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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 소형 원자로 보급, 세계 곳곳 불 밝히는 게 꿈”

중앙선데이 2015.12.20 00:06 458호 10면 지면보기

김긍구 박사 1959년 충북 보은 출생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학사, 미국 MIT 원자력공학 박사. 스마트원자로 개발사업에 21년간 참여했다.



한국원자력연구원 김긍구(56) 박사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손잡고 세계 처음으로 소형 원전 ‘스마트(SMART)’의 상용화에 나서고 있는 ‘원자력 맨’이다. 세계 원자력계의 이목을 스마트원자로에 쏠리게 한 장본인이다.


[박방주가 만난 사람] 한국원자력연구원 김긍구 스마트개발사업단장

?21년째 스마트원자로 연구에만 매달렸으니 지금까지 그의 연구 인생은 스마트원자로가 거의 전부나 마찬가지다. 현재 직책은 스마트개발사업단장. 스마트원자로의 개발 시작에서부터 총괄책임자가 되는 데 이만 한 세월이 흘렀다.?월 하루 빼곤 연구실에서 살다시피 해스마트원자로란 단일 연구과제가 21년이나 이어지고, 김 박사 또한 이 과제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붙박이로 있는 것도 한국 과학기술계에 남긴 이색 기록이라면 기록이다. 정부의 과학기술 지원 정책이 될성부른 연구과제를 선정해 끌로 파듯 끝까지 지원하면 스마트원자로 같은 히트작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흔치 않은 사례이기도 하다. 스마트원자로가 때마침 김 박사가 단장을 맡은 시기에 꽃을 피우고 있으니 이 또한 그의 복이라는 생각이다.



?그는 책상 앞에 앉아도 스마트원자로, 산으로 홀로 등산을 가도 스마트원자로를 되뇐다. 집에서도 식사 뒤 잠깐 부인과 나누는 대화 시간 외에는 컴퓨터를 켜고 스마트원자로와 관련된 일에 매달린다. 스마트원자로와 ‘결혼’이라도 한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그런 일념이 사우디아라비아 수출로 이어지고 있는지 모른다.



?일반인들이 김 박사의 일상을 좀 더 알면 정말 재미없는 인생을 사는 것처럼 보일 테다. 아침 일찍 연구소로 출근해 밤 10시쯤 퇴근한다. 거기에다 취미도 거의 없어 한 달에 서너 번 등산을 가는 게 고작이다. 일주일에 토요일 하루 출근하지 않는 것을 가족에 대한 서비스로 여긴다.



?필자는 ‘그러고도 이혼을 당하지 않은 것이 참 다행’이라며 농담조로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미국의 이공계 교수들은 오전 6시에 출근해 밤 9시에 퇴근하는 것이 당연시되는데, 그것보다는 좀 낫지 않느냐”라는 게 김 박사의 답이었다.



“남편 놓고 스마트와 경쟁 관계에 있다”한국원자력연구원이 사우디아라비아와 함께 스마트원자로 상용화를 추진하는 데 맞춰 주관 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는 올해 홍보 영상을 제작했었다. 영상 담당자가 김 박사의 부인에게 ‘스마트원자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대답이 걸작이다. “남편(김 박사)을 두고 경쟁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스마트원자로가 우리나라 원자력 역사 50여 년 만에 ‘완전 국산’으로 국제사회의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은 개발에 참여한 수많은 연구자의 노력과 가족의 내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



?최근 세계적으로 개발 중인 소형 원자로는 약 50기로 추정된다. 스마트원자로는 실제 건설에 들어가기 앞서 ‘원전 건설 전 상세 설계’를 지난 9월 시작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1억 달러, 한국에서 3000만 달러를 댔다. 세계 어느 나라를 봐도 이 정도 수준에 도달한 소형 원자로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 때문에 스마트원자로를 자국에 건설하기로 한 사우디아라비아는 국제원자력기구(IAEA) 회의 등 각종 원자력 관련 모임에서 벤치마킹 국가로 급부상했다고 한다. 각국의 관심 원자로인 스마트원자로가 히트상품으로 바뀔 날이 멀지 않은 듯하다.



?올해 초, 박근혜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스마트원자로 수출과 관련해 양국의 공동 파트너십 추진 양해각서를 체결할 때 필자 또한 가슴이 뛰었었다. 스마트원자로 개발사업이 2008년 완전 중단될 위기에 처했을 때 필자가 김 박사를 취재해 그 실상을 널리 알려 여론을 환기시킨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때 청와대와 고위 공직자들이 그런 사정을 제대로 알지 못해 지원을 중단했다면 오늘날 스마트원자로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옛소련서 15개월 동안 소형 원전 연구스마트원자로 개발은 1994년 시작됐다. 김 박사는 당시 소형 원전의 가능성과 비전을 알아보기 위해 핵잠수함 등 군사용 소형 원전을 개발해 이용하는 옛소련(현재 러시아)에 1년3개월 동안 파견됐다. 옛소련이 개방됐기에 가능했다. 미국의 소형 원전은 군사용 특급비밀이어서 구경조차 할 수 없었던 때였다. 김 박사는 옛소련의 소형 원전 개발업체 관계자와 인연이 닿아 다양한 기술과 원자로를 접할 수 있었다. 그때의 결론은 옛소련의 기술로는 한국 등 서방 국가의 원전 안전 기준을 맞출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안전보다는 성능 위주였기 때문이었다.



?김 박사는 한국의 기술을 활용하되 서방 국가들의 원전 안전 기술 기준을 적용해 소형 원전을 개발해야 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한국원자력연구원에 제출했다. 독자 기술개발의 길을 선택하게 된 결정적 계기였다. 스마트원자로가 안전·성능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은 원자로로 평가받는 것은 그때 마련한 청사진에서부터 출발한다. 부처 간 견제로 미국 수출 기회 놓쳐 사실 스마트원자로는 사우디아라비아 수출에 앞서 미국에 수출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원자력을 관장하는 부처가 미래부와 산업부로 나뉘어 있다 보니 서로 견제하다 수출 자체가 무산됐었다. 미국 국립아이다호 연구소장이 미국에 스마트원자로 건설을 의논하기 위해 방한했으나 부처 간 견제심리 탓에 냉대만 받고 돌아간 적이 있다. 그런 모습을 빠짐없이 지켜본 김 박사는 아직까지 그런 호기를 놓친 것을 아쉬워한다. 앞으로도 그런 일이 또 일어나지 말란 법이 없기에 우려하는 기색도 역력했다. 그는 지금 전 세계 곳곳에서 스마트원자로로 생산한 전력으로 전등을 켜는 꿈을 꾸고 있는데 말이다.



?김 박사는 한국원자력연구원에 연구원으로 들어가 8년 정도 근무한 뒤 미국 매사추세스공대(MIT)로 박사과정 유학을 떠났다. 그때 원자력공학을 버리고 의학 쪽에서 각광받고 있던 핵의학으로 전공을 바꿀까 고민했다고 한다. 하지만 해 봤던 것을 끝까지 하자며 기존 전공을 살려 박사학위를 마쳤다. 부모와 자식 간에 통하는 점이 있었을까. 그때 네 살에 불과했던 딸은 아버지가 택하고자 했던 핵의학 전공의가 됐다.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정년은 61세다. 그도 정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입장이다. 혹시나 김 박사가 정년에 걸려 사우디아라비아나 다른 나라로 떠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문득 뇌리를 스친다.



 



 



박방주 교수?sooyong1320@gacho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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