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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가 된 남자, 호랑이를 만든 사람들

중앙선데이 2015.12.20 00:27 458호 24면 지면보기
호랑이가 나오는 영화라-. 사실 반신반의했다. 몇 년간 충무로에서 이야기가 떠돌던 때도, 정작 시나리오를 읽는 사람들도, 아니 그 영화를 찍는 사람들도 계속 의구심을 가졌을 것이다. 그게 가능할까? 그것도 우리나라에서 우리 기술로?



결론부터 얘기하면 가능했다. 스크린 속 ‘대호’(16일 개봉)는 꽤 실감났고 연기 또한 출중했다. 오죽하면 포수 천만덕 역을 맡은 배우 최민식은 “우리 김대호 씨는 기술상이 아닌 신인상을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을까. 촬영장에 선배들 다 나와있는데 코빼기도 안 비치고 카메라 돌아갈 때도 포대를 뒤집어쓰고 있어 욕먹었지만 시사회에서 처음 보여준 그 리얼한 모습에 모든 걸 용서받은 셈이다. 그래서 호랑이를 만들기 위해 땀방울 흘린 이들에게서 대호의 모든 것을 들어봤다.


영화 ‘대호’ 속 한국 호랑이의 탄생

 



부산 호랑이가 조선의 지리산 대호가 되기까지 박훈정 감독은 호랑이 나라로 불릴 정도로 호랑이가 많았던 조선에서 호랑이가 어떻게 사라져 가게 됐는지를 알고 싶었다. 단순히 호랑이와 사냥꾼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은 사라져버린 존재들과 그들이 살아온 삶의 방식을 기록하길 원했던 것이다. 일제 강점기, 모두가 호랑이 포획에 열을 올리는 상황에서 지리산의 산군(山君)님으로 군림하는 호랑이라면 제법 덩치가 커야 했다. 어디 그뿐이랴. 그에 걸맞는 위용과 무게감이 있어야 했고 가족을 잃은 상황에도 굴하지 않고 싸워나가려면 감정선도 살아있어야 했다.

대호얼굴컨셉 스케치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로 들어가라고 했던가. 박민정 프로듀서는 2주 동안 도시락을 싸들고 전국의 동물원을 찾아다니며 넋 놓고 호랑이를 지켜봤다. 호랑이의 식습관과 행동을 기록하고 당시 기록들을 샅샅이 뒤졌다. 구명선에서 호랑이와 공생했던 소년의 모험을 다룬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2012) 팀에도 자문을 구했지만 별 도움을 받지 못했다. 조련된 호랑이와 산군의 이미지는 너무 달랐고 적당한 모델을 찾기도 힘들었다.



그러던 중 기적같이 나타난 게 부산 삼정 더 파크에 있는 시베리아 호랑이였다. 박 프로듀서는 “잘 생기고 건강할 뿐더러 생각보다 조련이 아주 잘 돼어있었다”고 첫 만남을 회고했다. CG(컴퓨터 그래픽)팀은 스틸 카메라와 비디오 카메라로 호랑이의 움직임과 표정을 담았고 콘티를 보며 필요한 동작을 찍었다. 마지막엔 촬영팀과 실제 영화용 카메라를 들고 가서 바람에 날리는 털의 움직임과 빛에 닿는 느낌까지 세세하게 잡아냈다. 그는 “때마침 새끼가 태어난 덕분에 포기하고 있던 새끼호랑이용 소스 촬영까지 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대호의 1차 시안. 조선 호랑이 특유의 왕(王) 자와 대(大) 자가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자료는 차곡차곡 쌓여갔지만 구현은 또 다른 문제였다. 박 감독은 “어차피 다 처음 만들어보는 거 우리 식대로 만들자”고 결심하고 특수효과 업체인 ‘포스 크리에이티브 파티(4th Creative Party)’와 손을 잡았다. ‘암살’ ‘베테랑’은 물론 ‘괴물’ ‘전우치’ ‘박쥐’ 등 다양한 영화에서 시각효과를 담당한 베테랑이었지만 호랑이는 처음이었기에 막막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조용석 VFX(Visual FXㆍ시각적 특수효과) 슈퍼바이저는 “1차 컨셉트 디자인을 보여드렸더니 감독님이 한국 호랑이가 맞느냐고 물으시더라고요. 사실 저희가 준비한 건 한국 종은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한국 호랑이로 가장 큰 사이즈로 만들어 달라는 게 가장 큰 모티브가 됐어요”라고 말했다. 조선 호랑이의 특징인 이마의 임금 왕(王)자와 목덜미에서 등줄기로 이어지는 큰 대(大)자가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거기에 “너무 어려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호랑이한테도 최민식 선배 같은 포스가 느껴졌으면 좋겠다” “상처가 시간이 좀 지난 것 같은 느낌이 났으면 좋겠다” 등 추가 주문이 이어졌다.

