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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현 교수의 스트레스 클리닉] 내년이 인생의 마지막 해라면 뭘 하시겠습니까

중앙일보 2015.12.22 02:44 강남통신 10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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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죽을까봐 걱정돼 잠이 안 와요) 복통을 느끼고 있을 때 암에 대한 방송을 봤는데 그때부터 제가 암에 걸렸다고 생각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불안감은 더 높아져만 갔고요. ‘암이 전이된 건 아닐까, 전이됐으면 나는 얼마 정도 살 수 있지’하는 생각이 꼬리를 물면서 점점 더 죽음이 두렵고 불안해졌습니다. 일주일의 대부분은 죽음에 대한 생각 때문에 잠을 못 잘 정도입니다. 몸이 아픈 증상도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몸이 왜 이렇게 암에 걸린 듯 아픈 걸까요.

A 마음의 문제가 몸으로 나타날 수 있다

(건강염려 떨쳐야 잘 살 수 있다는 윤 교수) 복통은 배가 아픈 것이지만 진짜 그 통증을 느끼는 것은 뇌 안에 있는 ‘통증 센터’입니다. 예를 들어 맹장염에 걸리면 그 정보가 신경계를 통해 뇌에 전달되어 통증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뇌로는 우리 몸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정보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것을 다 느꼈다가는 일상 생활이 불가능하기에 정수기처럼 필터 장치가 있어 아주 중요하지 않은 정보들은 다 걸러 줍니다.

 그런데 불안 신호가 올라가면 이 기능이 약화되면서 더 많은 정보를 뇌에서 받으려고 합니다. 불안이란 곧 위험이 닥쳐올 거라는 신호이기 때문이죠. 복통이면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그런데 암에 대한 방송을 보고 뇌가 불안해지니 정보 해석에 왜곡이 일어나는 겁니다. 과장해서 해석하게 된 것이죠. ‘이것은 암이다’라고요. 그러다보면 더 불안해 지고 통증을 더 과장해서 해석해 통증을 더 강하게 느끼게 됩니다.

 오늘 사연처럼 건강염려로 고생하는 분들을 자주 봅니다. 심해지면 일상 생활의 대부분을 건강 염려 속에서 보내고 그러다 보니 반복적으로 이런 저런 병원을 찾아가는 게 일상이 되기도 합니다. 이렇게 건강염려란 늪에 잘못 빠지게 되면 빠져 나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사실 건강염려는 죽기 싫은 병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살고 싶은 욕구가 큰 사람에게 찾아 오기 쉽다는 것이죠. ‘헛된 인생, 내일 죽어도 그만이다’라며 염세적으로 사는 사람에게 건강염려가 찾아 올 일이 없겠죠. 물론 염세적으로 사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만 오히려 그렇게 염세적으로 사는 사람보다 잘 살고 싶은 마음 때문에 찾아 온 건강염려라는 병에 걸린 분들의 삶의 질이 더 부정적이 되기 쉽습니다. ‘내일 죽어도 그만이다’ 생각하는 분은 내일에 대한 걱정이 없으니 오늘을 마음 편하게 즐기며 살 수 있는데 ‘내일 꼭 살아야 한다’고 걱정하는 분은 그 걱정에 오늘을 엉망으로 보내게 되는 황당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죠.

 과거인 어제, 중요합니다. 미래인 내일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 있는 것은 바로 지금, 이 순간이죠. 불안과 걱정은 미래를 생각할 때 찾아 오는 감정입니다. 미래를 준비해야죠, 내일의 오늘이니까요. 그러나 그 염려가 오늘을 망가트릴 정도가 된다면 문제가 됩니다. 과거도 생각해야죠, 보다 나은 오늘을 위한 지혜와 경험을 주니까요. 그러나 지나치게 과거에 빠져 있으면 우울이 찾아 오게 됩니다.

 반나절 정도 나는 어느 시점의 생각을 주로 하고 살고 있나를 적어 보는 것, 의미가 있습니다. 내 생각의 3분의 1만 과거에 대한 후회나 미래에 대한 염려로 차 있어도 사람은 현재의 행복을 잘 못 느낀다고 합니다. 과거에 대한 후회나 미래에 대한 염려 자체가 나쁜 콘텐트는 아닙니다. 우리 생존과 연결된 소중한 것들이죠. 그런데 사는 것 자체에 너무 집중하게 되면 왜 사는가 하는 본질에서 멀어지게 될 수 있습니다.


죽음 앞에선 자유롭고 겸손해진다

나이가 들수록 삶에 초연해진다는 말은 사실이 아닌 것 같습니다.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을 수록 삶이 더 소중해집니다. 어르신들이 ‘살 만큼 살았다’라고 하는 건 반만 진실이죠. 삶에 대한 집착에 대해서 자유로워지고 싶은 욕구는 진실이지만 실제로 자유로워지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살 만큼 살았다라는 말엔 ‘그래도 정말 더 오래 살고 싶다’라는 생존에 대한 욕구가 같이 섞여 있습니다.

