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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5년 뒤에도 친박이 남아 있을까

중앙일보 2015.12.24 01:38 종합 35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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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애
런던특파원

이젠 남의 소유지만 국회의사당 앞에 10층짜리 한나라당 당사가 있었다. 2000년 2월 처음 발을 들여놓을 때 참으로 을씨년스러웠다. 이른바 2·18 공천파동 때문이었다. 이회창 당시 총재가 개혁 공천을 한다며 허주(김윤환)계를 자르자 허주가 크게 반발했었다.

 KDI에서 잘나가던 경제학자가 그 무렵 텅 빈 당사 9층으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여의도연구소장 직함이었다. 정책 담당이었던 듯한데 어느덧 정무까지 챙겼다. 이 총재의 입을 통해 나오는 연설은 거의 모두 그를 거쳤다. 낙선한 이 총재의 어려운 사무를 살뜰히 챙긴 것도 그였다.

 그 무렵 그에게 왜 정치판에 들어왔냐고 했더니 대충 이렇게 답변했다. “나라가 엉망이 되는 듯해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유승민 의원이다. 요즘 그는 박근혜 대통령과의 관계로만 규정된다. 한때 친박이었으나 이젠 ‘짤박’이라나. 온당한 인식일까.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도 당시 사무총장이었다. 설화 때문에 곧 물러났지만 말이다. 사실 당시 한나라당에선 몇 사람 빼놓곤 모두 ‘이회창계’로 불렸다. 김 대표의 정치 연원은 그러나 훨씬 깊다. 1987년 YS의 통일민주당 당사를 구하러 다닌 이가 그였다.

 2002년 한나라당 당사가 북적였는데 최경환 의원은 이회창 총재의 특보였고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대변인이었다. 지금은 누구보다 박 대통령과 가까운 사람으로 불린다. 이들은 5년 뒤엔 어떻게 규정될까. 또 누구의 사람으로 불릴까. 스스로 지도자가 되지 않는 한 그리 될 터인데 말이다.

 야당과 달리 새누리당은 리더십의 향배가 정해지면 그리로 힘이 쏠리곤 했다. 그 덕분에 강력한 지도자를 만들어내 왔다. 박 대통령이 MB 대통령 시절에 철통 봉쇄하지 않았더라면 그와 가까운 의원 상당수가 MB 쪽에서 일했을 게다.

 특정 시점에 누구의 사람이란 게 종국에 누구의 사람임을 보장하는 건 아니란 얘기다. 또 그래선 곤란하다. 지도자는 오가지만 ‘선진’ 정당이라면 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구 총선 출마 예정자들 사이에 카스트제가 있다는 보도를 봤다. 진박(眞朴)-중박(中朴)-망박(望朴)-비박(非朴)에 진박 감별사까지 있다고 한다. 공복이 되겠다는 이들이 누구랑 가깝다고 뽑아달라니 한심하다. 도당(徒黨)이자 사당(私黨)이란 자인이기도 하다. 그들의 오늘 말이 내일의 행동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믿는 보스라면 순진하다. 더욱이 그 보스는 사당의 폐해를 부르짖던 인물 아니던가. 정치가 많이 아프다.

고정애 런던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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