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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명이 동남풍 바라듯, 베이징선 ‘매장군’ 쫓을 북풍만 고대

중앙선데이 2015.12.13 01:24 457호 11면 지면보기

중국 베이징에 사상 처음으로 스모그 적색경보가 발령된 지난 8일 한 쇼핑몰 앞에서 작업자들이 대형 크리스마스트리를 설치하고 있다. [AP=뉴시스]



중국 베이징 시민들은 겨울이 두렵다. 영하 10도 이하로 내려가는 ‘동장군’보다 더 두려운 게 ‘매장군’이다. 매(?)란 다름 아닌 스모그다. 중국어로 스모그는 안개(霧)와 흙먼지(?)를 결합하여 무매(霧?), 즉 우마이라 부르는데 한 글자로 표현할 땐 ‘?’를 쓴다.


베이징 특파원이 겪은 ‘스모그와의 동거 3년’

매장군을 당할 자는 중국 중원 천지에 아무도 없다. 절대권력자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도, 스모그와의 전쟁을 선포한 리커창(李克强) 총리도 아직은 속수무책이다. 유일하게 매장군을 물리칠 수 있는 건 ‘풍국장(風局長)’뿐이다. 풍국장은 바람을 뜻한다. 스모그가 발생할 때마다 매번 해결해 주는 고마운 바람에게 환경보호국장 벼슬을 달아준 것이다. 지난달 말부터 닷새 동안 기승을 부리며 ‘살인 우마이’로까지 불렸던 초강력 스모그도 밤새 불어온 북풍에 이튿날 아침 거짓말같이 사라졌다. 전날까지 초미세먼지(PM 2.5) 농도가 500㎍/㎥(이하 단위 생략)를 웃돌고 한때 1000에 육박하던 수치가 일순 20 이하로 내려갔다. 그날 아침 인민일보에는 이런 글이 실렸다. “더 이상 풍국장에만 기댈 순 없다.”



풍국장이 매장군을 몰아내도 괴롭긴 마찬가지다. 풍국장이 오면 반드시 매서운 동장군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진퇴양난이 따로 없다. 베이징 시민들은 겨울이면 동장군과 매장군의 연타석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그래도 더 무서운 걸 꼽자면 단연 매장군이다. 필자처럼 일이나 학업 때문에 베이징에 와서 살고 있는 이방인들은 더더욱 그렇다. 추위야 어디 가나 있지만 스모그는 ‘중국 특색’이다.

[AP=뉴시스]



공기청정기·마스크도 무용지물베이징에서 세 번째 겨울을 나고 있는 필자는 특파원 부임 첫날을 생생히 기억한다. 겨울의 끝자락이던 2014년 2월 15일 정오 무렵이었다. 서우두(首都) 공항 청사 밖으로 빠져나오는 순간, “내가 시계를 잘못 봤나” 싶었다. 고개 들어 하늘을 보니 분명 해가 머리 위에 있었다. 빤히 맨눈으로 올려봐도 전혀 눈이 부시지 않았다. 마중 나온 차량 기사에게 건넨 첫마디는 이랬다. “베이징이 나를 환영하지 않는군요.” 그날부터 극심한 스모그가 열흘간 계속됐다. 매일 이렇게 살 생각을 하니 시계 제로의 베이징 하늘보다 우리 가족의 앞날이 더 캄캄해 보였다. 감각이 무딘 나야 그렇다 치고, 성장기인 10대 초반의 아들과 유난히 후각이 예민한 아내가 견디지 못할 것 같았다. 부임 열흘 만에 쓴 첫 칼럼의 제목은 ‘기억하자, 사람은 숨을 쉬며 산다!’였다. 그 무렵 베이징을 방문해 톡톡히 스모그를 맛본 소아과 전문의 출신의 박인숙 의원을 만났더니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가족이 6개월에 한 차례씩 X선 촬영을 하고, 아이는 한국으로 돌려보내는 게 좋겠어요.”



그렇다고 며칠 만에 가족을 귀국시킬 수도 없고 회사에다 발령을 취소해 달라고 탄원할 수도 없는 노릇, 뭔가 구렁텅이에 단단히 빠져든 느낌이었다. 대책 마련이 절실했다. 일단 손쉽게 할 수 있는 건 휴대전화에 앱을 까는 일이었다. ‘베이징 공기’란 이름의 앱은 PM 2.5 농도를 실시간으로 알려줬다. 150 이상이면 Dangerous(위험), 350 이상이면 Hazardous(극히 위험)란 영어 단어와 함께 실외 활동을 중지하라는 경고가 나온다. 한국에선 이런 게 있는지조차 몰랐던 걸 하루에도 수없이 들여다보게 됐다. 외출을 해도 될지, 된다면 마스크를 착용할지 말지도 이 앱이 결정했다.



