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대외부채 적고 정책입안 일관성 보여 높은 점수 신용도 유지하려면 가계부채·고령화 대안 시급

중앙선데이 2015.12.20 01:24 458호 7면 지면보기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가 19일 한국의 신용등급을 상향 조정한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다. 한국의 신용지표가 건전하고 앞으로도 견고할 것이란 전망, 그리고 구조개혁을 계속 추진할 제도적 역량이 매우 뛰어나다는 기대다.



선진국보다 빠르게 성장 … 격차 좁혀무디스는 우선 한국의 경제와 재정이 다른 나라에 비해 상당히 견실하다고 평가했다. 외부 수요가 줄어드는 상황에서도 이 같은 평가는 당분간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물론 한국의 수출의존형 경제가 중국의 성장 둔화와 세계 무역의 위축이란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국내총생산(GDP)의 80%에 달하는 가계부채도 경제 성장에 장애요소가 될 것이고, 장기적으로는 고령화와 부족한 복지제도가 성장을 저해하고 재정 부담도 키운다고 우려했다.

최희남 기획재정부 국제경제관리관이 19일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서 무디스의 국가 신용등급 상향 조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기획재정부]


무디스, 한국 신용등급 왜 올렸나

하지만 앞으로 5년간 3% 내외의 성장이 예상되는 한국 경제는 선진국보다 빠르게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1인당 국민소득도 계속해서 유럽 선진국 수준에 근접해 가고 있다고 밝혔다. 무디스는 이 같은 전망의 근거로 한국의 재정건전성을 꼽았다. 복지비용을 감안하고도 2010~2014년 평균적으로 GDP의 1.1%에 해당하는 재정흑자를 냈다는 것이다. 산유국을 제외하고 Aa 등급을 받은 나라들은 같은 기간 GDP의 1.3%에 달하는 재정적자를 기록했다.



이 밖에 지난해 국제순자산투자가 플러스로 돌아선 점, 대외부채 규모가 GDP의 30%에 불과하며 단기외채 비중도 30% 이하로 떨어진 점 등도 높이 평가했다. 한국이 예기치 못한 대내외 충격에 대응할 수 있는 강한 완충재를 확보했다는 것이다.



무디스는 또 한국 정부가 일관된 정책 입안과 효과적인 집행으로 제도적 역량을 확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정부가 추진 중인 공공·노동·금융·교육 분야 개혁은 노동시장의 이중성을 줄이고 상품 및 서비스시장 규제를 완화하는 효과가 기대된다는 것이다. 또 정부와 국회가 정부 투자기관의 부채 축소에도 박차를 가해 지난 2년간 계획보다 더 많은 부채를 줄인 점을 평가했다. 공무원연금 개혁도 장기적으로 재정건전성 강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계속되는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도 경쟁력 제고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무디스는 그러나 “한국의 기초경제여건(펀더멘털)은 향후 3~5년간 강하겠지만 급속한 고령화와 중국의 경기 둔화라는 도전도 존재한다”고 덧붙였다. 이어 “전쟁의 가능성은 작지만 한국의 재정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는 북한의 붕괴 가능성이라는 지정학적 위험은 여전하다”고 진단했다.



“한국은 그나마 낫다” 차별화 성공한국의 국가 신용등급이 역대 최고 수준으로 조정된 것은 다른 국가와의 차별화에 성공했다는 의미도 있다. 프랑스는 올 9월 무디스로부터 신용등급이 한 단계 하향 조정되면서 현재 우리나라와 같은 등급이 됐다. 일본은 올 들어 피치와 S&P로부터 등급이 한 단계씩 하향 조정됐다. 브라질은 S&P와 피치로부터 신용등급이 하향 조정되면서 투기등급으로 떨어졌고, 영국·사우디아라비아·벨기에 등은 등급 전망이 ‘부정적’이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다들 힘든데 그나마 낫다는 점과 거시건전성이 잘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 높게 평가받은 것”이라며 “외국인 자본 유출에 대한 공포가 있는 상황에서 낭보가 아닐 수 없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우리 국민의 체감경기와는 동떨어진 느낌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장은 “신용평가사가 중시하는 것은 성장세보다는 우리가 외화 표시로 발행한 채권들을 잘 갚을 수 있는지 여부일 뿐”이라고 말했다. 일본은 우리보다 선진국이지만 국가 부채가 굉장히 많아 신용등급이 낮다는 것이다. 신 부문장은 “채권 발행 시 금리여건 등이 더 좋아지는 것은 사실이니 이를 바탕으로 실물경기를 활성화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이필상 서울대 경제학부 겸임교수는 현재의 높은 신용등급이 지속 가능한지 점검해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조선·철강·석유화학 등 우리의 주력 산업 전반이 어려운 상태”라며 “신용등급 상향이 미국 금리 인상에 따른 자본 유출 우려에 방파제가 될 수 있는 만큼 이를 활용해 경제 구조개혁이나 신사업 발굴 등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외환위기 땐 ‘저승사자’ 악연도무디스는 한국과 악연이 깊다. 한국 경제에 외환위기의 암운이 드리워지던 97년 10월 S&P가 우리나라의 신용등급을 한 단계 낮췄다. 11월에는 피치도 같은 조치를 취했다. 무디스는 뒤늦게 발동을 걸었지만 그해 11월 28일부터 12월 21일까지 한 달도 채 안 되는 기간에 세 차례에 걸쳐 한국의 신용등급을 6단계 하향 조정했다. 신용등급이 추락할 때마다 국내 외환시장은 급격히 냉각되면서 무디스는 ‘저승사자’라는 악명을 얻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고 금융과 기업이 뼈를 깎는 구조조정에 나설 때도 무디스의 신용등급은 요지부동이었다. 2002년 3월 무디스가 신용등급을 A3로 올린 뒤에야 한국은 투자 부적격 신세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무디스는 2012년 9월 피치가 한국의 신용등급을 AA-로 상향한 지 2년9개월이 지난 올해 4월에야 같은 등급인 Aaa3로 올렸다.



하지만 올 9월 S&P까지 AA-로 상향 조정하자 이번에는 사상 최고 등급으로 끌어올렸다. 20년 가까이 한국 신용등급 평가에 인색하던 무디스가 적극적으로 나선 셈이다. 이에 대해 상황이 검증될 때까지 기다리기보다는 자신들의 평가 내용을 바탕으로 대담하게 움직이는 무디스의 스타일을 반영한 것이라는 평이 나온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등급을 깎을 때 무자비하게 낮췄던 무디스지만 한국 경제가 안정적이라고 확신하자 과감히 상향 조정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1900년 존 무디가 창업한 무디스는 1909년 미국 최초로 철도회사 채권에 대한 신용등급을 발표하면서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29년부터 진행된 대공황 시절 무디스가 투자 적격 등급으로 평가한 회사들만 살아남으면서 S&P·피치와 함께 세계 3대 신용평가 업체로 발돋움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워런 버핏이 투자했다. 2015년 3월 31일 현재 버핏이 이끄는 버크셔 해서웨이가 12.2%의 지분을 보유한 1대 주주다.



 



 



박성우·김경미 기자 blast@joongang.co.kr

구독신청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