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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포퓰리즘 좌파정권 무너지자 외국 자본 투자 러시

중앙선데이 2015.12.20 01:24 458호 14면 지면보기

지난 6일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에서 유권자들이 투표하기 위해 줄을 서 있다. 뒤편에는 2013년 숨진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의 대형 벽화가 그려져 있다. [AP=뉴시스]



“포라 지우마(Fora Dilma·지우마 퇴진)! 포라 PT(Fora PT·노동자당 퇴진)!”


경제난이 바꾸는 남미 정치 지형도

지난 13일(현지시간) 브라질 상파울루의 중심가 파울리스타 대로에 노란색 플래카드를 들고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이 대거 쏟아져 나왔다. 최근 브라질 하원이 추진 중인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절차를 지지하기 위해 거리로 나선 시위대다. 호세프 대통령은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전 대통령에 이어 좌파 정권을 이끌고 있다. 브라질 최대 방송사인 글로브TV에 따르면 이날 전국 39개 도시에서 8만여 명의 시민들이 탄핵 찬성 시위에 참여했다. 시위에 나선 안드리아노 드퀘이로스는 “호세프 대통령은 더 이상 국가를 통치할 수 없다”며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남미를 휩쓸었던 ‘핑크 타이드(Pink Tide·좌파 조류)’가 급속도로 퇴색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현장이다. 한때 남미 12개국 가운데 콜롬비아, 파라과이를 제외한 10개국은 좌파 정권이 장악하고 있었다. 브라질은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등과 공고한 좌파연대를 이끌어왔다. 하지만 이 세 나라의 좌파세력은 현재 위기에 처해 있다.



변화는 아르헨티나에서 시작됐다. 지난달 22일 치러진 대선 결선투표에서 중도 우파인 공화주의제안당(PRO)이 14년 만에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PRO의 마우리시오 마크리 후보가 페로니스모(Peronismo·페론주의) 좌파 집권 여당인 ‘승리를 위한 전선(FPV)’의 다니엘 시올리를 물리쳤다.



지난 6일 베네수엘라 총선에선 반(反)차베스 야권 연대인 민주연합회의(MUD)가 전체 167석 중 3분의 2가 넘는 113석을 차지했다. ‘차비스모(Chavismo·차베스주의)’를 추종하는 집권 좌파 통합사회주의당(PSUV)은 54석을 얻는 데 그쳤다.



브라질의 대통령 탄핵 절차는 지난 2일 에두아르두 쿠냐 연방하원의장의 결정으로 시작됐다. 경제난과 부패 스캔들이 원인이다. 야당은 호세프 대통령이 국영은행 재원을 승인 절차 없이 정부 지출에 사용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18일 연방대법원이 탄핵 절차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라고 판결하면서 제동이 걸린 상태지만 이미 정권에 대한 지지는 바닥으로 추락했다.



포퓰리즘적 사회주의의 한계 노출먹고사는 문제를 이기는 이데올로기는 없었다. 남미 민심이 좌파노선에 등을 돌린 데는 극심한 경제난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원유 등 국제 원자재값이 바닥을 치자 경기가 꼬꾸라졌다. 1999년 집권한 우고 차베스부터 현 대통령 니콜라스 마두로까지, 산유국 베네수엘라의 좌파 정권은 재정 대부분을 오일머니에 의지했다. 원유가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96%나 된다. 배럴당 100달러를 웃돌던 유가가 30달러대까지 추락하자 경제는 대공황 이후 최대 위기를 맞게 됐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10%다. 통화 가치는 달러화 대비 81%로 급락했다. 기본 소비재 수입도 힘들어지자 국민은 심각한 생필품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올해 물가상승률은 세 자릿수가 될 것이라는 보도도 나온다. 베네수엘라는 내년에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할 가능성이 크다. 사실상 국가파산 상태인 셈이다.



자원대국인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역시 경기 침체를 피해가지 못했다. 브라질의 지난 3분기 성장률은 전년 대비 -4.5%로 96년 이후 사상 최저치였다. 올해 성장률도 -3.2%를 기록할 전망이다. 아르헨티나의 올해 경제성장률은 0.4%, 내년은 -0.7%까지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남미 국민이 경제 성장에 주목하기 시작했다”며 “좌파 정부가 경제 성장에 실패하면서 중도 우파에 기회가 왔다”고 분석했다



저유가와 원자재값 하락에 나라 전체가 흔들리게 된 것은 비정상적인 경제 구조 때문이다. ‘차비스모’ ‘페로니스모’ 등으로 대표되는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적 사회주의의 한계다. 남미 좌파 정권들은 2000년대 초반 국제 원자재 강세 국면에서 돈을 벌어들인 뒤 재정의 30% 이상을 복지에 쏟아부었다. 국가기간시설 구축 등 기본적인 투자를 외면했다.



