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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를 올챙이로 바꾸는 ‘마법’ 엉뚱·발랄 이튼 스쿨 열등생 작품

중앙선데이 2015.12.13 00:36 457호 25면 지면보기

1 피부세포(적색)로부터 역분화 돼 만들어진 신경세포(녹색).

줄기세포를 연구한 영국의 존 거든(위)과 일본의 야마나카 신야.



효녀 심청은 봉사 아버지를 구하고자 인당수에 뛰어든다. 심봉사가 지금 다시 태어난다면 심청은 굳이 바다에 뛰어들지 않고 그를 병원 안과수술실로 데려갔을 것이다. 줄기세포로 실명(失明)된 눈을 고치는 임상실험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망막 세포뿐이 아니다. 파킨슨 환자의 잘못된 뇌세포, 당뇨환자의 비정상세포를 정상으로 고쳐 사용할 날이 멀지 않았다. 이제 장기가 고장 나면 그 부분의 세포를 줄기세포로 바꾸면 된다. 진시황은 불로초를 찾으러 온 사방에 수많은 신하를 보냈다. 진시황이 1948년에 영국으로 신하를 보냈더라면 15세 소년 ‘존 거든’을 만났을지도 모른다. 그는 ‘21세기 불로초’인 역분화 줄기세포의 원조다. 하지만 그의 중학교 생물 성적은 250명 중 바닥이었다.


[김은기의 ‘바이오토크' ]‘21세기 불로초’의 탄생

 



과학 성적 바닥이던 소년이 노벨상 수상필자는 영국 윈저성을 방문한 적이 있다. 연갈색의 고풍스런 성보다 더 기억에 남는 것은 근처의 675년 전통 ‘이튼(Eton)스쿨’이다. 존 거든은 이곳 학생이었다. 과학을 좋아했던 그였지만, 과학 점수가 모두 바닥이었다. 당시 과학교사가 써 놓은 성적부는 인상적이다. ‘이 학생은 제멋대로다. 교사의 말대로 하지 않고 제 고집대로 한다. 내가 알기로 그는 과학자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웃기는 이야기다. 생물학을 제대로 배우지 않고 과학자가 된다니, 그나 그를 가르치는 사람들 모두에게 시간 낭비가 될 것이다.’ 이 소년이 자라 영국 최고의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가 됐고 2012년 노벨상을 받았다. 노벨상 인터뷰에서 그는 이 성적부를 늘 책상에 두고 있다고 했다. 교사의 말대로 그의 인생이 ‘시간 낭비’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필자는 그의 인터뷰, 그리고 교사의 신랄한 ‘성적부’를 보면서 뜨끔했다. 혹시 내가 같은 일을 저지르고 있지 않나해서다. ‘너같이 작고 약한 녀석이 무슨 축구를 하겠다는 게냐.’ 축구코치의 비평과는 달리 데이비드 베컴은 영국 최고의 축구선수가 됐다. ‘고집이 세서 뭐가 될지 모르겠다’던 8세 아이는 훗날 윈스턴 처칠이 됐다. 아이들은 무엇이나 될 수 있는 원시 상태의 줄기세포다. 거든 박사는 바닥 성적이던 이튼 스쿨 이후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아주 엉뚱한’ 실험을 했다. 개구리를 올챙이로 만들기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는 말이 있다. 어릴 적 별 볼 일 없던 사람이 성공하고 나자 그 시절을 생각 못함을 꼬집는 말이다. 개구리를 올챙이로 만드는 것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미친’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거든 박사는 개구리 내장세포에서 핵(DNA 덩어리)을 꺼냈다. 이 핵을 개구리 난자의 원래 핵과 바꾸었다. 이 난자가 정상대로 자라 올챙이가 됐다. 이 획기적인 실험은 38년 뒤 복제양 돌리가 태어나는 계기가 됐다. 이른바 체세포 복제기술이 시작됐다. 수정란이 분열을 거듭하면서 뇌·간·심장 등 200여 개의 특정세포로 분화(分化)해 태아가 된다. 이런 분화는 ‘일방통행(One Way)’으로 알고 있었다. 즉 특정세포로 되면 더 이상 다른 세포로 변할 수도, 거꾸로 전 단계로 거슬러 올라갈 수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거든 박사는 이것을 뒤집은 것이다. 즉 피부세포도 원시세포(줄기세포)로 되돌릴 수 있음을 보였다. 줄기세포의 새로운 시대가 열리기 시작했다.

