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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김선욱 협연 도이치 캄머필 내한공연 리뷰

중앙일보 2015.12.20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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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보 예르비의 지휘봉이 절도 있게 곡선을 그렸다. 구김 없던 지휘복이 파도처럼 떨렸다.

18일 예술의전당에서 본 도이치 캄머필의 연주는 진하고 강했다. 3년 연속 내한한 이들은 재작년 베토벤, 작년 브람스에 이어 올해는 슈만을 연주했다. 첫곡 ‘서곡, 스케르초와 피날레 Op.52‘는 기름기를 뺀 듯 날렵했다. 절도 있고 단호했다. 중간부 ’스케르초‘에서는 목관과 바이올린이 교차하는 서정성이 박진감 넘치는 질주와 대조됐다.

무대에 피아노가 놓이고 김선욱이 등장했다. 단단한 총주와 함께 슈만 피아노 협주곡이 시작됐다. 오케스트라가 빠르고 직선적이었다면 김선욱은 느리고 곡선적이었다. 클라리넷과 주고받는 부분에서 각별한 미감이 우러났다. 카덴차의 사운드는 두터웠다. 언뜻 독일 거장들의 연주가 어른댔다. 2악장에서 김선욱은 낭만적으로 오케스트라를 리드했다. 현악과 건반 사이에 바람이 일었다. 3악장은 당당했다. 오케스트라와 피아노의 물리적인 템포는 각기 달라 보였는데, 총주에서 딱딱 맞아떨어졌다. 관현악 반주는 그야말로 씩씩했다. 김선욱은 기자간담회에서 독일음악의 특징을 프랑스 인상주의 음악과 비교해 ‘밀도 있는 음악’으로 설명했다. 그의 말대로 음의 ‘밀도’가 보이는 순간이었다. 피아노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젖혔다 하는 김선욱의 자연스런 동작에서 여유가 느껴졌다.

커튼콜에 답하던 김선욱은 앙코르로 브람스 3개의 간주곡 Op.117 중 1번을 연주했다. 크리스마스 저녁처럼 경건하고도 따스한 음악이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구석구석에 퍼졌다. 내년에 발매 예정인 브람스 소나타 3번 음반의 연주가 기대됐다.

휴식시간 뒤 예르비와 도이치 캄머필이 슈만 교향곡 4번을 연주했다. 제1바이올린과 제2바이올린이 양 날개처럼 앞줄에 포진했다. 그 뒤에 베이스, 첼로, 비올라 팀파니가, 셋째 줄엔 호른과 목관, 금관이 자리했다. 예르비는 1악장부터 4악장까지 지체 없이 완주했다. 솔기 없이 곡 전체를 조망할 수 있었다. 1악장 느린 서주에서부터 예르비는 왼손을 떨며 독려했다.
출발하는 기관차처럼 서서히 가속이 시작됐다. 이따금 반사되는 햇빛처럼 마성이 번득였다.
각진 굴곡을 제거한 듯 곡상이 드러났다. 2악장 로만체의 애상적인 주제가 나올 때 예르비는 최대한 템포를 느리게 가져가며 완급의 묘미를 선사했다. 자발성과 능동성이 돋보였다. 곧바로 이어진 3악장은 군더더기가 전혀 없어 토스카니니가 연상됐다. 날카롭고 정확하면서 자의적인 부분도 농후했다. 4악장에서는 베토벤 ‘운명’과 ‘에로이카’의 마지막 악장을 떠올렸다.
피날레에서 예르비는 어깨를 들썩이며 지휘했다. 저역대의 질주가 날렵했고 속도 조절이 절묘했다. 예르비는 브람스 헝가리 춤곡 6번, 3번, 10번 등 세곡의 앙코르를 선사했다. 그는 세 곡 공히 템포를 엿가락처럼 늘이며 악단을 통제하는 사령관의 실력을 과시했다. 단원들은 예르비의 기립 지시를 거부하고 발을 구르며 지휘자에 대한 예우를 보여주었다.

일반 오케스트라의 절반에 해당하는 40여 명의 단원. 음량은 작았지만 도이치 캄머필의 사운드는 단단했다. 도이치 캄머필은 규모상 중전차(重戰車)는 아니었지만 고성능 중전차(中戰車)처럼 질주했다.

파보 예르비와 도이치 캄머필은 2018년 다시 내한한다. 슈베르트 교향곡 8번 ‘미완성’과 9번 ‘그레이트’가 예정돼 있다.

류태형 음악칼럼니스트ㆍ객원기자 mozart@joongang.co.kr
[사진제공 빈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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