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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모두가 처리해야 할 문제라는 인식 공유가 첫발”

중앙선데이 2015.12.20 00:21 458호 6면 지면보기
영국의 극작가 버나드 쇼는 자신의 묘비에 이렇게 썼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주저함은 때로 화를 부른다. 장고 끝에 악수가 나오는 것이다. 과감한 결단이 중요한 이유다. 최근 사용 후 핵연료 관리 방안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정부는 곧 ‘사용 후 핵연료 관리 기본계획’을 발표할 방침이다. 여기에는 지난 6월 공론화위원회의 권고안에 따른 사용 후 핵연료의 관리·처분·부지 등에 관한 정책의 큰 그림이 담길 예정이다. 자칫 심각한 사회 갈등으로 비화할 수 있는 문제다.



?중앙SUNDAY는 각계 전문가에게 사용 후 핵연료 문제 해결에 대한 혜안을 들었다. 전문가들은 “친핵·반핵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갖고 있는 모두의 쓰레기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의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사용 후 핵연료 해법’ 전문가 제안



사회(박방주)=사용 후 핵연료 문제 해법을 생각하려면 우선 상황 인식부터 공유하는 것이 좋겠다.



?임마누엘 패스트라이쉬 교수(이하 패스트라이쉬)=미국도 유카마운틴 프로젝트로 시끄럽다. 우리는 지금껏 전기를 써온 데 대한 책임이 있다. 미국은 땅이 넓어 천천히 결정해도 되지만 한국은 포화가 다가오고 있어 심각하다.



?목진휴=내년이면 원자력 도입 60년이다. 우리 사회는 원자력에 대한 시각이 너무 다양하고 일방적이다. 자기가 처한 입장에서만 보는 경향이 있다. 원전에 대한 입장이 어떻든 사용 후 핵연료는 지금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우리가 안고 있는 쓰레기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의 문제다.



?이레나=20년 전 미국에서 공부할 때 폐기물 관리 과목을 수강한 적이 있다. 당시 미국에서는 영구처분을 위한 부지 선정이 거의 다 이뤄지고 있었다. 그런데 아직도 논의는 계속되고 있다. 쉽게 결정될 일은 아니다. 적극적인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 전기요금을 인상한다고 하면 모두들 민감한데, 사용 후 핵연료 처리에 대해서는 아직도 무관심하다. 정부는 국민이 관심을 갖고 참여할 수 있도록 대화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



?박방주=정책을 기획하고 추진하는 주체는 정부지만 국민의 지지 없이는 안 된다. 정부의 입장과 역할이 중요한데.



?목진휴=정부는 고민의 장을 만들어주고 관리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 정부가 전면에 나서면 신뢰가 생기지 않는다. 사용 후 핵연료 관리 방식에 대한 기본계획을 밝힌 뒤 각계 의견을 구한 다음, 이해당사자들이 숙의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발전 주체와 사업자가 투명하게 정보를 제공하는지 관리감독도 해야 한다.



?패스트라이쉬=정부의 역할에 대해 논의할 필요가 있다. 중요한 정책을 다루는 데 있어 순환보직으로 전문성을 갖기 힘들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장기 계획이 없다고 느낀다. 미국에서는 국방에 관한 계획을 세울 때 30년을 준다. 전문성과 중장기 계획이 중요하다.



?이레나=사용 후 핵연료 처리는 전문가 집단의 의견만 수렴해 결정할 이슈가 아니다. 정부는 주도적으로 각각의 다양한 집단과 대화하고 의견 수렴을 할 수 있는 토론의 장을 마련하고 필요한 자료를 제공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박방주=사용 후 핵연료 문제를 풀지 않으면 2024년부터 포화가 시작된다. 우리나라의 존망과 관련된 일이다. 각 절차에서 예상되는 많은 갈등을 어떻게 풀어야 할까.



?목진휴=갈등을 바라보는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 갈등은 민주주의의 기본 요소다. 갈등이 없으면 의견 교환도 일어나지 않는다. 갈등은 숙의의 과정이다. 시스템도 바꿔야 한다. 우리나라는 승자독식 구조다. 첨예하게 대립하다 이기는 사람이 다 갖는다. 그래서 사생결단할 수밖에 없다.



?패스트라이쉬=전제돼야 할 것이 공동체 의식이다. 자기 땅에 핵폐기물 보관을 좋아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공동체 의견으로 결정했다면 따라야 한다. 민주주의 시민은 그래야 한다. 투명성은 다 공개할 수 없는 미묘한 부분을 인정하는 투명성이 돼야 한다.



