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타임머신 타고 가 죽기 전 아빠 만나 말할래요, 출근 말라고”

중앙일보 2015.12.22 01:59 종합 12면 지면보기
“나는 커서 박사가 돼 타임머신을 만들거예요. 타임머신을 타고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날로 가서 말해줄래요. 아빠 출근하면 안 돼.” 지난해 일본 국회에서 ‘과로사 예방 대책 추진법’을 통과시킨 의원들의 마음을 움직인 건 과로사로 숨진 남성의 아들이 쓴 ‘나의 꿈’이라는 시였다.

아사히, 과로사방지법 뒷얘기 보도
일에 치여 자살한 일본 40대의 아들
시 ‘나의 꿈’으로 의원들 마음 움직여

 21일 아사히(朝日)신문은 과로사로 숨진 이들의 유족들이 과로사 방지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애쓴 과정을 보도했다.

 ‘나의 꿈’에 등장한 아빠는 와카야마(和歌山)현의 공무원(당시 46세)이었다. 과중한 업무에 치이던 그는 아들 마(マ―) 군이 유치원을 다니던 2003년 목숨을 끊었다. 매일 사무실에서 16시간 이상 일했던 마 군의 아버지는 집에 와서도 새벽 1시까지 일했다. 기상시간은 오전 5시였다. 숨지기 전 한 달 동안은 잔업시간만 월 110시간이었다. 집에서 일한 시간까지 합하면 200시간 이상을 일했다. 과로사 기준은 월 80시간 시간외 근무다.

 국회 제출용 문서를 검토하던 중, 그는 부하에게 맡겼던 부분에서 실수가 있었음을 발견했다. 정신적으로 궁지에 몰린 마 군의 아버지는 노트에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 ‘죽는 것밖에는 사과할 길이 없다’는 내용이었다.

 아버지를 잃은 뒤 초등학교에 진학한 마 군은 1학년 때 ‘나의 꿈’이란 시를 썼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 아빠를 살리고 싶다는 시는 2012년 일본 국회에서도 낭독돼 청중의 눈시울을 적셨다. 과로사 유족단체인 ‘전국 과로사를 생각하는 가족 모임’은 과로사 방지법을 만들기 위해 애썼다. 길거리 서명운동에서 배포된 서명용지에는 ‘나의 꿈’이 인쇄됐다. 55만 명이 서명에 동참했다.

 2013년 법 제정을 위한 무소속 국회의원 연맹이 탄생했고 2014년 6월 연맹이 제출한 과로사 예방 대책 추진법은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과로사가 일본에서 사회문제로 부상한지 약 25년 만이었다. 타임머신을 만들겠다던 마 군은 생명을 살리는데 도움이 되는 연구를 하는 이과대학 학생으로 자랐다. 마 군의 어머니 나카하라 노리코(中原のり子)는 “과로사 없는 세상이 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앞서 이달초에는 가혹한 잔업을 강요한 일본의 악덕 기업이 월 141시간에 달하는 잔업에 시달리다 자살한 종업원의 유족에게 1억3365만엔(13억원)을 배상키로 했다. 과로사 소송에 ‘징벌적 배상’이 적용된 첫 사례다. 과로사는 한국도 직면한 문제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중 멕시코(1위) 다음으로 연간 근로시간(2124시간)이 길다.

서유진 기자 suh.youjin@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