석의 해설은 이렇다. “인간은 이 세계에 손님으로 와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건설한 사회는 어떠한가. 모두가 주인으로 군림하려 한다. 노동자가 주인인 세상, 학생이 주인인 학교, 자본가가 주인인 기업, 재단이 주인인 학교…. (중략) 자신만이 주인이 되려는 사회는 경박하고 천박하며 사나워진다. 모두가 손님의 태도를 가지고 이루는 조화는 넓고 환하며 너그럽다.”

 #3. “인형을 받고 싶어요.”

 크리스마스에 인형 선물을 안겨 주는 건 좀 촌스럽다고 말하곤 했다. 시절이 변했다고 생각했다. 더 세련된 기부 방식을 찾지 못하는 사회단체를 답답해했다. 급하고 바쁘다는 이유로 1인당 소득 같은 통계의 겉만 봤다. 그런데 예린이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그저 인형 하나만을 원했다. 정작 그들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를 생각해보지 않았다. 실은 그들 옆에 가 어울려 보지도 않았다. 우리 또는 내가 주고 싶은 것을 중심으로만 봤다. 그러니 나 또한 주인 행세만 하려 했던 것이 아닌가.

 연말이다. 달력을 바꾸기 전에 집 근처 미술관은 꼭 가야겠다. 미술관 앞을 지날 때마다 펄럭이던 전시 안내 휘장이 계속 마음에 걸려 어떻게든 매듭을 짓고 가야겠다. 어쩌면 그림이 아니라 나를 볼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전시의 이름은 이렇다. ‘멈추고, 보다.’

김영훈 디지털제작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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