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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수주 전년의 절반 … ‘경제의 둑’ 제조업 경쟁력 강화해야

중앙선데이 2015.12.20 01:36 458호 18면 지면보기
#1. 이달 10일 오전 서울 서초구 팔래스호텔에선 정수현 현대건설 사장, 김동수 대림산업 사장 등 국내 11개 주요 건설사 대표와 이덕훈 한국수출입은행장 간의 간담회가 열렸다. 저유가 장기화로 해외수주가 어려워지면서 이를 타개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해외수주 확대를 위해 내년 초 민관 합동 컨트롤타워를 출범하고 금융 지원 강화 방안 등을 마련키로 했다.



#2. 세계은행은 17일 이라크에 12억 달러(약 1조4200억원)의 긴급 자금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계속되는 저유가로 경제난이 깊어지고 이슬람국가(IS)로 안보위협까지 받고 있기 때문이다. 페리드 벨하지 세계은행 이라크 담당은 로이터통신과 인터뷰에서 “이번 지원은 이라크 경제가 더 깊은 수렁에 빠지지 않도록 돕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란은 유가 하락에 뇌관 역할을 하고 있다. 핵협상 타결로 내년 경제 제재가 풀리면 해외자본을 유치해 원유 생산을 늘릴 계획이다. 사진은 지난달 28일 테헤란에서 열린 투자유치 콘퍼런스. 영국 BP, 프랑스 토탈 등 140여개 업체가 참여한 이 행사에서 이란은 50개 원유·가스 개발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금액으론 1850억 달러(214조원)에 달한다. [테헤란 신화=뉴시스]


저유가 축복에서 공포로

‘저유가 쇼크’가 확산되고 있다. 건설업체의 해외 수주엔 빨간불이 켜졌고, 해양 플랜트에 힘썼던 조선업체 역시 수주가 크게 줄면서 휘청댄다. 철강업체는 유가 급락의 유탄을 맞으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원유펀드 투자자들은 수익률 급락으로 울상을 짓는다.



과거 유가 하락은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한국엔 축복으로 여겨졌다. 유가가 떨어지면 소비 여력이 커지고 수요가 늘면서 경기가 좋아지는 쪽으로 움직였다. 하지만 최근 고착화되고 있는 유가 하락은 항공·자동차 업계 등 일부에는 호재로 작용하지만 중후장대형 산업을 중심으로 한 대부분의 산업에는 ‘공포’가 되고 있다. 무엇보다 산유국의 경제위기가 글로벌 경제 전반에 침체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전수봉 대한상의 경제본부장은 “1970년대 오일쇼크 때는 인플레이션을 우려하는 시대였지만 지금은 디플레이션을 우려하는 시대로 유가 하락을 반길 수만은 없는 상황”이라며 “우리의 주요 시장인 개발도상국 상당수가 자원 수출국인데, 유가 하락으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수출 기회도 줄고 있다”고 말했다. 사우디 재정적자 150조원 … GDP의 20%건설업계에선 ‘수주 절벽’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국내 건설사가 올 들어 이달 15일까지 중동에서 수주한 금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438억 달러)의 절반도 안 되는 148억 달러(약 17조5000억원)다. 사우디아라비아·쿠웨이트 등 우리 텃밭의 공사 발주가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사우디 국영 석유회사인 아람코는 20억 달러 규모의 플랜트 프로젝트를 잠정 중단했고, 카타르는 85억 달러 규모의 석유화학 플랜트 발주를 연기했다. 해외건설협회 정책기획처 최중석 부장은 “발주가 줄면서 국내외 업체들이 작은 파이를 나눠 먹어야 하는 형국”이라며 “단순도급을 넘어서 고급 설계 역량을 강화하고, 최근 조성한 ‘코리아해외인프라펀드(KOIF)’를 통한 파이낸싱 능력 강화를 통해 수주를 늘려나간다는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미 막대한 적자로 구조조정을 하고 있는 조선업계 역시 유가 하락으로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선박·해양플랜트 발주가 줄었기 때문이다. 석유·가스를 생산·저장하는 해양플랜트는 국내 대형 조선사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선박용 후판을 공급하는 철강업계도 타격을 받고 있다. 후판은 선박 건조 원가의 30%가량을 차지한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올 들어 3분기까지 포스코·동국제강·현대제철 등 철강 3사의 후판 판매량은 545만t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6만t가량 줄었다.



