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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 생존모델 ‘체급별’ 특화… 약육강식 대신 나눔으로 생존

중앙선데이 2015.12.20 00:36 458호 25면 지면보기

흔히 황금박쥐라고 하는 붉은박쥐. 우리나라와 일본 대마도, 타이완, 필리핀과 아프가니스탄 동부, 인도 북부 등에 분포하는 작은 박쥐다. 무려 220일 동안 겨울잠을 잔다.



『사라져 가는 것들의 안부를 묻다』라는 아주 따뜻한 과학책이 있다. 여러 종의 동물이 릴레이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편지를 쓰는 형식이다. 인간이 박쥐에게, 박쥐가 꿀벌에게, 꿀벌이 호랑이에게…. 글쓴이는 도시공학과 생명공학 그리고 환경학을 공부한 동아사이언스의 윤신영 기자. 윤신영은 멸종 위기의 동물들이 또 다른 동물들에게 남기는 자연과 환경 그리고 함께 살아가는 철학 이야기를 한다.


[이정모의 자연사 이야기] 이솝이 몰랐던 박쥐생활

첫 번째 편지는 인간이 박쥐에게 보낸다. 안부를 묻는 첫 번째 대상이 하필 박쥐라니…. 박쥐는 우리가 그리 안타깝게 생각하는 존재가 아니지 않은가? 요즘 박쥐를 직접 본 사람은 거의 없지만 박쥐에 대해 우리는 아주 잘 알고 있다. 박쥐에 대한 우리의 첫인상을 심어준 사람은 이솝이다.



날짐승과 들짐승이 숲에서 패권을 다투는 전쟁을 하고 있었다. 박쥐는 날짐승이 우세한 것처럼 보일 때는 날짐승 편에 서고, 들짐승이 우세한 것처럼 보일 때는 표변해 들짐승 편에 선다. 강화조약을 맺은 날짐승과 들짐승은 양쪽을 오간 박쥐를 동굴 안으로 내쫓았다.



이솝은 ‘한쪽에 우직하게 충성을 바치지 않고 눈앞의 이익만 좇다가는 망하고 만다’라는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것 같다. 이솝우화의 교훈은 단순하다. 그래서 우리에게 오래 기억되고 있다. 그런데 너무 단순했다는 게 문제다. 아인슈타인도 말했다. “사물은 최대한 단순하게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더 단순해지면 안 된다.” 이솝우화는 더 단순했고 여기로부터 박쥐에 대한 온갖 오해가 생겨났다.



 흡혈박쥐, 코의 열 센서로 혈관 찾아사람들에게 박쥐는 도덕적으로도 옳지 못한 동물일뿐만 아니라 보잘것없는 동물이기도 하다. 징그럽게 못생겼으며 왠지 병균을 옮기고 사람과 가축의 피를 빨아먹는 놈들 같다. 실제로 흡혈박쥐가 있다.



흡혈박쥐는 낮에 자고 밤에 활동하는 야행성 동물이며 동굴의 천장에 거꾸로 매달린다. 보통 100마리가 군집을 이루지만 때로는 1000마리 이상의 대군집을 이루기도 한다. 100마리로 이루어진 무리가 1년에 빨아먹는 피의 양은 황소 25마리에 해당한다.



흡혈박쥐는 캄캄한 밤이 돼야 사냥에 나선다. 대개는 잠자고 있는 소와 말이 먹잇감이지만 때로는 사람의 피를 빨아먹기도 한다. 흡혈박쥐는 아래서 공격한다. 먹잇감 근처에 착륙한 후 네 발을 이용해 접근한다. 액체를 먹기 때문에 이빨이 몇 개 안 되지만 매우 날카로운 이빨로 혈관을 정확히 깨문다. 칠흑처럼 캄캄한 밤에 흡혈박쥐는 어떻게 혈관을 정확히 찾아서 깨물까? 흡혈박쥐의 코에는 열 센서가 있어서 먹잇감의 피부 밑에 따뜻한 피가 흐르는 위치를 정확히 짚어낸다. 이빨로 깨문 다음에 흐르는 피를 혀로 핥아먹는다. 흡혈박쥐의 침에는 피가 응고되는 것을 막아주는 물질이 들어 있어서, 한번 핥아먹기 시작하면 보통 30분은 계속 먹는다. 이 과정에 먹잇감에게 세균과 바이러스를 옮길 수는 있지만 먹잇감이 죽을 정도로 피를 뽑아 먹지는 않는다.



