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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분석] 스모킹 건이 고철로 변하고 있다

중앙일보 2015.12.24 00:41
천안함 폭침사건의 '스모킹 건'(결정적 증거)이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정부는 2010년 3월 26일 백령도 인근에서 발생한 천안함 폭침사건을 북한의 소행으로 결론을 내릴 때 해저에서 건진 어뢰 추진체(2010년 5월 인양)를 결정적 증거로 내놨다. 그런 어뢰 추진체가 2010년8월부터 5년 4개월여 동안 천안함조작설과 관련한 재판이 진행되면서 거의 자연상태에 방치돼 녹이 슬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 특히 북한군이 제작한 것이라는 결정적 단서였던 '1번'이라는 글자가 거의 지워졌다.

23일 오전 11시, 국방부 조사본부 1층 로비에 전시된 어뢰추진체는 곳곳이 부식이 진행돼 바닥에 녹이 떨어져 있고, ‘1번’이라는 글씨는 별도의 조명을 비춰 유심히 들여다 봐야만 알 수 있을 정도로 희미하게 변해 있었다. 국방부는 당시 조사결과를 발표한 뒤 어뢰 추진체를 국방부 조사본부 로비에 전시해 왔다.

어뢰 추진체와 같이 부식이 우려되는 물품들은 부식 방지를 위한 화학처리를 하는 등 영구 보존을 위한 조치를 하는게 보통이다. 하지만 국방부는 아무런 조치 없이 유리관만 씌워뒀다. 재판 때문에 역사적 증거물로 남겨야 할 어뢰추진체의 훼손을 막을 수 없었다는 게 국방부의 입장이다.

지난 2010년 8월 김태영 당시 국방부 장관 등 5명은 천안함사건 조작설을 제기한 신상철 서프라이즈 대표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이후 담당 검사만 5번이 바뀌고, 46차례의 공판을 하고 나서야 지난 7일 결심공판이 이뤄졌다. 검찰은 신 대표에게 징역 3년을 구형했다. 재판부는 내년1월 25일 신 대표에 대한 선고공판을 진행한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어뢰추진체는 재판의 중요한 증거물로 채택됐다"며 "산화방지나 글자 퇴색 방지와 같은 보존처리를 할 경우 증거물 변형, 훼손, 조작의 논란을 야기실 수 있어 담당 검사와 변호인측의 증거물 훼손 방지 요구가 있었다“고 말했다. 다른 국방부 관계자도 "어뢰추진체의 영구보존을 위해 X-선 촬영과 녹제거, 방습ㆍ방부 처리를 했다면 증거물 조작논란이 일 수 있었다"며 ”(논란이 벌어진) 오늘(23일)도 검찰 측에서 어뢰추진체를 ‘그대로 놔 두는게 좋겠다’는 입장을 전해왔다“고 전했다.

그렇더라도 국방부가 조금 더 신경을 썼더라면 어뢰추진체의 산화(酸化)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물관 등은 자료의 변형과 변색을 우려해 항온ㆍ방습 시설에 보관하고 사진촬영 조차 금지시키는 조치를 취한다. 하지만 국방부 측은 어뢰추진체를 출입문에서 불과 5m가량 떨어진 곳에 전시해 외부에 쉽게 노출시켰고, 사진 촬영 등을 허용하면서 산화를 가속화한 측면이 있다. 평택 2함대에 전시한 천안함 역시 어뢰추진체 처럼 산화가 진행된 상태다.

군 당국은 재판이 마무리되면 어뢰추진체를 평택2함대에 있는 천안함 전시관 등으로 옮겨 영구보존처리를 하겠다는 입장이다. 김 대변인은 ”법원ㆍ검찰과 협의해 어뢰 추진체 보존 문제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음달에 1심 재판이 끝나더라도 어느 한쪽이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항소를 할 경우 재판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훼손이 더 심각해 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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