1996년에 태어난 복제양 돌리. 체세포 유전자를 핵이 제거된 난자와 결합시켜 수정란을 만드는 방식이 사용됐다.



역분화줄기세포, 난자 없이 세포 리셋심장에 털 난 사람들이 있다. 남이 뭐라 하건 신경 쓰지 않는 염치없는 사람을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 심장에 털이 나면 죽는다. 심장세포는 심장에 맞는 일, 즉 수축을 하고 압력에 견디는 역할을 하도록 특화됐다. 반면 피부세포는 몸을 보호하도록 분화됐다. 하지만 둘 다 모두 같은 수정란에서 출발했다. 즉 같은 DNA, 같은 유전자들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심장세포와 피부세포는 켜져 있는 유전자가 각각 다르다. 즉 2만 개의 인간 유전자 중에서 필요한 것들만 켜 있는 것이 몸 안에 있는 200여 종의 세포다. 거든 박사는 켜져 있는 유전자 스위치를 모두 끈 ‘원시상태’로 돌려놓은 것이다. 원시상태의 세포로는 수정란에서 만든 배아줄기세포가 있다. 무엇이 유전자 스위치를 원위치, 즉 ‘리셋’ 시킬까? 난자벽에 있는 세포가 무슨 신호를 보내는 것은 분명한데 이것만 알면 난자의 도움 없이도 피부세포를 리셋 시킬 수 있을 것이다.



2012노벨상 시상대에는 영국의 거든 박사와 같이 선 사람이 있다. 일본의 야마나카 신야 교수다. ‘걸림돌’은 그의 정형외과 동료의사가 붙여준 별명이다. 20분이면 될 수술을 2시간이나 하고도 똑 부러지게 못하는, 놀림 받던 의사가 노벨상 과학자가 됐다. 야마나카는 피부세포를 원시상태로 만들었다가 심장세포로 만드는 이른바 ‘역분화 줄기세포’를 세계 최초로 만들었다. 그는 난자의 힘을 빌린 것이 아니라 4개의 유전자를 피부세포에 집어넣어서 세포 내의 유전자를 ‘리셋’시켰다. 유전자 스위치는 유전자에 달라붙는 메틸기다. 이 메틸기를 모조리 제거하는 것이 역분화의 한 방법이다.



역분화 줄기세포의 등장은 세계 줄기세포의 판도를 변화시켰다. 난자 유래 배아줄기세포는 분화가 잘되는 ‘센 놈’이지만 윤리 문제, 면역거부 문제가 있다. 반면 골수·지방·피부 등에서 얻는 성체줄기세포는 면역거부·윤리의 문제가 없으나 좀 ‘약한 놈’이라 좁은 범위의 세포로 분화한다. 반면 역분화 줄기세포는 배아줄기세포와 성체줄기세포의 장점, 즉 분화 능력이 좋고 윤리문제·면역거부가 없는 점이 매력적이다. 유럽·미국을 중심의 줄기세포 연구에 일본이 ‘덜컥’ 뛰어든 형국이다. 한국이 황우석 사건으로 주춤하는 사이 일본이 앞으로 치고 나왔다. 일본은 특허를 중심으로 역분화 줄기세포의 단점을 보강하면서 줄기세포 시장을 선점하려고 노력 중이다. 작년 일본은 실명치료의 인간 대상 임상실험을 시작했음을 유명학술지 ‘네이처’에 보고했다.



 

황반변성이 생기면 망막의 상이 제대로 전달 안된다. 왼쪽은 정상이고 오른쪽은 황반변성 시야다.



심봉사가 실명한 시기가 결혼 이후로 알려졌으니 아마도 질병으로 봉사가 됐을 것이다. 실제로 국내 실명의 93.2%가 후천성이고 그 중 58.6%가 질병이 원인이다. 보다 위험한 시기는 나이 들면서다. 30대에 비해 50대는 2배, 60대는 3.2배, 70대는 4.4배로 실명 가능성이 높다. 그 중 황반이 변성되는 실명이 증가하고 있다. 황반은 망막의 가장 민감한 부분이다. 렌즈인 수정체를 통과해서 필름인 망막에 상(像)이 맺혀 뇌로 전달된다. 망막의 가장 바닥에 있는 망막상피세포는 망막 전체를 먹여 살린다. 이 세포들이 노화되거나 자외선 노출, 과도한 스마트폰 사용 등으로 기능을 잃으면 황반변성 실명이 생긴다. 유일한 치료방법은 노화된 황반(망막상피세포)을 새 것으로 바꾸어 주는 것이다. 즉 줄기세포를 망막상피세포로 분화(分化)시켜서 망막에 붙여 살게 하면 된다. 쥐를 대상으로 시행한 황반변성 치료율은 이미 90%다. 줄기세포치료 성공의 핵심은 무엇인가?



