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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요정에서 탱고 여인으로' 손연재, 올림픽 시즌에 변신 선언

중앙일보 2015.12.22 18:28
"요즘 제가 가슴 속에 새기고 있는 말이 있어요. '후회를 남기지 말자' 는 거죠. '후회 없이' 가 지금 저의 좌우명이라고 할까요."

리듬체조 요정 손연재(21·연세대)가 돌아왔다. 러시아에서 내년 시즌 프로그램 구성을 마치고 22일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내년 8월 리우 올림픽에 임하는 각오를 물었더니 손연재는 또렷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손연재는 내년 리우 올림픽을 마지막으로 18년 리듬체조 선수 인생을 마무리 할 계획이다. 그의 마지막 목표는 메달 획득이 아니다. 손연재 다운, 손연재 만의 리듬체조를 보여주고 싶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후회를 남기지 않는 마지막 연기를 펼치고 싶다는 게 그의 각오다.

손연재는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후회 없이 하자'고 수없이 다짐했다. 지난해 인천 아시안게임에선 메달을 따야한다는 부담감이 컸다. 내년엔 부담을 내려놓고 즐기고 싶다. 훈련을 즐겁게 하면서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이렇게 준비하면 좋은 결과가 따라올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손연재는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한국 리듬체조 사상 최고 순위(5위)를 기록했다. 지난해 아시안게임 금메달에 이어 올해 광주 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도 금메달을 획득했다. 한국 리듬체조 최초이자 최고의 기록을 만든 손연재지만 이제 그는 더이상 어린 요정이 아니다. 내년엔 만 22세가 된다. 대부분의 리듬체조 선수들이 은퇴하는 나이다.

마지막 무대에서 최고의 연기를 보여주기 위해 손연재는 과감한 변화를 선택했다. '리듬체조 요정'의 이미지를 떨쳐버리고 '성숙한 여인'으로 거듭나기 위해 연기의 틀을 바꾸는 것이다. 그는 리본 종목 배경 음악으로 탱고 음악인 ‘리베르탱고(Libertango)’를 선택했다. 아스토르 피아졸라의 원곡에 미셀 카밀로의 재즈 기타 선율을 더한 곡이다. 갈라쇼에서 손연재가 팬들을 위해 탱고에 맞춘 연기를 선보인 적은 있지만 공식 대회에서 탱고를 선택한 건 처음이다.

지금까지 손연재는 리본 연기의 배경음악으로 주로 클래식을 선택했다. 손연재는 "매년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내년에는 리본 연기가 그럴 것이다. 가장 기대되는 종목이 리본"이라고 말했다. "남미에서 열리는 올림픽이라 탱고 음악을 선택한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특별히 그걸 고려하진 않았다"며 웃었다. 

탱고 음악은 성숙하고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줄 수는 있지만 템포가 빨라 연기가 쉽지 않다. 리베르탱고 원곡은 145 BPM(beats per minute)으로 알레그로(빠르게)에 해당하는 빠르기다. 댄스 스텝과 회전, 점프 등의 동작이 음악에 맞춰 빨라지면 실수가 나오기 쉽다. 손연재는 "지금까지의 리본 연기와는 완전히 다를 것이다. 빠른 음악이라 힘들겠지만 훨씬 재미있게 연습하고 있다"고 말했다.

곤봉은 클럽 데스 벨루가의 '올 어보드(All Aboard)' 란 곡을 골랐다. 경쾌한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터져나오는 곡이다. 하지만 프로그램 구성에 맞게 배경음악이 바뀔 수 있다. 볼은 영화 '대부'의 삽입곡으로도 유명한 '팔라 피우 피아노(Parla Piu Piano)'다. 후프 음악으로는 소피 마르소 주연의 프랑스 영화 '팡팡' OST 중 '왈츠(Valse)'를 선택했다.

성숙한 여인으로 변신을 위해 손연재는 웨이트 트레이닝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 9월 세계선수권이 끝나고 귀국한 뒤 연세대 스포츠레저학과 교수가 짜준 체력 관리 프로그램을 소화하면서 체력을 길렀다. 두 달간 고질병인 발목 통증 치료에 힘쓰는 한편 웨이트 트레이닝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리듬체조 선수가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는 건 보기 드문 장면이다. 다른 선수들은 발레와 윗몸 일으키기 등 기초 스트레칭으로 근력을 기른다.

하지만 손연재는 체력을 끌어올리는 게 후회 없는 연기를 위한 출발점이라고 판단했다. 러시아 전지훈련에도 체력을 전문적으로 관리해주는 트레이너가 동행하고 있다. 손연재는 "예전엔 웨이트 트레이닝을 열심히 하지 않았다. 이번에 집중적으로 해보니 프로그램 준비가 훨씬 수월하다. 올림픽 때도 체력이 달리지는 않을 것"이라고며 자신감을 나타냈다. 혹독한 웨이트 트레이닝 탓인지 손연재의 얼굴은 눈에 띄게 홀쭉해 보였다.

프로그램 구성 난도는 올해와 비슷하다. 손연재는 "점수를 받을 수 있는 기술을 많이 넣고, 감점을 당할 수 있을 부분은 과감히 정리했다"고 설명했다. 손연재의 가장 큰 장기는 한 쪽 발을 바닥에 고정하고 다른 한 다리를 접었다 폈다 반복하며 회전하는 '포에테 피봇' 기술이다. 최대 11바퀴를 도는데 제대로 수행하면 1.7점 정도 받을 수 있는 난도다. 4개 종목에 모두 이 동작을 넣었다. 높은 예술점수를 위해 후프·리본·곤봉 등 수구를 조작하면서 경쾌하게 걸어다니는 댄스 스텝 비중도 늘렸다.

김지영 대한체조협회 리듬체조 기술위원장은 "프로그램이 올해보다 훨씬 알찬 느낌이 든다. 그만큼 연기 완성도가 중요하다. 실수를 줄인다면 최고의 연기를 펼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소영 기자 psy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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