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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등 켜야 하는데 …’ 어느새 반짝반짝

중앙선데이 2015.12.20 00:36 458호 1면 지면보기
텔레파시(telepathy)는 SF영화의 단골 소재다. ‘스타워즈’의 ‘제다이’ 기사가 그렇고, ‘엑스맨’의 ‘프로페서X’가 그렇다. 이들은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의 머릿속에 음성의 형태로 전달한다. 이들 영화에서처럼 복잡한 ‘생각’을 즉각적으로 타인에게 전달하는 기술은 요원하다. 과학자들은 이 기술이 도입되려면 족히 100년은 걸릴 거라고 예상한다. 하지만 생각·기억·감정이 아닌 ‘신호’를 전달하는 정도는 현재도 가능하다. 그뿐 아니라 뇌파를 이용해 컴퓨터·기계를 조작하는 기술은 이미 상용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렇게 생각만으로 기계를 조종하거나 메시지를 주고받는 기술을 일컬어 아스택미래기술경영연구소 차원용 대표는 ‘두뇌인터넷(Internet of Brain·IoB)’이라고 표현한다. 

1 일본 게이오대 연구진은 뇌파 중 짧은 파장이 나올 때 자동으로 사진을 찍는 장치를 개발했다. 2, 3 뇌파를 이용해 게임 속 캐릭터를 이동시키거나 다른 사람과 간단한 핑퐁게임을 할 수도 있다.



감정도 전달하는 텔레파시 시대 올 것 2014년 5월, 스페인 바르셀로나대와 미국 하버드의대 연구진은 원초적인 수준에서의 텔레파시에 성공했다. 뇌에서 뇌로 ‘Hola·Ciao(각각 스페인어와 이탈리아어로 안녕이란 뜻)’라는 단어를 전달한 것이다. 어떠한 신체 움직임 없이 인도 남부 케랄라주의 작은 도시에서 전송된 단어는 8000㎞ 떨어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 도달했다. 이 실험 결과는 같은 해 8월 ‘미국 공공과학도서관 온라인 학술지(Plos one)’에 실렸다.


두뇌인터넷(IoB) 세상 오면

 과정은 간단하다. 인도에 있는 연구진의 뇌에서 hola라는 단어를 읽어내고 전송한 후, 이를 다시 프랑스 연구진의 뇌에 집어넣으면 된다. 하지만 각 과정을 가능케 하는 데는 최첨단 뇌공학·컴퓨터공학 기술이 사용된다. 뇌에서 단어를 읽어내는 기술은 ‘BCI(Brain-Computer Interface)’라고 한다. BCI와 반대로 전달받은 메시지를 뇌 속에 집어넣는 기술은 ‘CBI(Computer-Brain Interface)’라고 한다. BCI와 CBI를 연속해 붙이면 ‘BBI(Brain-Brain Interface)’, 즉 두뇌 간 연결이 가능한 세상이 열린다. 두뇌인터넷이란 이 세 가지 개념을 아우르는 용어다.



 현재 수준에서 BBI는 모스신호를 전달하는 정도에 그친다. 뇌파를 정확히 읽어내는 게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확연히 다른 두 종류의 뇌파를 0과 1로 나타내 알파벳을 이진법으로 변환했다. 통신기술이 모스신호에서 문자, 음성, 사진, 영상 순으로 발전해 왔듯 BBI 역시 비슷한 과정을 거칠 것으로 예상된다. 차 대표는 “궁극적으론 기억이나 감정까지 전달할 수 있는 ‘텔레파시 시대’를 맞이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결국 BCI와 CBI 각 기술의 발전이 두뇌인터넷의 발전과 일맥상통하다는 것이다.



뇌파 이용해 앱 실행 컴퓨터·TV 작동두 기술 가운데 BCI는 우리 생활 근처에 좀 더 가까이 다가서 있다. 바르셀로나대의 실험과 같이 BCI는 뇌파를 이용한다. 뇌파는 뇌 속 뉴런이 활동하고 있다는 증거다. 얼마나 많은 뉴런이 동시에 활동하느냐에 따라 뇌파의 주파수 영역이 다르다 . 이를테면 깊은 잠에 빠졌을 땐 가장 고요한 파장이 나온다. 0.5~3.5㎐의 델타(δ)파다. 얕은 잠, REM수면에 들었을 땐 이보다 짧은(4~7㎐) 세타(θ)파가 나온다. 깨어 있는 동안엔 알파(α)파와 베타(β)파가 감지된다. 8~13㎐의 알파파는 명상할 때와 마찬가지로 평온한 상태에서 나온다. 반면에 베타파는 무언가 열중할 때 감지할 수 있다. 14~34㎐로 파장이 가장 짧고 신호가 강렬하다. 뇌 속 뉴런들이 동시에 한목소리를 내면 바깥으로 나오는 목소리 크기가 커진다고 생각하면 된다. 베타파만 걸러내는 기술로 인간은 생각을 기록할 수 있게 됐다. 이 기술은 상용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일본 연구진은 스마트폰과 연동해 어딘가에 집중할 때 자동으로 이를 촬영하는 장비를 개발했다. 스마트폰에 연결된 밴드 형태의 뇌파 기록장치를 머리에 착용하면 베타파 영역 안에서도 26㎐ 이상 뇌파가 나올 때 5초간 녹화하도록 했다. 뇌파 정교하게 감지하는 기술이 관건가깝게는 컴퓨터나 TV를 켜고 끌 수 있다.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립대와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생각만으로 전원을 켜고, 전화를 걸거나 애플리케이션(앱)을 실행하는 기술이다. 뇌파를 이용해 음악 앱을 열고 드보르자크의 음악을 재생할 수 있다. 다만 ‘드보르자크의 음악을 듣고 싶다’는 생각이 실행으로 바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4지선다형 객관식 문제처럼 네 개의 앱 중 두 번째 앱을 실행하고, 세 개의 재생목록 가운데 첫 번째 음악인 드보르자크의 교향곡을 선택하는 식이다.