저유가 쇼크를 겪는 것은 한국만이 아니다. 프랑스의 세계적인 건설·엔지니어링 업체인 테크닙(Technip)은 올 7월 직원 6000여 명을 줄이는 구조조정 계획을 밝혔다. 전체 직원(3만8000명)의 16% 수준이다. 로이터는 “유가하락으로 인한 수익 악화를 견디지 못해 구조조정에 나선 것”으로 풀이하고 “이익을 내지 못하는 해외지사 상당수도 폐쇄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테크닙은 구조조정 전인 올 2분기 3억7000만 유로(약 4700억원)의 손실을 냈다.



국제통화기금(IMF) 등은 유가하락으로 올해 사우디의 재정적자가 1000억~1300억 달러(약 153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사우디 국내총생산(GDP)의 20% 수준이다. 재정난 타개를 위해 사우디는 내년 초 정부 부담을 줄이고 경기 침체를 벗어나기 위한 개혁안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 채권도 발행할 예정이다. 러시아·베네수엘라·에콰도르 등도 저유가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원유판매 수입이 재정의 절반을 차지하는 베네수엘라는 신용부도스와프(CDS) 금리가 50% 수준에 달한다. CDS는 부도로 채권이나 대출 원리금을 돌려받지 못할 위험에 대비한 신용 파생상품으로 위험도가 높을수록 금리가 높다.



원유펀드 투자자는 직격탄을 맞고 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해 초부터 이달 17일까지 국내 주요 원유펀드의 수익률은 대부분 마이너스다. ‘삼성WTI 원유특별자산투자신탁1’이 -40.6%, ‘미래에셋TIGER원유선물특별자산상장지수 투자신탁’은 -33.1%이다. 하이투자증권 박상현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금융시장도 ‘기승전 유가장세’라고 할 정도로 과거 경험하지 못한 저유가 쇼크를 경험하고 있다”며 “저유가가 투자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고, 원자재 관련 기업의 부도 위험도 높다”고 말했다. 그는 “투자자 입장에선 개별 종목이나 펀드 모두 당분간 수익보다는 리스크 관리에 집중해야 한다”며 유가의 흐름을 면밀히 살펴보고 신중하게 투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특히 투자에 나선다 해도 일단 연말·연초를 피하고 내년 2분기 이후를 바라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유가 배럴당 30달러 아래로 내려갈 수도17일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 내년 1월물은 전날보다 1.6% 떨어진 배럴당 34.95달러를 기록했다. 2009년 2월18일 이후 가장 낮다. 런던 ICE 선물거래소에서 북해산 브렌트유 1월물은 배럴당 37달러를 기록했다. 저유가 쇼크를 불어오고 있는 국제 유가는 당분간 내림세를 이어갈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일부에선 현재 배럴당 30달러대에서 20달러대까지 떨어질 가능성을 점치기도 한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감산 합의 실패, 이란의 생산량 확대, 재고 증가 등 공급 과잉 우려 때문이다.



이달 4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정기 총회에서 감산에 실패한 OPEC이 내년 6월로 예정된 정기총회에서 감산에 합의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생산량을 줄여 원유 값을 올려야 한다는 원칙엔 회원국 모두 동의하지만 실제 감산에 대해선 각국의 입장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OPEC 리더인 사우디부터 감산에 소극적이다. 저유가를 유지해 경쟁 상대로 떠오르고 있는 미국의 셰일가스 업체를 넘어뜨리겠다는 속내도 있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달러 강세는 중동 국가의 재정 악화를 부추기고 있다. 걸프협력회의(GCC) 국가들이 달러와 자국화폐의 환율을 고정하고 있다. 달러 강세로 GCC 국가 화폐 가치도 강세로 돌아서면서 원유 수출에 따른 경상수지에 타격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저유가로 일부 산업이 타격을 입는 가운데 세계 경제의 한 축을 이루는 중국 경제가 고도성장 시대를 끝내고 중성장 시대에 들어선 것은 한국 경제의 위협요인”이라며 “이럴 때일수록 기업·정부·정치권이 힘을 합쳐 선제 구조조정을 통한 산업 경쟁력 강화, 특히 ‘경제의 둑’이라 할 수 있는 제조업 경쟁력 강화에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염태정 기자 yonn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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