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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은 소비자의 배우자 … 사랑 주고 받아야 파경 없다

중앙선데이 2015.12.20 01:45 458호 20면 지면보기
 

1 저소득층 주택지원 프로그램 해비타트에 참가할 여성 지원자 모집 포스터.



노스웨스턴대학의 사회심리학자 엘리 핀켈(Eli J. Finkel) 교수는 얼마 전 결혼의 변천사를 다룬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내놨다. 미국 이야기지만 도시화, 서구화된 한국 사회에 적용하기에 무리가 없다.


[마켓&마케팅 -23-] 소비는 결혼생활과 마찬가지

핀켈 교수는 결혼의 진화를 매슬로우 산(Mt. Maslow) 등반에 비유한다. 매슬로우는 인간의 욕구를 계층화한 동기 이론을 창시한 심리학자다. 생리적 욕구, 안전과 같은 하위 니즈(Needs)가 충족되면 소속감·지배력, 나아가 자아실현과 같은 상위 욕구에 대한 동기가 부여된다는 내용이다.



농경사회에는 제도적 결혼(institutional marriage)이 대부분이었다. 사람들은 더 많은 식량을 생산하고 외부 위험을 차단하는 안식처를 마련하기 위해 가정을 꾸렸다. 부모가 정해준 짝과 만나 자녀를 양육하고 노인을 봉양하며 살았다. 결혼은 생존과 직결된 신체적, 심리적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였다.



20세기 들어 산업화가 진전되자 더 적은 시간을 일하고도 더 많은 소득을 거둘 수 있게 되었다. 생계 걱정에서 벗어나니 사랑과 낭만을 찾는 여유가 생겼다. 부모의 개입이 축소되고 개인의 자유가 중시되어 여러 이성을 만나 실험적인 기간을 거친 후 결혼을 결정하는 우애결혼(companionate marriage)이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인생의 동반자를 찾아야 하니 사랑은 물론 지적 호기심, 관심을 나눌 수 있는 파트너를 찾는 과정이 중요해졌다. 결혼의 동기는 매슬로우 산 중턱의 사랑과 존중 욕구로 이동했다.



오늘날 남녀는 자기 표현적 결혼(self-expressive marriage)을 한다. 세상에 대한 견해와 가치관이 일치하는 상대를 엄선하고 자아실현, 자기성장이라는 최상위 욕구를 달성하기 위해 결혼한다. 1997년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As Good as It Gets)’에서 잭 니콜슨의 프러포즈였던 “당신은 내가 더 나은 남자가 되고 싶도록 해줘요(You make me want to be a better man)"가 바로 자기발전을 향한 결혼생활을 암시한다.



 



기능적 욕구 충족시키는 것으로는 미흡기업 마케팅의 진화 과정은 결혼의 역사와 꼭 닮은 모습이다. 상품 구색이 한정되고 차이가 대동소이하던 시대에는 기본 품질만 보장되면 큰 불만이 없었다. 20세기 초 헨리 포드가 컨베이어 시스템으로 대량생산에 성공했던 모델 T는 단일 모델에 검정색뿐이었지만 저렴한 가격으로 자동차 보급화를 실현시켰다. 한국에서도 1970년대 이전까지는 배부르고 등 따스울 정도의 기능적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상품이면 대부분 소비자들이 만족했다.



 



소득 수준이 향상하고 상품 다양화가 진행되면서 대중의 선택을 따르기보다 자신의 선호·취향에 따라 구매를 결정하는 소비자가 증가했다. 기본 품질은 물론 디자인·이미지가 중시되었고 기업과 소비자의 관계는 친근감·교감을 나누는 낭만적 관계로 발전했다. 고객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로열티 마케팅이 활성화되었고 상표명 정도로 인식되던 브랜드가 기업의 비전과 철학을 전달하는 대변인으로 승격되기도 했다. 2005년 영국의 광고 전문가 케빈 로버츠가 저술한 『러브마크(lovemark)』는 소비자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기 위한 브랜드 전략을 소개해 화제를 모았다. 기능과 제품 위주의 마케팅 목표가 고객과의 정서적 관계 구축으로 상향 이동한 것이다.



 

2 신발 한켤레를 팔면 한켤레를 기부하는 TOMS의 ‘One for One’프로그램.



이제 사람들은 소비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정의한다. 상품의 기술적·감성적 가치는 물론 기업의 철학, 경영 원칙까지 고려해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브랜드를 선택한다. 값 비싼 명품 브랜드로 과시하던 시대를 지나 공정무역 커피를 마시고 에코백을 들고 다니며 사회적 가치를 실현한다는 데 의미를 두는 소비자들이 많아졌다. 건강에 좋은 차 음료를 만들겠다는 신념을 지키는 ‘어니스트 티(Honest Tea)’는 식품시장의 트렌드 세터가 되었고, 신발 한 켤레를 팔면 한 켤레를 기부하는 ‘One for One’ 모델로 전 세계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탐스(TOMS)는 2006년 이후 지금까지 4500만 켤레 이상을 기부한 것으로 알려진다.



