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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친구와 벌인 ‘금지된 사랑’의 끝은 …

중앙선데이 2015.12.13 00:36 457호 22면 지면보기

일러스트 김옥



모든 걸 다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중년의 여자가 있다. 밀라노의 대저택, 세 명의 장성한 아이들, 재벌가 며느리인 그 여자 ‘엠마’(틸다 스윈튼)가 시아버지의 생일을 준비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는 동안 카메라는 식탁 위에 놓인 음식과 식기, 가구와 그림, 창밖 풍경을 통해 이 여자의 지난 삶과 현재가 얼마나 풍요롭고 화려했는지 보여준다. 하지만 그녀의 남편이 새로 산 선물이라며 그녀에게 채워주는 화려한 팔찌는 마치 수갑처럼 철컥 소리를 내고, 그녀의 눈빛은 차분하지만 공허함에 젖어 있다.


[백영옥의 심야극장] -16- 영화 ‘아이 엠 러브’

조숙한 아내, 훌륭한 며느리, 자애로운 어머니인 여자는 만면의 웃음을 지은 채 생일파티에 도착하는 가족들을 바라본다. 그리고 파티에서 아들의 친구이자 젊고 아름다운 요리사 안토니오를 만난다. 의욕 넘치는 젊은 요리사는 그녀에게 자신이 만든 음식을 직접 맛보게 한다. 엠마는 입을 벌려 그가 만든 음식을 씹고, 혀를 움직여 그가 손끝으로 만든 미각을 느낀다. 그렇게 젊고 아름다운 남자의 음식은 5월의 햇살처럼 그녀 안에 존재했던 어둠을 밀어내며 긴 시간 감춰져 있던 열정을 일으켜 세운다. 삶과 사랑에 대한 열정, 잃어버렸다고 믿었던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능력’을 말이다.



‘아이 엠 러브’는 밀라노를 무대로 펼쳐지는 21세기 『채털리 부인의 사랑』처럼 읽힌다. 굳게 닫힌 창문과 문으로 가득한 여자의 집에는 부유하지만 지독히 현실적인 남편이 서 있고, 가난한 연인은 깊은 산속에서 채소를 기르며 자신만의 식당을 차릴 꿈에 부풀어 있다. 뒤늦게 찾아온 어린 열정은 그녀를 자꾸만 걷고, 뛰게 하고, 지금껏 살아온 늙은 관성은 그녀를 자꾸만 앉히고, 머무르게 한다.



 



‘나로 살아가는’ 진짜 삶을 체험한 엠마평생 ‘나’로 살지 못하고 누군가의 아내이자 며느리로 기능하며 살아온 여자는 아들의 친구를 만나고 나서야 비로소 내가 누구인지 묻고 말하기 시작한다. 스스로 떠나올 수밖에 없었던 고향 러시아를 말하기 시작한 것도, 향수병에 걸렸을 때마다 만들어 먹던 고향의 수프와 자신의 진짜 이름이 ‘키티쉬’였다는 사실도 안토니오를 만나면서 이야기한다. 그렇게 그녀는 ‘엠마’가 실은 자신의 실제 이름이 아니라, 남편이 지어준 이름이라는 걸 새삼 기억해내는 것이다.



어린 연인은 그녀의 말을 들으며, 길었던 그녀의 머리를 가위로 자르고, 어둠이 아닌 빛이 가득한 풀밭 위로 그녀를 이끈다. 선크림을 바르지 않은 알몸 위로 쏟아지는 햇볕 안에서 그녀는 광합성을 하는 여린 식물처럼 다시 피어난다.



그러나 아들의 친구와 금지된 사랑에 빠졌다는 점에서, 엠마 역시 파국을 피하지 못한다. 달리는 기차에 몸을 던진 안나 카레니나처럼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혹독한 형벌을 받는다. 바로 아들을 잃는 것이다.



친구와의 불륜을 알고, 그녀의 손을 거칠게 뿌리치던 아들은 그만 돌부리에 머리를 부딪치고 수영장에 거꾸로 빠져 죽는다. 그 죽음은 영화 ‘데미지’의 그토록 충격적인 죽음과 교묘하게 겹쳐졌다(‘데미지’에선 자신의 약혼녀와 아버지의 정사장면을 목격한 아들이 충격을 받아 뒷걸음치다가 아파트 난간 위에서 거꾸로 떨어져 즉사한다).



아들의 장례식장에서 망연자실하게 허공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이 흔들릴 때, 남편이 다가온다. 그는 “정신 차려, 엠마. 함께 이겨나가야 해!”라고 말한다. 그것은 어쩌면 현실의 남편이 현실의 아내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로 살아가는’ 진짜 삶을 체험한 그녀에겐 ‘적절함’이라는 말은 더 이상 몸 안에 스며들지 않는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엠마는 남편에게 이보다 더 부적절할 수 없는 말을 가장 부적절한 상황에서 꺼내고야 만다. 아들의 장례식장에서 “당신이 알고 있던 나는 이제 없어요. 나는 안토니오를 사랑해요!”라고 말해버린 것이다.