 

2 절단척추 줄기세포 치료에 쓰이는 희소돌기 신경줄기세포(녹)와 둥지 주위의 성상세포(청).



줄기세포 주입하면 주변 세포도 ‘회춘’필자가 도시소음이 싫어서 갑자기 농촌으로 내려갔다고 하자. 정착하려면 농부로 변해야 한다. 또 살려는 농촌에 도움을 줄 사람이 근처에 있으면 더욱 빨리 그곳 사람이 된다. 마찬가지다. 망막의 황반세포가 노화돼 실명이 된 경우 줄기세포를 그곳에 ‘이식’한다고 하자. 무조건 그곳에 줄기세포를 집어넣을 수는 없다. 분화가 조절 안 되면 암세포로 변할 수도 있다. 실험실에서 황반의 망막상피세포로 분화시킨 후에 망막에 ‘이식’해서 자라게 해야 한다. 몸 속에 있는 성체줄기세포는 일종의 ‘둥지(Niche)’에서 지내고 있다. 평상시 줄기세포는 둥지에서 조용히 대기하고 있다가 근처 세포가 상처를 입으면 주위 세포들이 신호를 보낸다. 이 신호를 받아 분열·이동해서 그곳의 세포가 된다. 즉 주위 세포들이 줄기세포를 완벽하게 관리한다. 이 원리를 분화 기술에 적용한다.



줄기세포와 원하는 세포를 같은 공간에서 키우면 원하는 세포로 훨씬 잘 분화한다. 서울대 김병수·차국헌 교수팀은 지난 달 나노막을 이용해서 두 종류의 세포가 서로 ‘소통’하도록 해서 실험실에서의 줄기세포 분화 효율을 8배나 높인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또 같이 배양을 하면 이미 쇠약해진 세포도 힘을 얻어서 다시 젊어진다. 농촌의 노인들이 젊은 귀농 청년과 함께 일하면 활기를 찾는 것과 비슷하다.



 

줄기세포치료의핵심은 원하는특정세포로의 분화다.[삽화 박정주]



분화된 특정세포는 세포 노화로 생기는 모든 병에 사용할 수 있다. 2형 당뇨는 전체 당뇨의 95%로 췌장세포의 베타 세포가 인슐린을 제대로 못 만드는 병이다. 2015년 캐나다 연구팀은 ‘줄기세포 리포트’ 학회지에 배아줄기세포를 인슐린 생산하는 베타 세포로 분화시킨 뒤 쥐 췌장에 이식해 당뇨병·비만을 치료했다고 보고했다. 성공적인 쥐 실험 결과로 인간 임상실험 허가도 연이어 받았다. 끊어진 척추신경을 이어주려는 임상실험도 캘리포니아 대학을 중심으로 2014년 시작됐다. 중간 정도 분화된 신경줄기세포로 척추손상부위를 이어주고 주변의 척추신경세포가 잘 자라도록 소통을 도와주는 것이 성공 핵심이다. 이처럼 줄기세포와 특정세포 사이의 소통방법을 잘 알고 그 방법을 만들어주는 것이 줄기세포 치료제 적용의 핵심이다.



한국은 스마트폰 등 응용기술에서 일본에 뒤지지 않는다. 하지만 일본의 과학분야 노벨상은 21개, 한국은 없다. 그동안 한국은 경제부흥을 위한 과학기술이 급해서 성과위주로 내달려왔지 과학지식을 넓히는 기초연구는 뒷전이었다. 존 거든 박사는 이제 82세다. 지난 60년간 ‘생명체가 어떻게 분화하는가’의 한 우물만을 파고 있다. ‘과학을 모르고서 실천에 뛰어드는 사람은 키도 없고 나침반도 없이 배를 몰고 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디로 갈지 도무지 확실하지 않다’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말처럼 기초연구에 장기간 투자하는 나라가 결국 세계를 지배한다.



 



김은기 인하대 교수ekkim@inh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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