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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이산상봉엔 소극적 … 금강산관광 先재개만 요구

중앙선데이 2015.12.13 01:36 457호 6면 지면보기
남북 당국이 어렵게 머리를 맞대고 앉았지만 1박2일 만에 성과 없이 회담이 끝났다. 당초 11일 하루로 예정했던 회담은 차수를 넘겨 12일까지 계속됐다. 당국회담 양측 수석대표들의 첫 발언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황부기 통일부 차관이 서산대사의 한시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를 인용했다. 황 차관이 “첫 길을 잘 내어서 통일로 가는 큰길을 열자”고 말하자, 북측 전종수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서기국 부국장은 “장벽을 허물어 골을 메우고 대통로를 열어나가자”고 화답했다. 겉으로는 훈훈한 분위기였다. 이번 회담은 2007년 5월 제21차 남북 장관급회담 이후 8년7개월 만의 첫 정식 남북 당국회담이다.



하지만 이후 수차례의 접촉에도 성과물을 내놓지 못했다. 회담이 결실을 얻지 못한 것은 의제에 대한 대립과 입장 차이가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남북 당국이 미리 서로 주고받을 선물보따리를 제대로 만들지 못한 상황에서 회담에 임한 것도 이유다.


[전문가 진단] 결렬된 제1차 남북 당국회담

남측이 북측으로부터 받길 원했던 선물보따리는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였다. 부가적으로 환경·민생·문화 등 3대 통로 개설, 비무장지대(DMZ) 세계생태평화공원 조성, 개성공단 3통 문제도 해결하자는 입장이었다. 쉬운 것부터 성과를 거두고 어려운 것은 나중에 논의하자는 입장이었다. 북측은 ‘금강산 관광 재개’ 보따리를 달라고 요구해왔다. 북측은 5·24 조치가 무력화될 수 있는 금강산 관광 재개에 총력을 기울였다. 2016년 5월에 열리는 조선노동당의 제7차 당대회를 앞두고 달러 수요가 큰 듯했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집권 5년차를 눈앞에 두고 남북관계 개선 성과가 필요했던 것도 한 요인이었다.



우려대로 선물보따리 주고받기 실패우려했던 대로 남북 당국은 선물보따리를 주고받지 못했다. 남측 당국 입장에서 5·24 조치가 무력화될 수 있는 금강산 관광 재개를 덥석 던져주기에는 부담이 컸다. 국내 정치적으로 보수 세력이 강하게 반발할 것이 뻔하고 내년 총선까지 염두에 둔다면 더 부담스럽게 느꼈을 수 있다. 금강산 선물보따리를 북측에 주는 것을 5·24 조치의 사실상 무력화로 인식하는 남측 당국 입장에선 이 문제가 결코 간단하지 않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간접적으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는 점도 남측 정부를 주저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남측의 움직임이 매우 제한된 가운데 북측은 이산가족 상봉 문제에 전향적으로 나오지 않았다.



북측은 금강산 관광 재개를 전제로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에 동의한다는 입장이었다. 금강산 관광 재개 없이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를 받는 것에 대한 부담이 북측 당국의 입장을 경직되게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번 당국회담에서 남측은 이산가족 문제의 근본적 해법을, 북측은 금강산 관광 재개를 요구하는 가운데 샅바싸움을 계속했다. 남측의 핵심 요구를 북측이 받아들이지 못하고 북측이 요구하는 것을 남측이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



결국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남북이 풀어내느냐, 선물 보따리를 서로 교환할 수 있느냐 이것이 1차 당국회담의 핵심 관전 포인트였다.



8·25 합의가 나올 때도 그랬지만 워낙 첨예한 사안을 다루기 때문에 남북 당국자들이 만나면 심리적 부담이 크다. 남북 양측 최고지도부의 관심이 워낙 지대하고 실제 청와대와 평양에서 직접 지휘하는 회담이기 때문에 이번에도 회담이 이틀째 계속됐다. 핵심적인 쟁점을 양보 없이 다루기에 대승적 결단이 없으면 애초부터 성과를 거두기 어려운 회담이었다. 5.5대 4.5나 5대 5의 결과를 내놓기 어려운 현재 상황에서 9대 1이나 10대 0의 결과만을 서울과 평양 최고지도부가 요구했다면 성과는 결코 나올 수 없는 구조다.



그래도 ‘신의 한 수’를 찾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번에도 회담 당사자들 뒤에서 대화를 실질적으로 움직인 청와대와 평양이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했을 것이다. 서로 자존심 싸움, 샅바싸움을 심하게 벌였을 것이다. 하지만 내부 정치적인 문제에 남북 현안이 연계돼 문제 풀이를 어렵게 했다. 김정은이 당국회담 개최 전날인 지난 10일 수소폭탄 보유 가능성을 시사한 것도 주변국을 겨냥한 관심 끌기와 대남 기싸움 성격으로 보였다.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여는 묘수는 결국 남북 최고지도부의 통 큰 결단인데 그것이 이뤄지지 못했다.



차기 회담 날짜도 못잡고 갈라서사실 이번 회담은 현 정부 들어 처음 열린 당국회담이자 8·25 합의의 후속조치로서 대화의 동력을 이어가는 중간다리 성격을 띠고 있었다. 이명박 정부 때는 물론이고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남북관계를 풀어가는 데 정례적으로 회담을 한 경험이 전무하다. 이번 당국회담은 이명박 정부 이후 남북이 미리 합의를 해놓고 정례 회담을 시작한 최초의 회담이었다. 당국회담이 남북관계를 풀어가는 그릇으로서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했으나 일단 실망을 줬다.



첫 단추를 제대로 꿰지 못하면 향후 남북관계 진전을 기대하기 힘들다. 어렵게 찾은 당국회담의 기회를 날려버리면 박근혜 정부 임기 내 남북관계 성과는 기대난망이다. 회담 결렬을 넘어 남북이 완전히 돌아서버리면 양측이 또다시 극한적 대치 국면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있다. 북측은 남측과의 적절한 긴장을 통해 북한 내부 주민들의 충성을 이끌어내고 궁극적으로 7차 당 대회의 결속을 위해 대남 긴장관계를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북측은 남측보다 중국과의 경제 협력을 더 긴밀히 하면서 핵 완성도를 높이는 데 집중할 것이다.



이번 당국회담에서 일정한 성과를 냈다면 2016년 남북관계는 상당한 진전을 이룰 것으로 기대됐다. 7차 당 대회를 앞둔 북측도 남북관계를 단절시키기엔 부담이 컸을 것이므로 이번 기회를 잘 살렸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김정은의 베이징 방문을 위해서도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것이 맞다. 그래서 이번 당국회담이 더더욱 중요했고 이후 남북관계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기대했으나 일단 실망을 남겼다. 이번 회담에서 차기 당국회담 날짜도 잡지 못했다. 내년 설날을 계기로 이산가족 상봉에만 합의해도 성공으로 평가 받았을 텐데 매우 아쉬운 대목이다. 한번 만남에서 통 큰 합의가 어려웠다면 금강산 관광 재개를 다음 당국회담에서 매우 전향적으로 논의한다는 정도로 타협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런 절충점도 모색하지 못했다. 남북 당국의 샅바싸움이 길고 골이 너무 깊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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