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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 모두가 찰리와 스누피

중앙선데이 2015.12.20 00:18 458호 32면 지면보기

저자: 찰스 슐츠 역자: 이솔 출판사: 유유 가격: 1만5000원



동그란 얼굴에 언제나 지기만 하는 소년 찰리 브라운, 개집 지붕 위에서 사색을 즐기는 지적인 강아지 스누피, 심술궂고 빈정대는 말을 잘하지만 여린 구석도 있는 소녀 루시, 항상 담요를 끌고 다니는 꼬마 철학자 라이너스, 피아노를 치는 소년 슈로더, 말괄량이 소녀 패티, 날지 못하는 괴짜 새 우드스톡…. 모두 만화 ‘피너츠’ 속 캐릭터들이다.


『찰리 브라운과 함께한 내 인생』

1950년 10월 2일부터 신문에 ‘코믹 스트립(몇 개의 칸으로 띠처럼 이어진 짤막한 만화)’ 형태로 연재를 시작해 작가인 찰스 슐츠가 숨을 거둔 2000년까지 50년 간 총 1만7897편이 만들어졌다.



신기한 건 피너츠 캐릭터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는 사실이다. 만화라는 장르가 어려서는 좋아해도 나이가 들면 시시해지기 마련이고, 귀여운 캐릭터 때문에 여자들은 환호성을 질러도 남자들은 시큰둥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찰리 브라운과 친구들은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친숙하다. 비결이 뭘까. 머리가 큰 3등신 아이들에게서 한없이 평범한 나를 발견하기 때문 아닐까. 남에게 속기 잘하는 어리버리 찰리 브라운은 늘 실패하고 좌절하는 ‘나’와 똑 닮았다. 그 외 친구들은 주변에 꼭 하나쯤 있을 만한 캐릭터들이고. 하는 말마다 얄미운 친구, 맘 편히 기대고 싶은 친구, 하는 일마다 어설퍼서 챙겨주고 싶은 친구….



『찰리 브라운과 함께한 내 인생』은 이 엄청난 ‘피너츠 세계’를 만들어낸 찰스 슐츠의 산문을 묶은 책이다. 어린 시절의 성장 스토리, 만화가로서 보내는 하루 일과, 피너츠 캐릭터 각각의 의미, 개성 있는 에피소드의 탄생 비화 등을 담담하게 적어 놓았다.



피너츠의 초기 주제가 아이들이 갖고 있는 ‘잔인성’에 바탕을 두었다는 고백은 놀랍다. 실제로 동네 개들을 관찰한 바 주인인 아이들보다 개들이 더 똑똑하다며 “개들은 아이들의 바보 같은 행동을 참아주는 것 같기도 하고 머리도 무척 좋아 보인다”고 말하는 대목에선 스누피의 표정이 떠오르면서 쿡쿡 웃음이 난다. 찰리 브라운이 ‘안도감’이라는 감정을 “부모님의 차 뒷좌석에서 잠을 잘 때의 기분”이라고 정의하는 부분은 작가의 어린 시절 기억에서 퍼 올린 대사다. 슈로더가 피아노를 칠 때 사용하는 악보는 진짜 존재하는 곡이라는 내용도 흥미롭다. ‘슈로더가 무슨 곡을 연주하는지 확인해 보는 걸 좋아하는 독자도 있으리라 믿기 때문’이라는 게 이유다.



찰스 슐츠의 글들은 자신이 그리는 만화처럼 둥글둥글하다. 머리칼이 쭈뼛 서는 클라이맥스는 없다. 그저 조곤조곤한 말투로 자신의 이야기와 생각을 가감 없이 들려줄 뿐이다. 마치 슐츠 자신의 글로 쓴 자화상을 보는 느낌이다. 첫 눈엔 특별할 것 없는데 자세히 보니 속눈썹이 유난히 길고, 눈 밑에 작은 점이 있음을 발견하게 되는 것처럼, 슐츠의 작가적 고집과 선량한 철학이 잔잔히 전해진다.



슐츠는 50년 동안 만화를 그리면서 단 한 번도 남에게 그림을 맡기지 않았다. 그 흔한 어시스트, 아이디어를 함께 구상하는 파트너도 없이 혼자 오롯이 고민을 감당해왔다. 누군가 그 이유를 물었더니 슐츠는 이렇게 대답했다. “찰리 브라운의 머리를 그릴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어.” 실제로 그는 50년 간 매일 찰리 브라운의 동그란 얼굴을 그리면서도 둥근 형태와 깊이를 부여해 완벽한 펜 선을 긋는 일을 끊임없이 고민했다고 한다. 매일 똑같은 것을 그리면서도 점점 더 나아지기 위해 생각하기를 멈추지 않았던 그다.



TV로 방영될 철자 맞히기 대회에서 진 찰리 브라운이 너무 우울한 나머지 침대로 향하며 다시는 일어나지도, 야구를 하지도 않겠다고 맹세하는 에피소드가 있다. 이때 라이너스가 찾아와 말한다. “철자 맞히기 때문에 기분이 상했어? 사람들을 실망시켜서 우울한 거지? 근데 찰리 브라운, 그래도 세상은 아직 안 끝났다는 거 알아?” 라이너스의 말을 들은 찰리 브라운은 일어나서 옷을 챙겨 입고 함께 밖으로 나간다. 모두가 구슬치기를 하고 있다. 또 한 번 인생의 패배를 맛봤지만 그렇다고 세상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땅콩’들과 이렇게 연말을 보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글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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