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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 찾아온 왕 자루이 만류도 뿌리쳐…공연 인기에 한때 암표값 190만원까지

중앙일보 2015.12.14 02:09 종합 10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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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루이 전 중국 중앙대외연락부 부장이 탄 훙치(紅旗?왼쪽) 승용차가 12일 오후 4시53분(현지시간) 베이징 민쭈호텔을 떠나고 있다. 왕 전 부장은 지재룡 주중 북한대사와 모란봉악단 공연 문제를 협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른쪽은 지재룡 주중 북한대사의 벤츠 승용차. [베이징=예영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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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루이

“우리도 안타깝습네다.”

북 모란봉악단 철수까지

 12일 오후 6시쯤 북한 모란봉악단의 숙소인 베이징 민쭈(民族)호텔에서 철수 준비를 하던 북측 관계자의 말이다. 중국 정부기관 소속이라고 밝힌 한 남성은 현장을 지켜보며 “이번 공연이 모처럼 찾아온 기회였는데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모란봉악단의 베이징 공연이 전격 취소된 12일 하루를 복기해 보면 아침부터 숙소 분위기가 이상했다. 베이징 도착 후 이틀 동안 특별한 경비가 없었던 것과 달리 사흘째인 이날은 중국 공안 관계자들이 쫙 깔렸고 주차장에는 중국 고위층의 것으로 보이는 검은색 관용 차량 이 즐비했다. 아침부터 공산당 대외연락부를 비롯한 중국 측 당국자들이 호텔에서 북측 간부들을 설득하고 있었다는 의미다.

 정오 무렵 현송월 단장과 함께 군복 차림의 여성 단원 14명이 짐을 들고 바깥으로 나오더니 승용차를 나눠 타고 숙소를 떠났다. 몇몇 내외신 기자가 차로 이들을 쫓았다. 공연 예정 시간(이날 오후 7시30분)보다 너무 이른 시각이었기 때문이다. 50분쯤 지난 뒤 이들은 서우두(首都) 국제공항에 내려 대외연락부 직원 서너 명과 함께 출국장으로 들어갔다. 이날 낮 12시55분 출발 예정인 고려항공 JS152편이 대기하고 있었다. 공연 진행에 차질이 생긴 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남성 위주의 공훈국가합창단은 오후 2시쯤 국가대극원 남문을 통해 공연장에 입장했다.

 숙소에선 여전히 북·중 간 실랑이가 계속되고 있었다. 양측 관계자들이 이따금 들락날락하는 가운데 북한통 왕자루이(王家瑞) 정치협상회의 부주석도 보였다. 지난 10월 류윈산(劉雲山) 상무위원의 평양 방문에 동행했고 지난달 25일까지 12년간 대외연락부장으로 재직했던 그는 이번 공연을 성사시킨 주역이자 지재룡 주중 북한대사와 친분이 깊다.

 고려항공 JS152편 여객기는 이날 오후 4시7분 이륙한 것으로 확인됐다. 예정보다 3시간 이상 늦어진 이륙이었다. 북·중 막판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단원들이 탑승한 상태에서도 만일의 경우 예정대로 공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었던 셈이나 이륙과 함께 가능성은 사라졌다. 그사이 공연장에 입장했던 합창단원도 철수하고 공연 기자재도 수거됐다. 공연 관계자에게 문의하자 “공연이 취소된 게 맞다. 이유는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직후 중앙일보 속보 문자로 취소 사실이 가장 먼저 전해졌고 중국과 일본 언론도 뒤따랐다. 이날 오후 4시50분쯤 왕 부주석이 굳은 표정으로 호텔 로비로 내려와 취재진의 접근을 막더니 총총히 승용차에 올랐다. 호텔에 남아 있던 북측 관계자와 남성 합창단원들은 오후 8시쯤 베이징역으로 들어가 열차 편으로 귀국했다.

 공연이 취소되자 이미 극장에 와 있던 관객들은 아쉬워했다. 중국 국영 매체 기자는 “두 시간 후 공연 시작, 두근두근 흥분”이란 글을 웨이보에 올렸다가 “기자가 아직 공연 취소 사실도 모르느냐”는 댓글로 핀잔을 받기도 했다.

 모란봉악단에 대한 높은 관심을 반영하듯 암표상도 등장했다. 기자가 공연장 입구에 내리자 한 중년 여성이 다가와 “1층 앞 열의 좋은 자리가 있다”며 1만 위안(약 190만원)을 요구했다. “왜 그렇게 비싸냐”고 묻자 “실명제여서 표를 구하기가 정말 어렵다”고 말했다. 멀리 나무 그늘로 데려가 보여준 입장권에는 ‘타인 양도 금지’란 뜻의 중국어 문장(請勿轉讓)이 적혀 있었다.

  베이징=예영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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