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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첫 한·중 해양경계획정회담서 격돌한 '해양법 마피아'들

중앙일보 2015.12.22 16:20

“우리 둘다 ‘해양법 마피아’인 것 같습니다(웃음)”

22일 오후 3시 첫 한·중 해양경계획정 회담이 열린 서울 도렴동 외교부 17층 양자회의실. 외교부 뿐 아니라 군·해양 당국 관계자 등 관계부처 당국자들로 구성된 양국 대표단이 긴장감 속에 마주앉은 가운데 한국 측 수석대표인 조태열 외교부 2차관이 이렇게 말하자 중국 측 류전민(劉振民) 외교부 부부장(차관)이 환하게 웃었다. ‘마피아’는 외교부 내에서 전문성이 필요한 특정 분야 업무에 정통한 이들을 일컫는 속칭이다. 통역은 이를 “우리 둘다 해양법 전문가인 것 같습니다”라고 전했다.

앞서 조 차관은 모두발언에서 “류 부부장은 조약국장 시절 양국간 국장급 해양법 회담에 중국 측 수석대표로 참석하신 경험이 있어 이 회의에 남다른 감회가 있으실 것으로 생각된다. 저 역시 개인적으로 1979년 입부한 이후 82년 유엔해양법이 채택될 때까지 3년 동안 해양법을 담당하며, 문안 작성에 직접 참여한 적이 있어 (오늘 회의가)특별한 감회가 있다”고 했다.
조 차관의 발언에 류 부부장은 중간에 통역을 끊고 “바로 (지금과)같은 회의실입니다”라고 하며 웃었다. 류 부부장이 2003~2006년 조약국장으로 재직할 때 이날과 마찬가지로 양자회의실에서 한국 측과 국장급 협의를 했다고 이야기한 것이다. 조 차관의 ‘해양법 마피아’ 발언은 이처럼 두 수석대표 모두 해양법을 다뤄본 경험이 있다는 데서 나온 농담이었다. 직업 외교관인 류 부부장은 법학으로 석사 학위를 땄고, 외교부 내에서 조약·국제법 업무만 15년 넘게 다뤘다. 조 차관은 양자·다자 통상 분야에서 크고 작은 협상에 직접 관여하며 잔뼈가 굵은 협상 베테랑이다.

하지만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여기까지였다. 양 측은 서해에 배타적경제수역(EEZ)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를 두고 격돌했다. 조 차관은 모두발언에서 “유엔해양법협약과 국제법을 근거로 한 공평한 획정을 목표로 하겠다. 국제법에 따라 대화와 합의로 획정이 가능하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류 부부장도 “황해는 두 나라를 긴밀히 연결시켰다. 중·한 양국은 중첩되는 수역 문제에 대해 논의해왔고, 해양법협상에서, 상당히 국제법에 근거해 공평하게 해양 획정 문제를 처리하기로 합의했다”고 말했다.

두 대표가 똑같이 ‘국제법에 근거한 공평한 획정’을 원칙으로 내세웠지만, 그 뒤에 숨은 입장은 평행선이다. 양국은 1996년 유엔해양법협약에 가입한 이후 EEZ를 정하는 문제로 부딪쳐 왔다. 유엔해양법협약 상 보장되는 EEZ는 연안에서 최대 200해리(약 370km)까지 확보할 수 있는데, 한·중 간 수역은 너무 좁다는 게 문제다. 가장 좁은 곳은 184해리(약 340km), 가장 넓은 곳도 400해리(약 740km)가 채 되지 않는다. 양국이 설정할 수 있는 EEZ가 상당부분 중첩되는 상황이다. 10여 차례의 국장급 협의에도 결론을 내지 못한 이유다.

한국 입장은 양측에서 등거리인 중간에 선을 그어야 한다는 중간선 원칙이다. 하지만 중국은 대륙붕, 해안선 길이, 인구 수에 역사적 배경까지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 더 동쪽으로 긋는 게 공평하다고 주장한다. 그래야 이른바 형평성이 맞다는 것이다.

EEZ 획정에 따라 말 그대로 바다가 양분되고, 이는 되돌릴 수 없는 영속성이 있기 때문에 양 측 모두 한 치의 양보도 할 수 없다는 태도로 임하고 있다. 자국 어선들의 조업구역과도 직결되는 문제다.

특히 이어도 관할권도 주요 쟁점 가운데 하나다. 마라도에서 149km, 중국 퉁다오에서 247km 떨어져 있는 이어도는 바다 밑 4.6m에 잠겨 있는 암초다. 국제법 상으로 영토가 될 수 없다. 양국도 그래서 “한·중 사이에 영토분쟁은 없다”고 합의한 바 있다.

하지만 이어도를 어느 나라의 수역에 둘 지는 영토분쟁 이상의 폭발력이 있는 예민한 사안이다. 한국의 중간선 원칙에 따르면 한국 측 수역에 있는 것이 명확하다. 하지만 중국은 이어도가 EEZ 한계인 200해리가 서로 중첩되는 구역에 있다고 주장하며 한국이 해양과학기지 설치 등 관할권을 행사하는 데 반발해 왔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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