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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가족의 탄생에서 미래를 찾다

중앙선데이 2015.12.20 00:36 458호 6면 지면보기
현대 일본영화계에서 최고의 문제적 작가 감독으로 꼽히는 고레에다 히로카즈(是枝裕和·53)는 줄곧 현대 일본사회에서 붕괴하고 해체 돼 가는 가족 관계, 더 나아가 인간과 인간의 유대와 연대의 문제를 얘기해 왔다. ‘걸어도 걸어도’(2003)만큼 가족과 가정에 대한 남녀간의 차이를 명징하게 보여준 작품은 없다. 2004년 칸 영화제를 비롯해 세계가 주목한 영화 ‘아무도 모른다’는 엄마에게 버림받고 차례로 죽어가는 네 명의 아이들 얘기다. 세계 선진국가로 늘 1, 2위를 다투는 일본의 풍요로운 자본주의 사회의 이면에 사실은 저런 비극이 산재해 있다는 충격적인 리포트를 통해 일본사회는 만천하에 자신의 민낯과 치부를 드러냈다.



‘진짜로 일어날지 몰라 기적’(2011)과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를 통해서는 일본 가정의 몰락 원인을 우회적으로 갈파한다. ‘부성(父性)=가부장적 질서=중산층적 안정 기조’에 대한 지나친 의존 혹은 집착과 강박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고레에다는 일본 사회 내 기존 부성의 권위를 전복시키고 진정한 부성의 가치를 올바로 세우지 않으면 일본사회는 절대로 ‘아버지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다. ‘진짜로 기적이 일어날지 모른다’라는 얘기는 사실은 기적 따위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자신이 지금껏 애지중지 키웠던 아들이 알고 보니 병원에서 뒤바뀐 다른 남자의 아이였다는 것을 알게 된 한 아빠의 이야기다. 이 아빠는 결국 다른 남자에게서 자라던 자신의 친아들을 데려 오지만 한 단계 계급이 낮은 집안에서 그간 자란 아이가 영 못마땅할 수밖에 없다. 흔히들 부자(父子)라면 무조건적인 의미로 묶여 있는 관계라고들 한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그런데 그게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 끊임없이 배려의 기술을 터득하고 서로를 끝까지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는 인내의 자세가 연마돼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가족은 가족이기 때문에 가족이 아니고, 가족이 되려고 하는 노력 때문에 가족이 되는 것임을 그는 강조한다.



17일 개봉된 신작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지금껏 그가 얘기했던 주제의 모든 층위를 집대성한다. 이 영화에서 부성은 이미 사라졌다. 15년 전 세 딸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는 그나마 아무 말 없이 열세 살의 어린 이복 여동생을 남겨 놓은 채 죽는다. ‘세 딸’이 아버지의 ‘새 딸’을 키우게 된다. 결국 모성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며, 기성 세대보다 새로운 세대가 세상을 맡을 것이고, 순수 혈연보다 하이브리드(hybrid)를 통한 새로운 가족의 탄생에서 일본사회의 미래를 본다는 것이 ‘바닷마을 다이어리’에서 고레에다가 하고 싶은 얘기일 것이다.



한국 배우 배두나를 주연으로 출연시킨 ‘공기인형’(2009)에서 공기인형이었다가 사람이 된 여인 노조미는 어느 날 늦은 밤 공원에서 홀로 앉아 있는 노인과 대화를 나눈다. 노조미가 불쑥 말한다. “저는 심장이 없어요.” 그녀가 공기인형이라는 걸 알 리가 없는 노인이 말한다. “요즘엔 심장이 없는 사람들 천지지.”



감독은 사람들이 ‘심장’을 되찾기를 바라는 영화를 찍는다. 인간관계의 복원이야말로 그의 영화가 내세우는 이 시대의 화두다. 그의 영화들은 인간의 마음속 저 끝까지를 ‘걸어도 걸어도’ 아직 먼 길이 남아 있음을 보여주며, 하여 ‘바닷마을’에서 차분히 앉아 ‘일기’를 쓰듯 세상을 관조하고 반성해 내면 ‘진짜로 기적이 일어날’ 것이고, 그러면 ‘다들 그렇게’ 올바른 ‘아버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이 보인다. ‘공기인형’은 그때서야 비로소 사람의 심장을 얻게 될 것이다.



영화감독은 시대의 징후-몰락과 새로운 탄생- 를 읽어내는 데 있어 남다른 감각을 지닌 사람들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그 중 단연 최고다. 사람들이 그의 영화에서 기쁨과 슬픔, 따뜻함과 섬뜩함, 불안과 희망을 동시에 느끼게 되는 건 바로 그 때문이다. ●



 



 



글 오동진 영화평론가 ohdjin@hanmail.net, 사진 티캐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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