?이레나=지금까지 많은 논의가 있었고 몇몇 대안이 제시되기도 했다. 원자력공학 전공자로서 볼 때, 정말 최적의 결과인가 의문이 든다. 지금까지 제시된 결과를 믿게 하는 충분히 정리된 자료를 찾기 어려웠다. 정부는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조속히 국민에게 믿음을 줄 수 있는 소통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박방주=갈등에 대한 인식 전환과 공동체 의식을 갖고 목표에 집중하자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다. 또 고려해야 할 점은 목표를 향한 여정과 합의에 대한 구속력이다. 노사정 대타협처럼 하나의 목표를 갖고 구속력을 가진 대타협을 시도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목진휴=남아프리카공화국의 ‘몽플레 콘퍼런스(Mont Fleur Conference)’에서 해법을 얻을 수 있다. 1991년 넬슨 만델라 석방 이후 극심한 갈등에 휩싸인 남아공은 4년여 간의 협의를 통해 20여 개의 극단적 갈등 주체가 두 가지 대전제를 갖고 사회적 목표를 찾았다. ‘갈등과 합의’ ‘과거와 미래’라는 이분법적 전제로부터 ‘합의와 미래’라는 공동의 목표를 도출했다. 민주적 의사결정 메커니즘에 대한 정부와 이해당사자의 노력이 있어야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다.



?이레나=동의한다. 각 그룹의 대표는 집단의 이익을 대표해야 하지만 사용 후 핵연료 처리 문제는 개개인의 이익보다 국가의 안전이라는 목표 아래 합심해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박방주=지난 6월 공론화위원회의 권고 보고서를 토대로 정부가 각계의 의견을 수렴해 ‘사용 후 핵연료 관리 기본계획’을 곧 내놓을 전망이다. 정책의 향방을 알 수 있는 중요한 문서다. 꼭 담겨야 할 핵심 내용은 무엇이라고 보나.



?패스트라이쉬=공유지의 비극이라고, 인간의 본성은 문화처럼 진화하지 않았다. 반면에 과학기술은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이 격차의 핵심은 재정(finance)이다. 기술개발과 지원에 대한 방향이 담겨야 한다. 대의를 생각하는 한국의 고귀한 정신을 담아내야 한다.



?이레나=과학적인 측면에서 ‘사용 후 핵연료 처리 방법에 대한 로드맵’과 ‘기술개발 로드맵’이 꼭 담겨야 한다. 처리 방법에는 영구처분뿐 아니라 중간저장, 임시저장 후 재처리, 국제 공동 사용 후 핵연료 관리시설 마련 등 다양하다. 충분한 검토가 있어야 한다. 방사선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기본원칙에는 세 가지가 있다. 희석시키는 것, 시간을 주고 기다리는 것, 그리고 멀리 떨어뜨리는 것이다. 이 원칙도 두루 고려해야 한다.



?목진휴=공공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이익을 낮춰야 하는 이슈다. 개인이 공공이익을 위해 손실을 감내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세 가지가 필요하다. 적절한 수준의 보상, 적합한 명분, 품위 제공이다. 자랑스럽게 느끼도록 해야 한다.



?박방주=모두 한국 사회가 좀 더 성숙하기를 바라는 마음, 사용 후 핵연료 관리 정책이 연착륙하기를 바라는 목표를 갖고 말씀해 줬다. 역시 하나의 목표를 확인하는 일이 중요하다.



?패스트라이쉬=조선왕조 행정시스템에서 배울 점이 있다. 농업정책이나 녹지보전정책은 100년의 계획이었다. 박근혜 정부가 임기 내에 회피하지 말고 장기 계획을 고려해 추진해야 한다. 한국에 노하우와 저력이 있는데 잠자고 있어 안타깝다.



?이레나=결정 과정에서 국회·언론의 역할이 크다. 국민이 심각성을 인식하게 해줘야 한다. 지금 관련법도 없다. 할 일이 많다.



?목진휴=과학성과 수용성이 같이 가야 한다. 안전성이 담보되지 않는데 주민이 원한다고 부지를 선정할 수 없고, 타당한 지역이라도 주민이 동의해야 한다. 우선 정부가 사고를 바꿔야 한다. 집단이기주의로 보지 말고 갈등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같은 목표를 설정하고,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를 대비해 룰을 정해야 한다. 바로 지금 시작해야 한다.



 



 



류장훈 기자 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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