 생존에 대한 욕구가 증가하는 것 차제가 나쁜 일은 아니죠. 그렇지만 생존은 결국 죽지 않는 것이기에 생존에 대한 욕구 증가가 죽음에 대한 공포를 강화하는 것으로 연결되면 삶의 질이 떨어지게 됩니다. 대표적인 것이 오늘의 주제인 건강염려입니다. 건강염려에 빠진 어르신께 앞으로 20년 건강하게 사시는 것을 제가 책임질 테니 무엇을 하며 살고 싶으냐고 여쭈면 대답을 못 하시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건강염려만 마음에 가득하다 보니 실제 삶의 내용이 빈약해져 버린 것입니다. 너무 살고 싶어서 증가한 죽음에 대한 공포가 살고 있어도 죽어 버린 것처럼 내 삶의 질을 떨어트리게 된 것입니다. 건강염려가 심한 분 중에는 병원에 가서 의사 만나는 것 외에는 다른 삶의 내용이 없는 일까지 벌어지게 됩니다.

 우리는 죽음에 대해 생각하거나 이야기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금기죠. 하지만 그 무엇보다 명확한 사실은 우리가 죽는다는 것입니다. 죽음은 우리 인생의 매우 중요한 구성 요소입니다. 죽음이란 단어를 회피만 하며 살기는 어렵습니다. 항노화란 말에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들어 있죠. 그러나 항노화는 불가능합니다. 어떻게 자연스러운 노화 현상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등을 보이지 말고 당당히 바라보는 연습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죽음이란 피하려고 하면 끝도 없는 공포로 다가오지만, 막상 마주하면 죽음을 수용할 용기가 생깁니다. 우리 마음 안에 그것을 수용할 용기가 이미 프로그램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항노화는 비겁한 말이죠. 웰다잉이 용기 있는 정답입니다. 언젠가는 죽는다는 내 삶의 한계를 인정하면 역설적으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약해지면서 현재의 소중한 가치에 집중할 수 있게 됩니다.

 내일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어떻게 하루를 보내시겠습니까. 모임이나 회식 장소에서 사람들에게 짓궂게 이 질문을 툭 던져볼 때가 있습니다. 회사 일에 집중하다 보니 아내에게 소홀했던 남편들은 거의 모두 같은 답을 합니다. 아내와 단 둘이 하루를 보내고 싶다고요. 그런데 그들의 아내에게 같은 질문을 하면 아내들은 대부분 남편과 떨어져 하루를 조용히 보내고 싶다고 답합니다.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모를 상황이죠. 오늘의 생존을 위해 중요한 가치를 뒤로 계속 미뤄놓고 살다보면 막상 삶의 마지막이 찾아 왔을 때 섭섭한 인생이 되기 쉽습니다.

 바니타스 예술이라는 것이 있죠. 바니타스는 라틴어로 인생무상이란 뜻이라고 합니다. 인생이 한시적이며 덧없다는 것을 예술로 표현한 것이죠. 그래서 바니타스 미술 작품을 보면 집에 걸어 놓기 망설여 지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죽음을 상징하는 해골이 그림의 주인공인 경우가 많고 그 옆에 조연처럼 한시성을 상징하는 모래시계가 자주 등장합니다. 우린 모두 시한부 인생이라는 것이죠. 거울도 종종 등장하는데 인간의 허영을 그린 것이라 합니다. 가뜩이나 사는 것도 빡빡한데 그림이라도 산뜻해야지 이런 칙칙한 그림을 집에 갖다 놓을 생각이 들지는 않은데, 이 바니타스 아트가 17세기 유럽에서는 인기였다고 합니다.

 죽음은 가장 무서운 공포입니다. 그래서 우리 대체로 회피하고 도망치려 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헛수고죠. 내 인생의 시계는 마지막을 향해 돌아가고 있으니까요. 죽음을 항상 생각하며 살 필요는 전혀 없지만 가끔은 내 인생의 한시성을 느껴 보는 것이 상당한 심리적 이익을 줄 수 있습니다. 죽음을 생각하면 내 마음이 원하는 소중한 가치가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질투·경쟁심에서 다소 자유로워지며 겸손한 마음을 가질 수 있죠. 겸손은 남을 향한 태도인 것 같지만 사실은 내 마음의 행복감을 지킬 수 있는 최고의 심리 요소입니다. 겸손하면 내 가진 것을 오히려 감사하며 더 즐길 수 있고, 사람과의 관계도 더 진실해져 더 깊은 인간애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죠.

 연말입니다. 내년이 내 인생의 마지막 해라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해 한 번 적어 보시죠. 그리고 그 중의 하나를 실천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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