새끼 흡혈박쥐는 피 대신 젖을 먹는다. 모든 젖먹이동물 어미의 심정은 다 똑같다. 자기 새끼에게는 무엇보다도 젖을 먹이고 싶은 것이다. 새끼가 젖을 먹기 위해서는 어미에게 단단히 매달려야 한다. 새끼는 하늘을 날고 있는 어미에게도 단단히 붙어 있을 수 있다. 새끼는 오로지 체온을 유지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어미의 젖을 석 달 동안이나 먹는다. 왠지 박쥐는 아주 무서운 놈들 같다. 하지만 걱정 놓으시라. 흡혈박쥐는 단 세 종에 불과하며, 멕시코와 중앙아메리카 그리고 남아메리카의 적도 지방에만 산다. 뱀파이어라는 단어가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처음 실린 1734년에는 유럽 사람들이 아직 흡혈박쥐를 보지 못했는데 왜 박쥐가 뱀파이어의 상징이 되었는지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작은박쥐목에 속하는 박쥐들은 레이더와 같은 반향정위 기능으로 곤충의 위치를 확인하고 사냥한다.



 



원시 박쥐엔 레이더 기능 없어 ‘감각 비행’박쥐가 오해를 받는 결정적인 이유는 새처럼 하늘을 날 수 있지만 동시에 새끼에게 젖을 먹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박쥐의 정체는 무엇인가, 날짐승인가 들짐승인가?



우선 박쥐는 쥐가 아니다. 흔히 설치류(齧齒類)라고 하는 쥐목(目)은 앞니가 위아래 모두 한 쌍뿐이며, 쥐·다람쥐·청서·비버 등이 여기에 속하고 약 1730종이 알려져 있다. 박쥐는 박쥐목 또는 익수목(翼手目)에 속하는 젖먹이동물(哺乳類)이다. 기다란 앞다리 발가락과 뒷다리 사이에 피부가 변한 탄력성 있는 날개막이 있어서 젖먹이동물 가운데 유일하게 제대로 날 수 있는 동물이다. 남극 대륙을 제외한 모든 대륙에 살고 있으며 우리나라에도 23종이나 살고 있다. 젖먹이동물 가운데 설치류 다음으로 많은 약 1200종이 있다. 전 세계 젖먹이동물이 약 5400종이니 젖먹이동물 네댓 종 가운데 한 종은 박쥐인 셈이다. 아주 성공한 동물이라고 할 수 있다.



박쥐의 가장 뛰어난 전략은 남들이 다 자는 캄캄한 밤에 날아다닌다는 것이다. 박쥐가 밤에 날아다닐 수 있는 까닭은 물체에 반사된 소리를 인식해서 눈으로 보지 않고도 그 물체의 위치를 감지하는 레이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반향정위(反響定位)라고 한다.



그렇다면 박쥐에게 비행 능력과 반향정위 가운데 어느 것이 먼저 생겼을까? 이것을 알아내는 방법은 간단하다. 날개막이나 초음파를 내는 구조 둘 중 하나가 없는 화석을 찾으면 어느 것이 먼저이고 어느 것이 나중인지 분명해진다. 하지만 이 문제는 박쥐 연구가와 진화학자들의 오랜 수수께끼였다. 화석으로 남아있는 5200만 년 전 박쥐나 지금 살고 있는 박쥐나 그 모습이 거의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덕분에 (딱히 과학자라고는 할 수 없지만 본인들은 과학자라고 하는) 창조과학 계열의 사람들에게 박쥐는 모든 종들이 지금 이 모습대로 창조된 좋은 증거로 작용했다.



 

