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길 막힐 땐 우회로… 뇌졸중 후유증 한방으로 잡는다

중앙일보 2015.12.20 08:43 부동산 및 광고특집 1면 지면보기
기사 이미지

경희대한방병원 문상관 중풍센터장이 70대 중풍 환자에게 침 치료를 하고 있다. 이 환자는 한의학 치료를 받은 뒤, 불가능했던 보행과 일상생활이 가능해졌다. [사진 프리랜서 조상희(프로젝트100)]

‘치료 중심의학’이라는 말이 있다. 약물이나 수술 등 직접적인 방식으로 질환을 치료하는 방식이다. 웬만한 질환은 이렇게 치료한다. 하지만 항상 최선은 아니다. 한계가 존재한다. 특히 후유증을 남기는 질환인 경우에 그렇다. 중풍(뇌졸중)이 대표적이다. 치료해도 끝이 아니다. 환자의 고통과 악몽은 치료 후 후유증과 함께 시작된다. 환자는 갈 길을 잃는다. 이 순간 환자에게 희망이 되는 것이 바로 한의학이다. 체내 회복력을 끌어올리고 우회적으로 접근해 치료의 한계를 극복한다. 후유증을 직접 관리하는 치료, 한의학의 힘이다.
 

한의학의 재발견
경희대한방병원 중풍센터

기사 이미지
70세 방성연(여·가명)씨는 중풍의 한의학적 치료 효과를 몸소 경험했다. 그에게 증상이 처음 나타난 것은 올 10월 중순. 그는 왼쪽 다리에 힘이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에는 미세했던 느낌이 조금씩 강해졌다. 인근 대학병원에서 뇌 MRI(자기공명영상촬영) 검사를 해보니 뇌경색이었다. 입원치료를 받았지만 증상은 나아지지 않았다. 급기야 팔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보행이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렀다. 그가 경희대한방병원 중풍센터에서 치료를 받기 시작한 것은 일주일 뒤. 한약·침·뜸과 재활치료를 받았다. 두 달 정도 지난 지금 그는 스스로 걸어다닐 정도로 상태가 호전됐다.

이보다 극적인 결과를 보인 사례도 있다. 김도경(53·가명)씨는 10월 초 손발이 심하게 저리고 목이 뻐근한 증상이 계속돼 대학병원을 찾았다가 뇌경색 진단을 받았다. 의료진은 “뇌로 가는 주요 혈관이 상당 부분 막혀 있다”며 “이른 시일 내에 혈관우회술을 받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그의 수술 일정은 내년 1월 초로 잡혔다. 업무 일정상 수술이 여의치 않았던 김씨는 한방치료를 받아보기로 했다. 두 달간 꾸준히 한방병원을 다닌 뒤 다시 검사를 받았다. 의료진은 김씨를 보고 수술을 취소했다. 뇌 혈류 스펙트(단일광자단층촬영·사진) 검사상 뇌 혈류가 상당 부분 개선된 것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바로 접근 방식의 차이다. 중풍은 의학용어로는 뇌졸중을 말한다. 뇌혈관이 터지는 뇌출혈과 막히는 뇌경색을 아우르는 질환이다. 모두 뇌손상을 부른다. 이 중 90%는 뇌경색이다.

골든타임 3시간 내 치료해도 후유증

양방에서는 치료 시 막힌 뇌혈관을 뚫는 것에 중점을 둔다. 발생 후 3시간 안에 혈전(혈관을 막고 있는 피떡)을 녹이는 치료를 받는 것이 생사의 관건이다. 초기 3시간을 ‘골든 타임’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골든 타임에 치료를 받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보통은 이를 넘기거나 시간 안에 치료를 받아도 후유증을 낳곤 한다. 후유증이 생긴 뒤에는 재활이 고작이다.
 
기사 이미지

중풍 환자의 침 치료 전후(위), 한방 중풍 치료 전후 (아래) 뇌 혈류 스펙트 사진. 치료 후 뇌 혈류가 활발해져 사진상 밝아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 경희대한방병원 중풍센터]

한방은 뚫는 대신 뇌 혈류를 개선하는 방식이다. 고속도로가 막혔을 때 우회로로 가는 것과 같은 이치다. 막힌 혈관 주변에 있는 혈관의 혈류를 개선해 손상된 뇌기능을 회복하도록 돕는다.

경희대한방병원 문상관(한방심장·순환내과) 중풍센터장은 “중풍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뇌세포가 죽기 전에 살리는 것이고, 둘째는 그 주변에 살아 있는 세포를 최대한 활성화하는 것”이라며 “그렇게 하면 뇌세포가 손상되는 것을 막고 후유증을 치료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의학적 치료가 뇌졸중 환자의 후유증을 관리할 수 있는 이유다.

중풍 치료에는 침과 한약이 모두 사용된다. ‘어혈약침’과 ‘청혈단’이다. 침은 몸이 즉각적으로 반응해 효과가 빠른 대신 효과 지속시간은 짧은 편이다. 반면에 한약은 효과가 빠르진 않지만 오래간다. 이 둘의 장점을 병행해 체내 치유력과 회복력을 끌어올린다.