‘21세기 사회주의’를 표방하며 베네수엘라를 통치한 차베스 전 대통령은 집권 시절 석유회사를 국영화해 원유 판매 수입을 정부가 독차지하도록 했다. 1조 달러가 넘는 오일머니는 무상교육, 무상의료와 저가주택 공급, 각종 현금 보조금 지급 등 대규모 사회보장 정책을 집행할 수 있는 동력이 됐다. 차베스가 4선에 도전하던 2012년엔 저소득층에 무상으로 제공할 주택을 짓기 위해 국고를 탈탈 털었다. 비효율적인 국영기업을 민영화하고 시장을 개방해 경제 구조를 합리화하겠다는 야당의 공약은 소용이 없었다.



아르헨티나는 한때 세계 5대 경제대국에 속하는 선진국이었다. 하지만 46년 후안 페론 전 대통령의 선심성 정책 이후 경제 규모가 세계 60위권으로 쪼그라들었다. 은퇴자 570만 명의 연금액을 한번에 37%나 올려주고 국가 총예산의 19%를 생활보조금에 쓰는 등 무분별한 복지가 원인이었다. 2003년부터 12년간 집권한 네스토르 키르치네르와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키르치네르 부부의 집권기에 아르헨티나 경제는 더 피폐해졌다. 페르난데스 전 대통령은 집권 직후 정부가 지급하는 연금과 생활 보조금을 두 배로 올렸다. 정부에서 연금이나 보조금을 받는 사람은 전 국민의 40%에 달한다. 물가 상승을 막겠다며 인위적으로 페소화 가치를 높게 유지한 결과 달러는 고갈되고 경제위기는 심화됐다. 자유시장과 개방경제를 거부하며 복지를 확대한 결과 국가 재정은 바닥났다.



미국 플로리다 인터내셔널 대학의 에두아르도 가마라 교수는 “남미 좌파 정부는 원자재 가격 급등에 눈이 멀어 해야 할 일들을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미국의 정책연구소 ‘인터 아메리칸 다이얼로그(IAD)’의 마이클 시프터 소장은 “남미 좌파 정권들은 경제적 생계를 지속할 능력이 없다”며 “극적인 변화가 파도처럼 밀려오고 있다”고 말했다.



기선 잡은 우파, 복지제도 수술 나서정권 교체에 성공한 아르헨티나와 우파가 기선을 잡은 베네수엘라는 벌써 복지제도 개편과 시장친화적인 경제 정책을 예고하고 있다. 17일 마크리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4년 만에 처음으로 환율 통제를 해제하며 경제 개혁의 첫 단추를 끼웠다. 또 재고가 쌓인 농작물 수출을 활성화하기 위해 쇠고기, 밀, 옥수수 등에 부과된 수출 관세를 없애기로 했다. 베네수엘라 총선에 승리한 야당연합은 극단적인 인플레이션을 해소하기 위해 중앙은행 화폐량 통제 입법을 서두르고 있다. 로이터는 “민간 기업부문 활성화와 국영기업 민영화 등의 법률 제정이 베네수엘라 야당의 주요 정책이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메르코수르(Mercado?Comun?del?Sur·남미공동시장)에도 적잖은 변화가 예상된다. 무역장벽 철폐를 위해 출범한 메르코수르에는 브라질,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파라과이가 참여하고 있다. 마크리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메르코수르의 경제블록 강화에 힘쓰겠다”고 밝혔다. 아르만두 몬테이루 브라질 개발산업통상부 장관도 “브라질 정부는 메르코수르와 유럽연합(EU) 간의 자유무역협상(FTA) 체결을 최우선적인 의제로 삼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메르코수르와 EU는 90년대 중반 협상을 시작했으나 각국의 이해를 둘러싼 의견 충돌로 아직 결실을 맺지 못했다. 두 블록 간에 FTA가 체결되면 양측을 합쳐 7억 명의 소비인구를 가진 거대 시장이 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급격한 체질 개선 쉽지 않다는 전망도남미 대륙의 변화에 대해 시장은 벌써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베네수엘라 채권은 총선 직후 값이 오르기 시작해 지난 5월 이래 최고가를 경신했다.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의 아르헨티나지수도 정권 교체 이후 운용자산이 급격히 증가했다. 브라질 주식 상장지수펀드(ETF)에 신규자금이 빠른 속도로 유입하고 있다.



하지만 낙관적인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국제신용평가사인 무디스와 피치는 “브라질의 대통령 탄핵 과정이 정치적 불안을 심화시켜 브라질의 장기 침체를 가속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아르헨티나의 대표 주가지수인 머발(Merval) 지수는 마크리 대통령의 당선 이후 5% 넘게 떨어졌다.



남미 좌파 정권이 약화됐다고 해서 곧바로 90년대식 우파가 복귀하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우파가 표심을 끌어들이는 주된 요인은 정치 지도자의 온건함과 실용적 정책대안 때문”이라며 “남미인들은 시장에 모든 것을 맡기자는 강경 보수보다는 중도 쪽의 완만한 접근을 선호한다”고 분석했다. 무상복지 혜택에 익숙한 빈곤층이 급격한 사회변화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남미 국가의 체질 개선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김경미 기자 gae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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