당장 시급한 건 공기청정기였다. 회사에서 마련해준 것에다 사비를 보태 4대를 방과 거실에 들여놨다. 나름 물샐 틈 없이 설치하고 4대를 풀가동해도 솔직히 효과를 체감하긴 힘들었다. 아무리 돌려도 붉은색 경고등은 좀처럼 꺼지지 않았다. 암만 창문을 걸어잠가도 지름 2.5㎛ 이하의 초미세먼지를 막을 순 없기 때문이다. 그건 마스크를 써도 마찬가지였다. 공기청정기나 마스크의 유일한 효과는 심리적 효과였다.



“종말은 이렇게 오는구나” 생각도두 번째 겨울을 맞자 어김없이 스모그가 닥쳤다. 가장 극심한 기억은 올 1월 초 한류 가수들의 공연을 취재할 때였다. 그날 PM 2.5는 500을 넘었다. 실내체육관 안에서도 눈이 따끔거렸다. 무대 위 가수와 열성 한류팬을 제외하곤 실내에서도 모두 마스크를 착용했다. 여기저기서 기침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래도 지난겨울은 스모그 빈도가 훨씬 줄어 견딜 만했다. 오염공장을 퇴출시키고 강력한 단속을 편 정부 조치들이 효과를 거둔 것처럼 보였다. “역시 중국 공산당은 한다면 해내는구나” 싶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세 번째 겨울이 시작되기도 전에 매장군은 맹렬한 기세로 엄습해왔다. 빈도도 강도도 지난해에 비할 바 아니었다. 클라이맥스는 11월 말에서 12월 2일까지 계속된 닷새간이었다. PM 2.5는 600을 넘어 한때 900 이상 올라갔다. 필자의 경험상 PM 2.5가 500을 넘으면 공기에서 냄새가 난다. 타이어를 태우는 것 같은 냄새가 미세하게 나는데 정확한 정체는 모른다. 어떤 경우엔 대학 시절 늘 맡던 최루탄 냄새가 약간 묽어졌을 때의 느낌과도 비슷하다. 그런 날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는 상투적 표현 그대로다. 육중한 고층 빌딩이 어렴풋이 윤곽만 비치며 전 도시가 잿빛에 잠길 때면 “지구의 종말은 이렇게 오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지난달 14일 고속열차로 출장을 갔다. 스모그는 대도시 베이징만의 문제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도심을 벗어나 농촌 지역으로 접어들자 차창 밖으론 끊임없이 ‘선경(仙景)’이 이어졌다. 먼 산, 가까운 호수가 보일 듯 말 듯 숨바꼭질하며 펼쳐지는 게 마치 그윽한 운무(雲霧)를 배경으로 그린 산수화 병풍을 보는 것 같았다. 고속열차로 4시간을 달려 창장(長江) 근처에 이르러서야 시계가 분명해졌다.



지난주에는 PM 2.5 농도 300 수준의 스모그가 사흘간 계속됐다. 그런데 이변이 발생했다. 이전의 살인 스모그에도 꿈쩍 않던 베이징 정부가 최고단계인 적색경보를 발령한 것이다. 이 때문에 강제적으로 차량 2부제가 시행됐고 각급 학교는 휴교를 했다. 그러자 “이 정도면 견딜 만한데 왜 시민 불편을 조장하느냐”는 불만이 이어졌다. 아이가 다니는 학교도 휴교를 했다가 학부모 항의로 다시 문을 여는 해프닝을 치렀다. “집에 있는 것보다 공기정화 시설이 갖춰진 학교에 보내는 게 아이 건강을 위해 훨씬 좋은데 왜 문을 닫느냐”는 항의였다. 고성능 공기정화기를 가동하는 덕분에 교내에선 PM 2.5 농도가 세계보건기구(WHO) 기준인 25 안팎으로 유지되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학교가 그런 시설을 갖춘 건 아니다.



문제는 올겨울 적색경보를 몇 차례나 더 겪어야 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스모그가 발생하면 베이징 시민들은 북풍을 기다린다.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괴로운 날엔 동남풍 불기를 기다리던 제갈량보다 더 간절한 심정이 된다.



 



 



예영준 베이징 특파원 y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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