‘비행이 먼저다’라는 제목으로 ‘네이처’ 표지를 장식한 오니코닉테리스 핀네이. 5250만 년 전에오세에 살았다. 날개막 구조는 있지만 반향정위에 필요한 구조는 없다. 이 화석을 통해 박쥐에게 비행 기술이 레이더 장치보다 먼저 생겼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화석은 만들어지기도 어렵고 발견되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를 해결해 줄 화석이 발견되었다. 2008년 2월 14일자 ‘네이처’의 표지를 장식했던 오니코닉테리스 핀네이(Onychonycteris finneyi)가 바로 그것. 뉴욕에 있는 미국 자연사박물관의 학예사가 미국 와이오밍의 5250만 년 지층에서 2003년에 처음 발견했다. 지금까지 단 두 표본만 발견된 오니코닉테리스 핀네이는 날개막 골격 구조가 현생 박쥐와 거의 비슷하다. 차이가 있다면 뒷발이 조금 크고, 다른 박쥐들이 두세 개의 발가락에만 발톱이 있는데 반해 모든 손가락에 발톱이 다 있다는 정도. 하지만 초음파를 내고 반사음을 받아들이는 역할을 담당해야 할 확대된 달팽이관 구조가 없다. 같은 시대 같은 장소에서 발견되는 다른 박쥐 화석에는 이 기관이 있다. 이젠 박쥐에게 비행이 먼저냐 반향정위가 먼저냐 하는 문제가 해결된 것이다. 비행이 먼저다. 눈이 특별히 더 크다는 증거도 없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초기의 원시 박쥐들은 시각과 후각 그리고 청각에 의존해서 방향을 잡고 사냥을 했을 것이다.



과학이란 질문의 연속이다. 박쥐의 진화에도 여전히 질문이 남아 있다. ‘땅에서 살던 박쥐가 언제 그리고 어떻게 날 수 있는 동물로 진화되었을까?’라는 질문에 이제 답할 차례이다.



 나눔 전략 탓 열대·아열대로 서식지 한정박쥐는 히어로다. 지금 나이가 50대인 사람이라면 정작 내용은 가물가물해도 “황금박~쥐! 어디 어디 어디에서 오느냐? 황금박~쥐! 빛나는 해골은 정의의 용사다.”로 시작하는 만화 주제가가 절로 입에 붙을 것이다. 1968년부터 당시 TBC에서 방영했던 이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은 괴상하게 생긴 해골이었지만 박쥐의 날개막을 연상시키는 검은 망토를 입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를 박쥐라고 여겼다. 50대에게 황금박쥐가 한때 영웅이었다면 젊은 세대들에게는 배트맨이라는 히어로가 있다.



 

겨울잠을 자는 황금박쥐(붉은박쥐).



그런데 박쥐가 히어로인 까닭은 따로 있다. 박쥐는 현생 젖먹이동물 가운데 가장 고참에 속하면서도 엄청난 다양성을 유지하고 있다. 박쥐는 다른 동물들처럼 무작정 몸집을 키우는 전략을 취하지 않았다. 박쥐는 크기가 다양하다. 박쥐는 큰박쥐아목과 작은박쥐아목으로 분류된다. 작은박쥐아목에는 2~3g밖에 안 되는 작은 박쥐가 있는가 하면 큰박쥐아목에는 1.5㎏에 달하는 커다란 날여우박쥐도 있다.



작은박쥐아목에서 갈라져 나온 큰박쥐아목은 작은 박쥐들과 같은 먹이를 놓고 경쟁하면서 억누르는 대신 다른 먹이를 택했다. 작은 박쥐들이 먹는 곤충은 작은 박쥐들에게 양보하고 열매와 꽃가루와 꿀을 먹이로 선택했다. 몸집이 커진 만큼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모험을 감행했다. 덕분에 사는 영역을 대부분 열대와 아열대로 한정하는 손해를 감수해야 했지만 모험에 성공했다.



박쥐는 많은 종들이 함께 살 수 있도록 생태적 틈새(niche)를 나눔으로써 엄청난 다양성을 확보하게 된 것이다. 생태적 틈새란 먹이·서식지·산란기 등을 말한다. 생태적 틈새를 나누자 종도 많아졌을 뿐더러 장수하는 동물이 됐다. 박쥐와 크기가 비슷한 쥐와 다람쥐가 기껏해야 각각 2~4년과 3~6년을 사는 데 반해 박쥐는 10~30년을 산다. 박쥐가 히어로인 까닭은 고담시티의 악당을 해치워서가 아니라 ‘나눔’을 통해 종의 다양성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윤신영의 『사라져 가는 것들의 안부를 묻다』의 마지막 꼭지 세 개는 버펄로가 사자에게, 사자가 네안데르탈인에게, 마침내 네안데르탈인이 인류에게 보내는 편지다. 지금 인류가 72억5000만 명이 넘는다고 하지만 결국 우리 인류도 사라져 가는 것들 가운데 하나라는 뜻이다. 우리가 박쥐가 사라지고 있는 현실을 안타까워하고 박쥐의 터전을 지켜야 하는 까닭은 바로 우리 인류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함이다. 박쥐에게서 배우자. 박쥐처럼 살자.



 



이정모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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