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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치료라면 치료비도 같게 해야

중앙일보 2015.12.24 01:24 경제 7면 지면보기
#여대생 박모(24)씨는 지난해 가을 한 달간 허리 통증으로 병원에 입원했다. 물리치료사로부터 통증을 줄이는 도수치료(Manual Therapy)를 60회 넘게 받았다. 도수치료는 손이나 신체 일부를 이용해 척추·관절·근육·인대 등의 통증을 줄이는 치료다. 그런데 그 많은 도수치료가 다 같은 게 아니었다. 병원에서 보험사에 청구한 내용을 보면 ‘도수치료1’, ‘도수치료2’, ‘도수치료3’으로 나눠져 각각 20번 정도씩 받았다. 같은 ‘도수치료2’라도 가격은 9만원이거나 6만원으로 달랐다. 박씨는 “왜 도수치료가 1,2,3번으로 나눠 있는지, 차이는 무엇인지 전혀 느끼지 못했다”고 말했다.

골병 드는 실손보험 <하> 과잉 진료 막으려면
한 달 입원해 허리통증 물리치료
기준 없이 도수1·2·3 나눠 청구
관리 기준조차 없는 게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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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잉 진료와 부당 청구로 인해 비급여 의료비와 관련한 실손의료보험의 부담이 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비급여 의료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미 감사원은 올 5월 보건복지부·국민건강보험공단·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비급여 진료비의 관리 방안을 마련하고, 의료기관의 부당 징수에 대해 주의를 가져줄 것을 요구했다.

 올 9~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비급여 의료제도에 대한 개선 요구가 빗발쳤다. 김춘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은 국감에서 “비급여 의료비 문제를 건보공단과 심평원이 당면과제로 삼고 해결할 필요가 있다”며 “비급여 의료비에 대한 정기 실태조사를 통해 적정의료비 정보를 국민에게 제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정록 새누리당 의원도 “비급여 의료비를 잡지 못하면 건강보험 축이 무너질 수 있다”며 “비급여 관리방안을 정부 차원에 제대로 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비급여 의료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은 관리하는 체계 자체가 아예 없다는 점이다. 건강보험공단이 부담하는 급여 부분과 달리 비급여 부분은 의료기관이 명칭·가격·진료량 등을 자율적으로 정한다. 이런 문제는 올 10월 국회예산정책처에서 발간한 ‘2016년도 예산안 부처별 분석’에서도 제기됐다. 예산정책처는 “비급여 의료비에 대한 관리 체계가 없어 국민의 의료비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며 “의료기관별로 비급여 의료 행위의 명칭과 코드가 표준화되지 않아 실상을 파악하기도 어렵다”고 지적했다.

 김양균 경희대 교수(의료경영학)는 “한국의 비급여 분류·적용 체계는 전문가들도 혼란스러워 할 정도로 명확하지 않다”며 “정부가 심도 있는 검토를 통해 현행 비급여 항목과 수가 등에 대한 합리적인 표준과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선 건강보험공단의 급여 대상처럼 비급여 의료행위의 가격과 표준화를 심평원에 위탁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자동차보험 분야도 2013년 7월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 개정을 통해 차 사고에 따른 진료수가의 심사를 심평원에 위탁할 수 있도록 했다.

 또 비급여 문제를 종합적으로 다룰 실손의료보험 정책 협의체를 구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도 있다. 지금까지 비급여 제도에 대한 문제 제기와 해결을 위한 노력이 이어졌지만 제도개선 논의를 위한 공식적인 협의체조차 없는 게 현실이다. 이에 따라 비급여 관리체계 마련을 위한 민관 공동의 협의 기구를 만들자는 제안도 나오고 있다. 여기엔 정부, 보험업계·의료계 등 이해당사자, 시민단체가 참여한다.

 좋은 선례도 있다. 1999년 당시 보험업계와 의료계는 교통사고 피해자의 진료수가를 두고 첨예하게 대립했다. 결국 건설교통부(현 국토교통부)는 자동차보험 진료수가의 심사·조정을 위해 의료·보험업계와 공익위원으로 구성된 협의체(자동차보험진료수가분쟁심의회)를 구성해 지금도 운영을 하고 있다. 의료기관과 보험사는 심의회를 통해 권리구제 절차를 밟을 수 있다.

 이재용 생명보험협회 시장업무지원본부장은 “무분별한 비급여 급증으로 실손보험제도가 부실해질 경우 그 피해는 고스란히 대다수의 국민에게 돌아간다”며 “복지부 등 관계기관과 함께 비급여 표준화와 민관 정책협의체 구성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강병철 기자 bong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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