 결국 관건은 뇌파를 얼마나 정교하게 감지해 내느냐다. 게임 속 캐릭터를 뇌파로 조종한다고 가정했을 때 두 가지 뇌파만 잡아낼 경우 캐릭터는 좌우밖에 움직이지 못한다. 네 가지 뇌파를 잡아내면 좌우는 물론 앞뒤로 이동할 수 있고, 여기서 두 줄기의 뇌파를 더 잡아내면 상하로도 움직일 수 있게 된다. 이런 방식으로 뇌파를 26개까지 분류하면 영어 알파벳을 기록하는 것도 가능하다. 말 그대로 머릿속으로 메시지를 작성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아예 두개골 안에 뇌파 감지장치를 설치하기도 한다. 뇌파는 두개골이란 두꺼운 벽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신호가 약해지고 노이즈가 생기기 때문이다. 미국인 매튜 네이글(Matthew Nagle)에게 이식된 두뇌 칩이 대표적인 사례다. 칼에 목을 찔리는 끔찍한 사고를 당한 후 전신마비 상태로 살아가던 그는 2004년 ‘브레인 게이트(Brain Gate)’라는 두뇌 칩을 이식받은 후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생각만으로 움직이는 ‘로봇 팔’을 얻은 덕분이다. 로봇 팔을 움직이게 하는 건 뇌 운동피질 표면에 직접 부착된 칩이다. 미국 사이버키네틱스(Cyber-kinetics)사가 개발한 이 칩은 머리카락보다 얇은 미세전극 100개와 4㎜ 크기의 센서로 이뤄져 있다.



‘손가락을 굽혀 사탕을 잡아야겠다’고 마음먹으면 해당 뉴런이 전기신호를 내고, 미세전극 다발을 거쳐 로봇 팔로 전송돼 사탕을 잡게 한다. 장기적으론 루게릭병 같은 신경근육질환자에게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대 의대 의공학교실 박광석 교수는 “BCI의 활용 범위는 매우 넓다. 가장 의미 있고 절실하게 기술발전이 요구되는 분야는 운동 기능과 언어 기능을 모두 상실한 중증 장애인을 위한 의사소통”이라고 말했다.



뇌에서 생각을 끄집어내는 것과 반대로 뇌 속에 생각을 넣는 건 훨씬 더 어렵다. 다만 뇌에 일차원적인 명령어를 주입하는 건 가능하다. 미 하버드의대 영상의학과 유승식 교수와 김형민 박사, 고려대 기계공학부 박신석 교수 연구팀은 2013년 생각만으로 쥐의 꼬리를 흔들게 하는 실험에 성공했다.



뇌에 연결된 전극이 뇌 활동을 감지하고, 컴퓨터는 이를 전기 신호로 바꿔 쥐의 머리를 향해 있는 초음파 장비로 전송한다. 초음파는 운동을 관장하는 중추신경계에 전달되고, 쥐는 꼬리를 흔들기 시작한다. 실험 성공률은 94%였다. 영화 ‘아바타’에서처럼 사람의 생각이 쥐의 뇌로 전달돼 동작을 행하게 한 것이다.



인간의 뇌에 신호를 보내는 실험도 성공했다. 2013년 워싱턴대 라제시 라오(Rajesh Rao) 교수는 자신의 뇌 신호를 동료 교수인 안드레아 스토코(Andrea Stocco) 교수에게 보내 그의 손가락을 움직이게 했다. 라오 교수는 EGG(뇌파기록장치)와 연결된 전극 부착 헬멧을 썼다.



스토코 교수는 오른손의 움직임을 관장하는 좌뇌 운동피질 위에 TMS(자기 경두개자극장치)가 부착된 헬멧을 착용했다. 둘의 뇌파는 스카이프(Skype)로 연결됐다. 라오 교수는 컴퓨터 스크린을 보며 간단한 비디오 게임을 했는데, 목표물에 대포를 쏠 때가 되자 오른손을 움직여 발사 버튼을 누르는 상상을 했다. 이때 멀리 떨어진 실험실에 있던 스토코 교수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오른쪽 검지로 키보드의 스페이스바를 눌렀다. 스토코 교수는 이때의 움직임을 “자신도 모르게 움찔하는 ‘신경성 경련(nervous tic)’ 같았다”고 표현했다.



많은 과학자는 두뇌인터넷을 사물인터넷(IoT)의 뒤를 이을 차세대 인터넷으로 주목한다. 이제 막 걸음마를 뗀 CBI의 경우 구글 글라스로 대표되는 생체인터넷(Internet of Body)으로 충분히 보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머릿속으로 작성된 짧은 메시지를 구글 글라스를 통해 받아볼 날도 멀지 않았다.



 



 



김진구 기자 kim.jin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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