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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자라지 않는 내 안의 아이를 찾아서

중앙선데이 2015.12.13 00:42 457호 14면 지면보기

생텍쥐페리



내가 심리학 용어 중에 가장 좋아하는 단어는 ‘그림자’이고, 가장 받아들이기 힘든 단어는 ‘내면아이’였다. 나의 어둡고 부끄러운 모든 면들을 응축한 그림자, 그것은 어쩌면 내가 남에게 보여 줄 수 있는 외면적 성격인 페르소나보다 더욱 나 자신에게 많은 성찰의 기회를 주는 개념이었다.


정여울의 심리학으로 읽는 문학: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그런데 그림자를 그렇게 전폭적으로 받아들인 내가 왜 내면아이는 그토록 거부하려고 했을까. 나는 마음속에 영원히 자라지 않는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유독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어린 시절 엄청난 아픔을 겪은 것도 아닌데 ‘내면아이’라는 단어에 예민하게 반응했을까. 혹시 나의 가장 아픈 그림자가 바로 내면아이였기 때문 아니었을까.



최근에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면서 내면아이의 개념에 대해 그동안 오해해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거릿 폴의 『내면아이의 상처 치유하기』에 따르면, 내면아이는 어린 시절의 자신과는 다르다. 즉 내면아이는 단지 ‘과거의 나’가 아니다. 내면아이란 우리의 인격 중에서 가장 연약하고 상처받기 쉬운 부분이자 이성보다는 감정을 우선시하는 직관적인 본능이다. 우리가 태어났을 때의 본래 모습, 핵심적인 자아, 타고난 인격인 것이다.



내면아이는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오히려 우리 안에 계속 자리잡고 있는 순수한 원형에 가까운 셈이다. 내면아이의 본질을 가장 잘 보여주는 우리말 단어는 ‘구김살 없는’이 아닐까 싶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천진무구한 성격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이들이야 말로 자신의 내면아이와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셈이다.



영어단어의 경우는 ‘intact’일 것이다. 이 단어는 ‘손상되지 않는’, ‘침해할 수 없는’, ‘아직 건드려지지 않은’이라는 뉘앙스를 지니고 있으니. 현실의 비바람에 풍화되기 이전, 세상의 풍파에 시들기 이전의 싱그럽고 보드라운 자아가 바로 내면아이다. 이는 다시말해 ‘어린 시절의 총합’이 아니라 ‘내가 나임을 증명할 수 있는 영혼의 DNA’ 같은 것이다.



내면아이는 내 영혼의 DNA내면아이에 대한 인식이 바뀌자 내가 읽은 모든 작품들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의 『어린 왕자』야 말로 내면아이의 존재를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어린 왕자와 조종사의 대화를 내면아이와 성인자아의 대화로 바라본다면, 『어린 왕자』는 훨씬 더 풍요로운 의미로 확장되어 다가온다. 내면아이와 성인자아의 첫 번째 만남, 그것은 내면아이가 사막 한가운데서 만난 조종사에게 밑도 끝도 없이 ‘양 한 마리만 그려 달라’고 요구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어린 왕자는 조종사가 그린 보아뱀을 ‘모자’라고 하지 않고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이라고 함으로써 성인자아의 잃어버린 꿈을 환기시킨다. 나의 오랜 꿈을 알아봐 주는 자아, 그 꿈을 가장 빛나는 마음의 눈으로 눈부시게 바라봐 주는 사람이 바로 내면아이인 것이다.



내면자아와 성인자아의 두 번째 극적인 만남, 그것은 두 사람 사이의 갈등으로 나타난다. 사막에서 살아남기 위해 비행기를 고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어린 왕자의 목마른 질문에 바쁘다며 외면하는 조종사. 그것은 현실적인 과제에만 매달리며 내면아이의 속삭임을 무시하는 이기적인 성인자아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어린 왕자는 양이 자신의 사랑스러운 장미를 먹어 치웠을까 봐 두려움에 빠지는데, 조종사는 어린 왕자의 그 절박한 마음을 모른 척했던 것이다.



어린 왕자는 그런 조종사의 무심한 모습을 바라보며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아저씨는 사람이 아니고 버섯이야!” 이렇게 소리치며 우는 어린 왕자의 모습은 ‘네 상처 입은 내면아이를 이제 제발 돌봐달라’는 가슴 아픈 절규다. 조종사는 어린 왕자의 눈물에 당황하여 그제야 연장 따위는 내팽개치며 왕자를 꼭 안아 준다. 장미는 괜찮을 거라고, 장미에겐 울타리를 그려 주고, 양에게는 입마개를 씌워 주겠다고. 이렇게 달래며 어린 왕자의 기상천외한 질문들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조종사는 이제 ‘어른들의 문법’이 아니라 ‘어린 왕자의 문법’으로 세상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성인자아가 비로소 내면아이의 부름에 응답하기 시작한 셈이다.



성인자아와 내면아이의 세 번째 만남, 그것은 성인자아가 내면아이를 온몸으로 끌어안는 것이다. 성인자아가 내면아이의 진정한 부모가 될 때 둘의 갈등은 치유의 에너지로 전환될 수 있다. 목마름에 괴로워하며 터벅터벅 말없이 걷는 조종사에게 어린 왕자는 말한다. “사막이 아름다운 이유는 어딘가에 우물이 숨어 있기 때문이야.” 그때 조종사에게 섬광 같은 깨달음이 찾아온다. “집이건 별이건 사막이건, 무언가를 아름답게 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야.” 조종사는 비로소 자기라는 황량한 사막 안에 숨어 있는 눈부신 오아시스를 발견한다. 어린 왕자와 함께할 수 있는 바로 지금 이 시간이 그에게는 눈부신 영혼의 오아시스였던 것이다.

『어린 왕자』삽화



성인 자아와 내면아이가 대화하는 방법잠든 어린 왕자를 품에 안고 세상에서 가장 연약한 보물을 보호하는 임무를 맡은 신의 사도(使徒)처럼, 조종사는 조심조심 사막을 걸어간다. 타는 듯한 목마름도 조난의 고립감도 미래에 대한 걱정도 잊은 채. 비로소 성인자아와 내면아이는 완벽하게 하나가 된다. 자기 안의 어린 왕자를 완전히 받아들이는 것, 그것은 내면아이를 의심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통째로 끌어안는 것이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는 장미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 장미에 끝까지 책임을 지고자 목숨을 걸고 소행성으로 돌아가려는 어린 왕자의 꿈. 바로 그것이 우리가 영원히 지켜야 할 내면아이가 아닐까.



『어린 왕자』는 이렇게 ‘보아뱀을 삼킨 코끼리 그림’을 ‘마음의 눈으로 보는 법’을 잃어버린 모든 어른들에게 잃어버린 내면아이를 되찾는 법, 나아가 그 내면아이와 성인자아가 서로에게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로 대화하는 비법을 속삭인다.



하여 『어린 왕자』를 통해 나는 비로소 되찾고 있다. 상처라는 이름의 벽돌로 쌓아올린 자기방어의 철옹성 속에 웅크린 채 울고 있는 어린 나가 아니라, 그 어떤 두려움에도 굴복하지 않은 꿋꿋한 나, 아무리 힘든 상황 속에서도 타인을 사랑하는 법을 잊지 않는 나, 꿈을 이루지 못한다 해도 결코 실망하지 않을 강인한 나 자신의 본래 면목을. ●



 



 



정여울 ?작가, 문학평론가. 문학과 삶, 여행과 감성에 관한 글을?쓴다. 『내가 사랑한 유럽 TOP10』『그때 알았더라면?좋았을 것들』『헤세로 가는 길』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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