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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균 칼럼] 리더십 상상력의 위력

중앙일보 2015.12.24 01:37 종합 35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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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균
대기자

정치는 추락했다. 국회는 경멸의 대상이다. 그곳은 리더십의 집결지다. 국회는 희망을 생산하지 못한다. 그것은 지도력의 역량 부족 때문이다. 그 빈곤의 핵심은 리더십 상상력이다. 상상력의 결핍은 정치 몰락으로 이어진다.
 

상상력은 도전과 비전 낳아
JP, “유럽서 차 몰고 다닌 경험
국정 보는 눈이 훤해져”
경부고속도로, 감수성의 작품
86세대의 낡은 틀 깨려면
내년 총선, 상상력 경연장 돼야


 ‘김종필(JP) 증언록’은 리더십 드라마다. 증언록은 중앙일보에 장기 연재됐다. JP가 언급한 지도력의 구성 요소는 여러 가지다. 결단과 용기는 으뜸이다. 그중에서 리더십과 상상력의 관계는 흥미롭다. 상상력은 통찰과 비전, 도전과 영감(靈感)을 제공한다.

 상상력은 타고난다. 하지만 연마와 경험으로 확장된다. 10대의 JP는 독서로 감수성을 키웠다. 그는 역사책과 위인전에 몰입했다. 삶의 경험은 감수성을 단련시켰다. 5·16 이후 1960년대 그는 해외여행을 떠났다. 자의반(自意半)·타의반 외유였다. 집권 세력 내분으로 인한 여정이었다. 그의 나이는 30대 후반이다. JP는 “구라파(유럽) 지역 수만㎞를 내가 직접 자동차를 몰고 다녔다. 그렇게 돌아다니니 세상을 보는 눈이 훤하게 밝아지더라”고 했다. 그는 19세 때 자동차 운전면허를 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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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아우토반(독일 고속도로)에서 차를 몰았다. 100마일 이상 속도로 달렸다. 그 경험은 그의 정치적 감수성을 풍요롭게 만들었다. 상상력은 국가 개조의 파격을 낳는다. JP는 외쳤다. “부산까지 고속도로를 닦고 서울에서 평양, 신의주로 가는 한반도 종단 도로를 뚫어야 한다. 젊은이여, 자동차에 연인을 태우고 시속 100㎞로 청춘을 구가하는 그날이 온다. 그날을 위해 궐기하자.”(1965년 강연, 39세) 그 구상은 실천에 옮겨졌다. 박정희 대통령은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착수했다. 그때 야당과 대다수 지식인들은 반대했다. “쌀도 모자라는데 왜 길을 닦아 농지를 훼손하느냐, 부유층 유람도로”라고 비난했다. 상상력은 기존 질서를 해체시킨다. 그것은 국정의 개혁의지를 강화한다.

 JP는 “유럽에서 영웅과 위인들의 동상, 민족 기록화(畵)를 볼 때마다 부러웠다”고 한다. 그는 애국선열 조상(彫像)건립위원회를 만들었다.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 동상 건립을 주도했다. 민족 기록화 제작 사업도 벌였다. 초대형 그림을 그릴 수 있게 지원했다. 그는 이렇게 회고한다. “나라의 위기 때 사회의 분열상을 극복, 통합하는 국민정신이 중요하다. 동상과 민족 기록화의 공공예술에 담긴 역사적 상상력과 정서적 일체감을 통해 통합 정신이 잉태된다.” 동상에 대한 그의 감수성은 시들지 않는다. “광화문광장에 건국의 이승만, 근대화의 박정희, 경제의 이병철·정주영의 동상을 세워야 한다.”

 JP의 행적은 속담을 떠올린다. 백문이불여일견(百聞而不如一見·백 번 들어도 한 번 보는 것보다 못하다)-. 그는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야속(野俗)한 것을 체험하니까, 국정을 다루는 시선이 다양해졌지.” 그것은 선진국 현장 체험과 리더십 탐구였다. 거기서 얻은 상상력은 정책에 반영됐다. JP는 “박정희 대통령이 정상외교가 아닌, 나처럼 자유롭게 세계를 다니셨으면 더 많은 일을 하셨을 거야”라고 한다.

 박정희의 20대 삶 중에 만주국이 있다. 만주국은 일본의 괴뢰국이다. 그 어두움의 다른 쪽 만주(동북3성)는 변경(邊境)이었다. 제국 일본은 그곳에서 새로운 국가 실험을 했다. 변경은 야망과 모험이다. 박정희는 그 변경을 찾아갔다.

 JP는 “박 대통령은 국민(초등)학교 선생이란 주어진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 만주로 갔어. 여비에 쓰려고 형의 금시계를 몰래 갖고 떠났지.” 박정희는 만주 군관학교에 들어갔다. 그 경력은 그에게 정치적 부담이었다. “그 때문인지 박 대통령은 만주 시절 얘기를 한마디도 꺼낸 적이 없어.” 하지만 변경의 경험은 자극이 되었다. 그것은 집권 후 국정관리에 영감을 주었을 것이다. JP는 “좋은 지도자가 되려면 세계의 넓고 깊음을 체험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 경험은 세상의 틀을 깨는 도전의 상상력을 준다.

 한국 정치는 만성 질환이다. 야당의 주력은 86운동권 세대다. 그들은 낡은 틀에 머물러 있다. 그 틀은 민주 대 반(反)민주의 이분법이다. 그들의 투쟁 시절인 80년대 경제는 활기찼다. 대학에 취업서류가 쌓였던 때다. 학생들은 골라서 취직했다. 86세대 정치인들은 그 틀에서 세상을 본다. 지금 젊은 세대의 취업 고통을 실감하지 못한다. 일자리 쟁점 법안 처리에 결사반대다. 86세대의 상상력은 빈곤하다. 새로운 세상을 열려는 비전과 의지는 희박하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치열하지 못하다. 청년들의 취업 절규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한다. 그들의 정치 상상력은 답답하다. 파격과 도전의식은 미흡하다.

 한국 정치는 새로운 지평을 요구한다. 낡은 틀을 깨야 한다. 그 파괴력은 리더십 상상력에서 나온다. 내년 4월 총선은 리더십 상상력의 경연장이 돼야 한다.

박보균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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