핀켈 교수는 자신의 이론에 ‘질식 모델(Suffocation Model)’이란 이름을 붙였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산소가 부족해지듯 도전적인 과제가 주어진 결혼은 숨 막히는 생활이 되기 쉽다. 상위 수준의 니즈를 달성하려면 결혼생활에 더 많은 시간과 관심을 들여야 하지만 바쁘고 스트레스가 많은 현대인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사회 전반적으로 결혼 만족도가 떨어지고 이혼율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할리데이비슨 브랜드 동호회 ‘HOG’는 할리데이비슨 사가 위기에 빠졌을 때 모금운동을 벌여 회사 회생을 도왔다.



 



마니아 고객은 브랜드 수호천사그런데 그 내면을 살펴보면 조금 다른 모습이다. 결혼에 대한 기대가 충족되지 않아 실패할 확률이 커진 반면 자아실현 욕구가 충족된 커플은 과거 어느 시대의 부부보다 더 큰 만족감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혼생활도 모 아니면 도(All-or-Nothing)가 되는 양극화가 진행 중인 것이다.



기업 현장도 마찬가지다. 소비자 니즈가 고도화되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만족스러운 고객 관계를 유지하기가 어려워졌지만 부동의 고객층을 확보한 소수 기업은 경쟁사와 비교할 수 없는 혜택을 누린다. 마니아 고객은 브랜드 로고를 문신으로 새기는가 하면 누군가 그 상품이나 기업을 험담하면 옹호자로 나서 방어하고 위기에 처한 브랜드를 구하러 자원을 쏟아 붓기도 한다. 할리데이비슨이 일본 저가 모터사이클 업체의 공격으로 위기에 빠졌을 때 모금운동까지 벌이며 옆을 지켰던 사람들도 바로 충성고객 군단이었다.



진정한 자아실현은 의미 있는 커뮤니티 참여, 가족·친구와 시간 보내기 등 물질적 소비 이외의 활동으로 성취된다. 할리데이비슨이 든든한 마니아 고객층을 확보한 데에도 라이프스타일을 공유하는 브랜드 동호회 HOG(Harley Owners Group)의 역할이 크다. HOG는 모터사이클 트레이닝 클래스를 운영하고 라이딩 코스를 알려줄 뿐 아니라 싱글 라이더를 위한 데이팅 서비스도 제공한다.



고객이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도록 유도하는 것도 중요하다. 예를 들어 소비자들은 기업이 제공하는 완제품보다 직접 만든 상품의 가치를 더 높이 평가해 주변에 자랑하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다. 완성된 곰 인형을 사는 것보다 직접 만들거나 인형에 이니셜을 새기도록 했을 때 제품에 더 큰 애착을 보이곤 한다. 전문가가 만든 제품보다 조악하고 완성도가 떨어지지만 자신이 수고를 들였다는 데 의미를 두기 때문이다. 하버드대의 마이클 노턴 교수는 이를 ‘이케아 효과(IKEA effect)’로 정의했다.



바쁘고 지친 소비자가 스스로 움직이도록 동기를 부여하려면 새로운 경험으로 가치를 실현하고 생활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는 확신을 주어야 한다. 미국의 주택 자재 유통업체 로우스(Lowe′s)는 1980년대부터 여성을 타깃으로 설정하며 여성 친화적 마케팅을 펼쳐왔다. 제품 위주의 홍보는 줄이고 집을 직접 개조하고 꾸미는 즐거움을 메시지로 하는 광고를 제작했다. 광고에서도 ‘주택(house)’ 대신 ‘가정(home)’, ‘공사(construction)’ 대신 ‘창조(creativity)’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2004년부터는 빈곤층을 위해 주택을 지어주는 해비타트(Habitat)를 후원하며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National Women Build Week’를 진행 중이다. 매년 5월 미국 전역에서 모집된 여성 봉사자들은 ‘Lowe′s how-to clinic’에서 교육을 받은 후 파트너 가족을 위한 집짓기에 동참한다. 2014년에는 1만3000명, 2015년에는 1만5000명 이상의 여성 고객이 참여했다. 여성들에게 주택을 수리·개조하는 데 필요한 기본 정보를 제공할 뿐 아니라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가치 있는 활동에 참여하는 성취감을 주는 프로그램으로 호평 받고 있다.



 



기능 좋은 제품, 하위욕구 충족에 그쳐기술과 스펙, 디자인 중심의 제품 경쟁에 치중하다보면 초기 점유율 경쟁은 무난하게 통과할지 몰라도 평준화가 이루어진 후 치열한 가격 경쟁을 피하기는 어렵다. 기능성 위주의 전략으로 매슬로우 산자락에 머물면 당장은 산소가 충분한 듯해도 결국 끝없이 등장하는 경쟁자와 숨 막히는 전쟁을 치러야 한다. 화웨이 같은 중국산 초저가 스마트폰이 한국 기업에게 위협이 되는 것은 한국 기업들이 여전히 고객의 상위 욕구 달성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할리데이비슨이 거친 반항과 자유를, 애플이 다름을 추구하는 혁신성을 상징하듯 훌륭한 제품과 함께 브랜드 정신과 철학을 공유할 때 고객과의 동맹관계가 이루어진다. 브랜드 정신이 자신의 가치와 연결될 때 고객은 저가 공격이든 경영자 실수든 위기에 처한 기업을 구명하는 노력을 마다하지 않는다. 매슬로우 산 정상을 향해 오르는 과정은 힘겹고 숨차지만 어느 순간 숨통이 트이고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는 여유가 주어진다.



 



최순화 동덕여대 국제경영학과 교수schoi@dongd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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