완성 디자인. 상처에 에이징(aging)이 가해지면서 특별한 사연을 간직한 느낌이 살아났다.



하지만 그럼에도 뭔가 부족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감독과 논의 끝에 애꾸눈 대호가 탄생했다. 한쪽 눈이 없는 상태에서 그때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면 더 어마어마한 캐릭터가 되지 않을까 했던 상상이 주효한 셈이다.



대호의 윤곽이 잡혀가면서 모델링 작업에 착수했다. 눈코입은 물론 혀, 이빨, 심지어는 항문까지 세세하게 만들어나가는 과정이다. 형태가 갖춰지면 다음은 텍스처 작업. 콧등이나 광채 등 스킨의 질감이 다른 부분을 보정하고 텍스처 위에 털을 올린다. 이후 뼈를 심는 리깅 작업이 끝나면 카메라의 움직임과 CG 플레이트를 매칭시킨다. 조 슈퍼바이저는 “1년 동안 11가지 공정을 거친 끝에 대호가 움직이는 걸 볼 수 있었어요. 특히 영화 특성상 눈이 많이 내리고 피가 튀기고 하는 장면들이 많기 때문에 퍼(Fur) 시뮬레이션에 신경을 많이 썼다”고 설명했다. 스크린 속 길이 3.8m, 무게 400kg의 대호는 이렇게 탄생했다.



호랑이 대역, 지워지기 위해 연기한 배우 곽진석 하지만 이들은 또 한 번 중대한 기로에 놓였다. 어디까지 실사로 하고 어디까지 CG로 갈 것인가. 100% CG로 간다 해도 현장에서 배우들과 교감할 수 있는 생명체가 필요했다. 그때 제작진의 머릿속에 떠오른 게 바로 배우 곽진석(34)이다.



그가 누구인가. 서울액션스쿨 스턴트맨 출신으로 영화 ‘우리는 액션배우다’(2008)로 얼굴을 알렸다. 이후 ‘짝패’ ‘부당거래’ ‘베를린’ ‘신세계’ 등 웬만한 액션 영화에는 빠지지 않고 출연했다. 게임업계에선 모션 액터로 더 유명하다. 게임 ‘블러드 앤 소울’ 등에서 관절 마디마디에 마커를 달고 괴수부터 짐승까지 비인간 캐릭터를 연기한 경험이 충분한, ‘준비된 인재’였던 셈이다.



제작진은 조심스레 얘기를 꺼냈다. 이미 포수대 10명 중 1명으로 캐스팅된 상태에서 얼굴도 나오지 않는 모션 액터를 맡기기가 미안했기 때문이다. 허나 곽진석의 반응은 달랐다. “저는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장편 상업영화, 그것도 이렇게 큰 영화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끌고나가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건 엄청난 거잖아요. 그리고 최민식 선배님이랑 독대할 수 있는 역할이니까 더 욕심이 났죠. 다행히 무술 감독님이 도와주셔서 결국엔 포수 역할과 두 개 다 할 수 있어 정말 행복했어요.”

