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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투자·명품·성형 … 물이 다른 ‘강남스타일’ 사기

중앙일보 2015.12.21 02:41 종합 4면 지면보기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서 미용 프랜차이즈업체를 운영했던 이모(47·구속)씨는 3만 명을 상대로 720억원대 투자사기를 벌인 혐의로 지난 3월 구속됐다. 이씨는 “7만원짜리 계좌 하나를 만들면 매달 8000원씩 배당금을 준다”고 속여 돈을 가로챘다.

사기 당하는 대한민국 <상> 사기사건 최다 강남구

 사기 행각에 앞서 그는 강남구에 대형 사무실부터 열었다. 이어 전국에 72개 지점을 잇따라 개설했다. 투자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였다. 처음에는 의심하던 투자자들도 번듯한 서울 강남의 본사와 수십 개로 늘어난 지점 수를 보며 “투자를 해도 좋겠다”고 안심했다.

이씨는 경찰 조사에서 “388억원은 배당금으로 회원들에게 지급했고 11억원은 지인들에게 빌려줬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나머지 321억원의 행방은 드러나지 않았다. 피해자 A씨(57)는 “부자들이 몰려 있는 강남 한복판에 번듯한 사무실이 있어 회사에 대한 믿음이 갔다”며 “만일 강북 지역의 허름한 곳에 사무실이 있었다면 사기를 당했겠느냐”고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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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기초자치단체 중 강남구에서 사기 범죄가 가장 많이 발생(7936건)했다. 강남구의 사기 범죄 건수는 서울의 나머지 24개 구의 평균 발생 건수(2038건)의 약 네 배다.

또 인구 100만 명이 넘는 광역자치단체인 대전시(7187건), 광주시(7837건), 울산시(5366건)보다 사기 범죄 발생 건수가 더 많았다. 강남구는 대검에서 자치구별 범죄 통계를 기록해 공개하기 시작한 2004년부터 한 차례도 빠지지 않고 사기 범죄 발생 1위를 기록 중이다. 2007년까지만 해도 2위 서초구와의 격차가 1000여 건에 그쳤지만 2008년부터 격차를 3000건 이상 벌렸다. 지난해 서초구의 사기 범죄 발생 건수는 4478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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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남구에서 유독 사기 범죄가 극성을 부리는 이유는 뭘까. 경찰 등 수사 당국은 부유층이 몰려 있는 지역적 특성을 원인으로 꼽는다. 강남경찰서 관계자는 “강남 지역에선 명품·부동산 등 수억원 이상 고액이 오가는 사기 범죄가 많이 발생한다”며 “강남을 무대로 사기 범죄를 저지르면 다른 지역에 비해 피해자들이 쉽게 넘어가는 편이기 때문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수사 담당자들이 분석하는 ‘강남스타일’ 사기의 유형 세 가지는 ▶100억원대 이상 대형 투자 사기 ▶부동산·명품 관련 사기 ▶성형외과 등 의료 관련 사기 등이다. 2조원대에 달하는 대형 다단계 사기로 복역 중인 주수도(59) 제이유그룹 회장도 강남구 신사동에 본사를 두고 사기 행각을 벌이다 2006년 구속됐다. 최근에는 중국인의 수요가 많은 성형외과 관련 사기가 강남구에서 집중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압구정동·신사동 등에 유명 성형외과가 몰려 있는 지역적 특성 때문이다.

 지난 10일 사기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방송제작업체 사장 황모(40)씨 사례가 대표적이다. 황씨는 2013년 6월 신사동의 성형외과 원장 A씨에게 접근해 “방송 출연을 하려면 프로그램 협찬비를 먼저 줘야 한다”고 꼬드겨 2000만원을 받았다. 이런 수법으로 5명에게서 총 1억350만원을 뜯은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또 다른 성형외과 원장 B씨(38)는 피해자 16명에게 일반 가슴 수술을 해주고도 줄기세포를 이용한 신종 성형수술을 한 것처럼 속여 5500만원을 부당하게 챙겼다가 사법처리됐다.

 수사를 맡았던 이상배 강남경찰서 경제범죄수사과장은 “강남의 고가 아파트에 거주하며 비용에 대한 부담 없이 최고급의 수술을 원하는 부유한 여성들이 주요 피해자가 됐다”며 “성형외과·명품 사기 등은 서울 강남의 지역적 특성이 반영된 전형적인 강남스타일 사기”라고 말했다.

이 과장은 “강남의 경우 서민들이 주로 당하는 보이스피싱 피해는 상대적으로 적은 반면 고액 사기가 많은 게 특징적”이라며 “ 앞으로도 돈이 몰리는 강남이 사기꾼의 주요 표적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한영익·김민관 기자 hany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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