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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밥 나누던 파업의 추억 옛일 … “억지 투쟁 발상 버려야”

중앙선데이 2015.12.20 01:21 458호 8면 지면보기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은 ‘닥치고 파업’을 외치는 강경파다. 2009년 쌍용차 옥쇄파업을 이끌기도 했다. 경찰은 18일 한 위원장에 대해 소요죄를 적용, 검찰에 송치했다. [뉴시스]



민주노총 총파업에 대한 여론이 우호적인 시절이 있었다. 1996년 12월부터 다음해 1월까지 24일간 이어진 노동법 개정 투쟁(노개투) 총파업이 대표적이다. 신한국당이 7분 만에 정리해고 요건을 완화하는 내용의 노동법 개정안을 날치기 통과한 것이 원인이었다. 당시 파업에 참가한 누적 인원은 360만 명에 달했다.


파업 지상주의 덫에 걸린 민주노총

 그때 파업에 참여했던 울산 지역 노동자 박모(53)씨는 이렇게 회상했다.



 “우리 일행이 식당에 들어갔는데 주인이 다가와서 ‘훌륭한 일을 하시느라 고생이 많다’고 하는 거야. 국밥을 다 먹고 계산을 하려는데 돈도 안 받더라고.”



 노동계는 총파업으로 원하는 결과를 얻었다. 97년 1월 21일 김영삼 대통령은 노동법 재개정과 파업 주동자에 대한 구속영장 철회를 발표했다.



 19년이 흘렀다. 민주노총은 지금도 노동 이슈가 터져나올 때마다 총파업 깃발을 들고 나온다. 하지만 예전처럼 사람이 모여들지 않는다. 박씨는 지금도 공장에 다니고 있지만 민주노총 조합원은 아니다. 그는 “이제는 파업을 한다고 국밥을 내어주진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2000년대 중반 들어 강경파 약진민주노총에는 3개의 정파가 있다. 민족해방(NL) 계열인 국민파와 민중민주(PD) 계열인 중앙파·현장파다. 국민파는 사회적 대화와 타협의 필요성을 인정한다. 중앙파는 중도 성향이다. 현장파는 총파업에 가장 적극적인 강경파다. 세 정파는 민주노총 내에서 정파 투쟁을 벌여왔다.



 2000년대 중반 들어 강경파의 득세가 두드러진다. 2005년 노무현 정부 때 사회적 대화를 추진하다 강경파의 흔들기에 밀려 물러난 이수호(국민파) 전 위원장이 대표적인 사례다. 창립 10년을 맞은 2005년 당시 이 위원장 집행부가 노사정 참여를 대의원대회 안건으로 올린 일이 있었다. 하지만 강경파가 회의장에 시너와 소화기를 뿌리고 난투극을 펼쳤다. 강경파는 이 위원장을 ‘개량주의자’라고 몰아붙였다. 이 위원장은 강경파의 흔들기에 결국 임기를 못 마치고 물러났다.



 현재 총파업을 주도하고 있는 한상균 위원장은 현장파다. 민주노총 첫 직선제 위원장인 그는 절반이 조금 넘는 지지(51.62%)로 당선됐다. 그의 공약은 ‘즉각적 총파업’이었다. 낙선한 전재환(중앙파) 후보는 ‘준비된 총파업’을 내걸었다. ‘닥치고 총파업’보다는 파업 여건이 무르익었을 때 역량을 집결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전 후보의 지지율은 절반에 육박(48.38%)했다. 하지만 지금 민주노총 내에선 48.38%의 목소리는 강경파의 투쟁구호에 묻혀 들리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강경파가 민주노총을 장악하는 원인을 조직적 기반에서 찾는다. 민주노총 산별노조 중 가장 규모가 크고 강경파로 분류되는 게 금속노조와 공공운수노조다. 자동차와 중공업 등 대기업 근로자가 주축이 된 금속노조와 철도노조 등 공공기관 노조 중심의 공공운수노조는 각각 15만 명의 막강한 조합원 수를 갖고 있다. 60만 조합원 중 절반가량을 차지한다.



 김기봉 전국노동조합총연맹 대변인은 “공약부터 즉각적 총파업을 내거는 건 사리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대화할 생각은 애초부터 없으면서 파업부터 생각하고 파업할 거리가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하겠다는 이야기인지 우려스럽다”고 했다. 김 대변인은 한국석유공사의 초대 노조위원장을 지냈다. 80년대 강성 노동운동을 이끌었던 선배의 눈에도 지금 민주노총의 투쟁 일변도 노선이 위태위태해 보이는 것이다.



대화 병행하고 전체 노동자 대변해야민주노총은 창립 초기 40여만 명이던 노조원 수를 한때 두 배인 80만 명까지 늘렸다. 특히 2006년은 민주노총의 전성기였다. 전국공무원노조(전공노)가 민주노총에 가입했고, 자동차노조가 금속노조를 출범시켰다. 이를 신호탄으로 운수·공공 등 산별노조의 결성이 이어졌다.



 하지만 전성기는 3년을 넘지 못했다. 2009년 공공운수연맹 소속 단위노조와 KT노조 등이 민주노총에서 떨어져나갔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근로자(190만5470명) 중 민주노총에 가입한 사람은 63만1415명(33.1%)이다. 한국노총은 84만3174명으로 민주노총을 웃돈다.



 민주노총도 쇠락의 원인을 잘 알고 있다. 민주노총은 지난 8월 창립 20주년을 맞아 지역본부·산별노조 간부 461명을 설문조사했다. 그 결과 민주노총 내 가장 큰 문제로는 ▶관성적·관례화된 행동(29%) ▶총연맹으로서 지도력 부재(21.9%)가, 내부 장애물로는 ▶정파주의(24.1%) ▶현장 장악력 약화(23.7%)가 꼽혔다.



 내부에서도 지금과 같은 관성적이고 관례화된 총파업 지상주의에서 벗어나고 정파주의를 청산해야 하는 목소리가 높은 것이다. 고용노동부 출신으로 이랜드 비정규직 파업을 다룬 정병조 노무사는 “민주노총은 이수호 위원장 때만 해도 대화와 협상이 가능한 조직이었는데 지금은 DNA가 완전히 바뀌어서 투쟁으로 모든 걸 풀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민주노총은 우리나라 노동계를 대표하는 양대 노총의 한 축이다. 노사정 대화의 중요한 파트너다. 노동 정책에 반대하더라도 노사정 대화의 틀 안에서 목소리를 내는 게 순리다. 80년대 사고에 갇혀 투쟁만을 고수하는 것은 민주노총을 고립시키고 영향력을 오히려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는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과거 민주화 운동 시기에나 통할 법한 낡은 투쟁 전술을 고수하고 있다”며 “국민이나 근로자 모두 이런 방식의 문제 제기에 공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장주영 기자 jang.joo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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