호랑이 대역을 맡은 배우 곽진석. CG팀에서 지워내기 쉽게 파란색 옷으로 온몸을 감싸고 진짜 호랑이처럼 산을 뛰어다니며 표현했다. 덕분에 상대 배우가 연기하기 훨씬 수월했다는 후문이다.

수 천만덕 역을 연기한 배우 최민식. 실재하지 않는 존재와 대화하고 호흡을 맞추는 모습도 자연스럽게 소화했다.



그때부터 곽진석은 호랑이로 거듭나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이미 각종 운동으로 다져진 몸이지만 아침마다 뜀박질로 동네 뒷산을 올랐고 밤이면 집 마당에 모여든 길고양이를 관찰했다. “원래 동물을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길고양이들이 오면 먹이도 좀 주고 했더니 친해진 애들이 몇 마리 있어요. 물론 동물원에 가서 호랑이도 많이 봤지만 호랑이가 고양이과라 그런지 습성이 비슷한 점이 많더라고요. 특히 앞발을 쓰는 거라든지 움직임이 비슷해서 무술 감독님이랑 상의해 액션 콘티에 반영하기도 했습니다.”



촬영이 시작되자 애로사항이 속출했다. 아무리 탈을 쓰고 빠르게 움직여도 인간의 몸으로 사족보행(四足步行)을 한다는 게 쉽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두 발로 서되 기마 자세로 무릎을 굽혀 대호의 키를 맞췄다. 장소 헌팅도 따라다니고 CG팀 회의에 참석하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제가 제일 위험하잖아요. 산 위로 뛰고 구르고 할 텐데 지형을 잘 파악해 둬야죠. 저 살려고 쫓아간 거예요. 사족보행 움직임을 많이 연구했는데 두 발로 뛰어도 된다니까 조금 허무하긴 하더라고요. 대신 그만큼 감정 연기에 집중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파란 옷을 입은 사나이는 그렇게 대호가 됐다. CG팀에서 지우기 쉽게 하기 위해 파란색 옷을 입었다. 미국 동물원에서 녹음해 온 호랑이 소리가 덧입혀졌지만 그는 매순간 대호처럼 보이기 위해 직접 포효했다. 호랑이가 안 된다면 최소한 짐승처럼은 보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얼굴까지 파란 두건으로 감싸 눈코입이 간신히 보일 정도였지만 그는 산군이 되어 울음을 분출했고 감정이 고이도록 분노했다. “사실 처음엔 다들 이상하게 생각하셨을 거예요. 소리도 안 들어가는데 왜 저렇게 열심히 하나. 그런데 저는 더 열심히 하고 싶었어요. 어차피 제가 지워지는 건 알고 있었던 거고 제가 잘해야 상대 배우의 리액션에 저의 흔적이 남는 거잖아요.”



동굴 장면을 찍는 날 촬영표에 ‘오늘 대호 감정신입니다. 집중할 수 있게 배려해줍시다’라는 문구가 등장할 정도였다니, 호랑이로 보이게끔 하는 데는 성공한 듯 하다. 그의 움직임이 훌륭한 편집용 가이드가 됐음은 물론이다.



신기하게도 영화를 만든 모든 사람들이 입을 모아 “대호는 나 혼자 만든 게 아니다”라고 했다. 최민식은 “영화가 잘 된다면 그 공은 기술팀 몫”이라 했고, 곽진석은 “엔드 크레딧에 나오는 것처럼 저는 대호가 아닌 범 곽진석”이라고 했다. “대호는 저희 170명 작업자 모두와 교감을 했다”는 조용석 슈퍼바이저의 말처럼 모든 배우와 스태프들이 대호라는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달려온 셈이다. 호랑이의 나라에서 사는 우리가 사실 이런 투 샷을 언제 본 적이 있던가. 170억원의 제작비가 아깝지 않을 만큼 감격적이고 감사하다. ●



 



 



글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사진 NEWㆍ사나이픽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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