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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주얼 액티비즘 시대

중앙선데이 2015.12.13 01:24 457호 10면 지면보기

2011년 이탈리아 의류업체 베네통의 ‘언헤이트(UNHATE)’ 광고. 이명박 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이 키스하는 듯 사진을 합성했다.

‘Pepper Spraying Cop’ 패러디들. 2011년 미 UC데이비스의 대학 경찰이 반(反)월가 시위 중인 학생 얼굴에 최루액을 뿌리며 과잉진압한 뒤 등장했다.

비틀스의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음반 커버의 패러디. 그래픽 아티스트 호르헤 아르타호가 푸틴을 비판하는 공연을 했다고 투옥된 러시아의 여성 펑크록 밴드 ‘푸시라이엇’ 석방을 위해 제작했다.

‘YOU HAVE A DREAM, I HAVE A DRONE’.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 목사의 발언을 비틀어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오바마의 ‘드론 전쟁’을 비판하고 있다. [유나이티드 언노운]

‘얼굴 없는 아티스트’ 뱅크시는 분쟁 지역인 베들레헴 장벽에 평화를 상징하는 그림을 남겼다. 화염병 대신 꽃다발을 던지는 ‘꽃을 투척하는 사람’도 그중 하나다.

2차 민중총궐기에 가면을 쓰고 등장한 시위 참가자들. [뉴시스]



지난 주말 서울 광화문은 가면으로 뒤덮였다. 이른바 2차 민중총궐기 참가자들이 정부·여당이 추진 중인 ‘복면금지법’에 반대하는 의미로 갖가지 가면을 쓰고 나타난 것이다. 헐크·산타클로스·스파이더맨·각시탈 등이 등장한 ‘가면 시위’를 취재한 LA타임스 기자 스티븐 보로윅은 “핼러윈보다 많은 가면이 등장했다”고 트윗을 남겼다.


유머 있게 위트 있게… 삐딱하게 권력에 맞서는

지난달 24일 박근혜 대통령이 “복면시위를 금지해야 한다”고 한 뒤 인터넷 여론은 들끓었다. 예능 프로그램 ‘복면가왕’, 베니스의 카니발, 프로레슬링 등 가면과 관련 있는 모든 콘텐트를 끌어들인 농담과 “서울광장에서 가면무도회를 열자”는 제안이 잇따랐다. 어떤 가면이 좋을지 아이디어도 넘쳤다. 누구 것이라 특정할 수 없는 온라인상의 풍자와 해학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톡톡 튀는 가면을 쓴 시위대의 ‘비주얼’은 불법·금지·처벌과 같은 권력의 언어를 조롱했다.



미술평론가 이진숙은 가면 시위를 ‘예술의 민주화’라 풀이했다. 가면으로 자신을 드러낸 행위는 일종의 창작이며, 시위 현장은 대안 문화를 생성하는 공간이 됐다는 것이다.



비판과 저항의 도구로써 비주얼을 사용하는 것은 이미 보편화돼 있다. 비주얼을 새로운 언어로 격상시킨 건 미디어의 발달이었다. 신수진 연세대 인지과학연구소 교수는 “누구나 발신할 수 있는 시대가 되면서 스스로 시각 요소를 선택해 생각을 드러내게 됐다”고 말했다.

광고에 베일을 드리운 듯 검은 페인트를 칠한 ‘프린세스 히잡’의 작업. 프랑스 정부의 ‘부르카 금지법’에 대한 저항 표시였다.



‘비주얼 액티비즘’이라는 용어도 탄생했다. 비주얼 액티비스트로 불리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사진작가 자넬레 무홀리는 “비주얼 액티비즘은 존재와 정체성에 대한 것”이며 “시각 자료와 디지털 미디어를 이용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대안적인 요구 방식”으로 규정한 바 있다.



비주얼엔 장난기가 넘친다. 2012년 프랑스 파리의 지하철역엔 ‘프린세스 히잡’이란 여성 예술가가 출몰했다. 속옷차림으로 광고에 나온 모델 사진에 검은 페인트를 칠했는데 사진 위로 흘러내린 페인트는 이슬람 여성의 전통복장처럼 보였다. 프랑스 정부의 ‘부르카 금지법’을 비판하는 작업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의 ‘HOPE’ 포스터를 패러디해 드론 정책을 비판하는 ‘NOPE’. [유나이티드 언노운]



스페인에 본거지를 둔 ‘유나이티드 언노운(United Unknown)’의 작업도 그렇다. 자칭 ‘비주얼 게릴라’인 이들은 저항의 메시지를 전하면서도 유머와 위트를 잃지 않는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008년 대선 당시 사용한 ‘희망(HOPE)’ 포스터를 패러디해 드론 정책을 비판하는 ‘NOPE’ 포스터를 만드는 식이다.



물론 주목받는 것과 동의를 얻는 것은 별개다. 단지 재미로만 소비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신 교수는 “그럼에도 대중이 창의적 표현 수단을 갖게 됐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며 “이것이 우리 시대가 갖게 된 능력”이라고 평가했다.



 



 



홍주희 기자 hong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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