어혈약침·청혈단 효과 임상으로 입증

치료효과는 임상연구로 입증됐다. 경희대한방병원 정우상 교수 연구팀은 뇌졸중 발병 후 재활치료 과정에서 어깨통증을 호소하는 환자 29명을 대상으로 어혈약침(주 3회)을 놓았다. 대조군은 생리식염수를 이용한 주사 치료를 했다. 그 결과 어혈약침을 치료받은 그룹은 어깨 통증 점수(NRS)가 6.77점에서 3.82점으로 줄었고, 어깨관절 운동 점수(FMMA)도 42.3%(대조군 17.3%) 상승했다. 침 치료가 감각신경을 직접 자극해 뇌 기능을 활성화한 것이다.

한약인 청혈단은 중풍의 원인 중 하나인 콜레스테롤을 현저히 낮춘다. 청혈단은 동의보감에서 동맥경화 치료제로 사용해 오던 황련해독탕에 대황을 가미해 개발한 약재다. 대황은 피를 맑게 하고 열을 내려주는 약재다. 경희대한방병원이 특허받은 뇌졸중 약이다. 문 센터장은 “청혈단이 뇌경색 부피를 줄이고 재발 빈도를 줄인다는 사실도 확인했다”며 “아스피린을 복용하는 사람보다 재발률이 낮다는 보고도 있다”고 강조했다.
 
실어증 개선 효과 국제학술지에 발표

중풍의 후유증 중 하나인 실어증 개선 효과는 국제학술지에 발표돼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실어증을 동반한 뇌졸중 환자를 대상으로 침·뜸·한약 등 한방치료를 한 결과 양방치료만 받은 군보다 한방치료를 병행한 군에서 언어능력평가 점수 개선 정도가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문 센터장은 “한방치료는 환자의 회복력과 자연치유력을 촉진해 후유증 회복과 예방에 큰 기여를 한다”며 “발병 후 적어도 3~6개월 안에 받아야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방 치료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문 센터장은 최근 ‘거풍청혈단’을 개발했다. 청혈단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그는 “단삼·삼칠·용뇌 등 어혈을 제거하는 약제를 추가해 기존의 청혈단을 개선했다. 효과도 더욱 높아졌다”며 “중풍의 한의학 치료는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 인터뷰 - 경희의료원 문상관 중풍센터장
 

2차 골든타임 3~6개월 놓치면 한방치료도 어렵습니다

 
기사 이미지

문상관 경희의료원 중풍센터장

중풍은 후유증 관리에 따라 환자 삶의 질이 좌우된다. 한방치료 병행이 중요한 이유다. 하지만 대부분 뒤늦게 한방을 찾는다. 문상관 중풍센터장은 한방 중풍치료에도 골든 타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후유증을 예방할 수 있는 마지노선 말이다.

-옛날에는 중풍 하면 한방을 찾았는데 요즘은 인식이 바뀐 것 같다.

“골든 타임 3시간만 너무 강조된 측면이 있다. 3시간 안에 병원에 가기만 하면 치료가 끝나는 줄 아는 사람이 많다. 골든 타임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으로 완전하진 않다. 결국 남는 것은 후유증이다. 양방에서는 2차 재발을 막는 약은 있지만 후유증에 직접 작용하는 약물은 거의 없다. 그런 면에서 한의학이 환자에게 해줄 수 있는 부분이 많다.”

-한의학에서는 치유력을 높이는데, 어떻게 가능한가.

“뇌혈관이 막히면 뇌에서 많은 노력을 한다. 뇌세포 주변에 죽은 세포를 대신하기 위해 새로운 길을 낸다. 이를 가소성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인체가 스스로 회복하려는 성질이다. 새로운 길을 내려면 살아 있는 세포에 피가 잘 공급돼야 한다. 그렇게 환자가 회복된다. 한의학에서는 침과 한약으로 이 가소성을 높인다. 주변부 혈류를 좋게 해 뇌세포가 죽어가는 것을 막는다. 이것이 핵심이다.”

-뒤늦게 한방을 찾지 않나.

“안타깝고 답답한 부분이다. 양방 치료를 하다 안 되면 찾는 경우가 많다. 한방에도 골든 타임이 있다. 1차 골든 타임이 발병한 뒤 3시간 안에 뚫는 것이라면, 2차 골든 타임은 발병 후 3~6개월까지다. 이 시기를 놓치면 치료 가능한 문이 닫혀버린다. 한방치료를 일찍 찾아야 하는 이유다. 부작용이 없고 양방치료와 병행하면 효과를 더욱 높일 수 있다.”

-한방에 대한 오해 때문이기도 할 텐데.

“한약을 먹으면 다 간이 나빠지는 줄 안다. 실제 내원 환자가 한약 먹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러면 간수치의 변화를 보여준다. 아무렇지도 않다. 지나친 공포감이다. 오히려 부작용이 덜한 부분이 있다. 중풍 예방을 위해 아스피린을 쓰는 데도 논란이 있지 않나. 아스피린을 먹어도 중풍이 오기도 한다. 한방에서는 피를 묽게 하는 것이 아니라 혈류를 개선한다. 아스피린을 함께 먹어도 상관없다. 일본에서는 한약을 의사가 처방한다. 다만 주의할 필요는 있다. 그래서 전문가의 진단이 필요하다.”


류장훈 기자 jh@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