엠마가 집 현관문을 박차고 나갈 때, 그녀는 누더기라고 해도 좋을 낡은 트레이닝복 차림이었다. 샤넬의 모델이자 뮤즈인 틸다 스윈튼이 입고 있는 추레한 트레이닝복은 질 샌더와 에르메스로 가득했던 아내로서의 삶과는 너무나 극단적이라, 얼핏 그녀가 선택한 새로운 삶이 어떤 것일지에 대한 지고한 예고편처럼 보이기도 했다.



잃을 것 많은 중년 여자와 가진 것 없는 젊은 남자잃을 게 많은 중년 여자와 가진 것 없는 젊은 남자가 만나 사랑에 빠지면 삶은 어느 쪽으로 기울게 될까. 세상이 바라는 거의 모든 걸 가지고 있던 엠마는 많은 면에선 ‘데미지’의 스티븐을 닮아 있었다. 이 영화가 엠마의 충격적인 ‘가출’로 끝나버렸기 때문에, 나는 별 수 없이 스티븐의 마지막 독백을 떠올렸다.



“나는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세상에서 물러났다. 나는 내 인생을 찾을 때까지 떠돌아다녔다. 인생은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알지 못하는 감정 때문에 사랑에 빠진다. 그 외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 그 어떤 것도…나는 우연히 그녀를 한 번 볼 수 있었다. 그녀는 날 보지 못했다. 피터와 아기를 안고 있었다. 그녀는 누구와도 다르지 않았다.”



스물 몇 살, 제레미 아이언스의 마지막 독백을 듣다가 왈칵 눈물이 났었다. 자신이 가진 모든 걸 던지고 사랑했던 여자가, 자신을 끝내 빛으로 이끌었던 뮤즈 같은 그 여자가, 그저 길에서 마주칠 법한 평범한 여자였단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 이 남자의 마지막 독백을 차마 진실이라고 믿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 생애를 걸고 사랑했던 사람이 그럴 만한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면 과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를 한순간 눈멀게 하는 사람이 비겁하고 정직하지 않은 한심한 폭군이라면 말이다.



“당신 자신이 되어라. 다른 사람의 자리는 모두 찼다!”



아름다운 독설가였던 오스카 와일드의 비참함 역시 자신을 배신한 사랑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하지만 십 년이 훌쩍 지난 지금 다시 ‘데미지’를 본다면, 그런 삶이 완벽한 비극처럼 보이진 않을 것 같다. 동어반복 같지만 삶이란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죽는 그 순간까지 우리는 자신의 삶이 어떤 장르에 속해 있는지 알 수 없다. 불행을 견딜 순 있어도, 그것을 피해갈 순 없다. 삶은 알 수 없는 미스터리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나는 엠마가 삶의 어느 순간,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쓰는 상상을 했다. 그녀는 어린 연인에게 또 한 번 버림받을지도 모른다. 다시 한 번 더 실패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이 말하는 그 모든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넘어서 오직 ‘나 자신’으로 사는 경험을 한 사람은, 인생을 건 한 권의 책을 쓸 수 있다. 설혹 그것이 소설이 아니더라도. 나는 그런 용기는 스스로의 삶을 한 편의 ‘시’로 만든다고 믿는다.



SNS를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싫어요’가 존재하지 않는 세계엔 행복이 너무 흔해 발에 차일 정도였다. 내가 먹은 것, 입은 것, 읽은 것, 여행한 곳이 펼쳐지는 삶의 대형 전시장에선 과잉된 행복이, 질투가, 부러움이 넘쳐났다.



얼마 전,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연인을 만났던 한 친구가 헤어졌다. ‘싫어요’가 없는 소셜 네트워크에선 타인의 불행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러나 누구나 부러워하는 삶을 살던 사람의 불행 앞에, 우린 차마 가슴을 쓸어내린다. 나의 행복이 누군가의 불행을 먹고 자란다는 말이 지독하긴 해도, 삶의 진실에 가깝기 때문이다. 오늘 나는 영화 ‘아이 엠 러브’ 페이스북 페이지에 들어가 ‘좋아요’를 눌렀다. 엠마의 불행보단 행복을 바라는 바람으로 말이다. 어쩐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



 



 



백영옥 ?광고쟁이, 서점직원, 기자를 거쳐 지금은 작가. 소설『스타일』『다이어트의 여왕』『아주 보통의 연애』 , 인터뷰집 『다른 남자』 ,산문집『마놀로 블라닉 신고 산책하기』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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