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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 숨겨진 코드를 찾아라”

중앙선데이 2015.12.13 00:33 457호 24면 지면보기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만한 ‘창조적 디자인과 아이디어’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이탈리아의 명문 디자인 스쿨 IED(Institute Europe di Design)의 죠반니 오토넬리 교수는 “주변에 숨겨진 생각(코드)들을 찾아내야 한다”고 답한다.



이탈리아 제노아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한 그는 졸업 후 박물관과 전시 시노그래픽 분야에서 일했다. 이후 패션 분야로 활동영역을 넓혀 살바토레 페라가모, 보테가 베네타, 휴고 보스, 만다리나 덕 등의 브랜드 컨설턴트로 명성을 쌓았다. 현재는 IED에서 아트 디렉터로 근무하며 1년에 3분의 1은 전 세계 디자인·패션 관련 학교에서 ‘창조력과 창작’이라는 주제로 특강을 한다. 지난달 27일 서울 논현동에 있는 패션스쿨 DIAF에서 강의를 끝낸 죠반니 교수를 만나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얻으려면 무엇을 어떻게 훈련해야 하는지’ 물었다. 이날 죠반니 교수는 은발의 머리와 티셔츠를 제외하곤 온통 검정색 차림이었다.

‘위장술 아트’로 유명한 세실리아 페레데스의 작품. 다양한 문양의 배경과 보디페인팅으로 자신을 감추는 위장술 아트는 ‘카무플라쥬’ 패션 디자인에 영감을 줬다.


이탈리아 디자인스쿨 IED 아트 디렉터 죠반니 오토넬로

항상 검정색 옷만 입는다고 하던데 어떤 이미지를 강조하고 싶은 건가. “컬러는 힘이 세다. 누군가 초록색 코트를 입었다면 강렬한 색상 때문에 그 옷을 입은 사람보다 색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검정은 그 반대라서 옷보다 사람이 더 잘 보이게 한다. 패션을 좋아하지만 일단은 사람들이 옷보다 내게 더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웃음)



건축을 전공하고 현재는 패션 분야의 일을 한다. “강의를 할 때마다 패션 디자이너 후세인 살라얀의 ‘테이블 드레스’ 영상을 예로 들며 ‘옷은 건축물이고 공간이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규모와 소재의 차이가 있을 뿐 우리 몸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건축과 패션은 닮은 점이 많다.”

사진가 팀 워커가 촬영한 질 샌더 광고. 이 사진이 창조적인 작품으로 꼽히는 이유는 구도 때문이다. 모델이 입은 가로·세로 줄무늬 옷에 맞춰 사진 속 하늘과 벽돌담이 수평을, 벽난로와 앵무새 걸이가 수직을 이루고 있다.



나만의 창작력과 영감을 얻기 위해 필요한 요소라면.“‘열정, 호기심, 관찰력’ 3가지가 필요하다. 열정은 24시간 숨을 쉬듯 어떤 대상이 내 삶의 전부가 돼야 하는 상태를 말한다. 그 상태가 돼야 주변에 숨어 있는 ‘생각(코드)’을 찾아낼 수 있다. 호기심과 관찰력은 남과다른 ‘관점’을 갖기 위해 꼭 필요한 요소다.”



다른 사람과 ‘다르게’ 보는 연습은 어떻게 하나. “주어진 것을 그대로 인지하지 말고 다르게 상상하는 훈련을 해라. ‘이럴 때 나라면 어떡할까?’라는 질문도 자주 해라. 많은 디자이너들이 새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위해 무드 보드(mood board)를 만든다. 자신의 호기심을 이끌어낸 여러 사물과 풍경들의 사진을 붙인 판인데 이것을 남다르게 비틀어 보고 나만의 방식대로 상상하며 찾아낸 ‘생각(코드)’이 바로 디자인의 영감이 된다.”

프랑스 패션 디자이너 장 폴 고티에의 의상. 부채를 머리에 꽂는 스페인 집시 의상, 젓가락 같은 막대를 머리에 꽂는 일본 게이샤의 머리 장식, 눈을 빼고 모든 걸 가린 아랍 여성들의 부르카 의상 등 세계 여러 나라의 고유한 문화를 적용시켰다.



강의에서 ‘지금의 사회현상을 이해하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했다. “동시대의 현상을 인지한다는 건 모든 프로젝트의 기본이다. 하늘 아래 전혀 새로운 창조란 극소수일 뿐, 기존의 것을 개선하는 일도 창조의 영역으로 봐야 한다. 예술·패션·사진·디자인·광고 등 분야를 막론하고 현재 사회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인식하는 일은 새로운 영감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중국 베이징에선 스모그 현상이 심각해서 많은 사람들이 마스크를 자주 착용한다. 이건 현재 베이징의 심각한 사회 현상인데, 누군가는 이 현상을 간파하고 ‘밋밋한 마스크에 표정이 있다면?’이라는 상상력을 더해 마스크 패션을 만들기 시작 했다.”



현대 남성들이 꽃무늬 의상을 즐겨 입게 된 이야기도 흥미롭다.“92년 비디오 게임 ‘툼 레이더’의 라라 크로포드 팬덤을 기점으로 서바이벌·전쟁 비디오 게임이 젊은이들의 문화를 장악했다. 이 현상은 2000년대 초 밀리터리 룩과 카무플라쥬(위장술을 위해 군복에 적용된 패턴·일명 개구리 복) 유행을 만들었다. 패션 업계의 이 현상은 다시 ‘위장술 아트’라는 예술 분야의 발전을 부추겼고 쿠사마 야요이와 루이비통이 만들어낸 ‘물방울 카무플라쥬’를 비롯해 다양한 무늬의 옷을 창조하는 기반이 됐다. 그 결과 최근엔 남자들도 꽃무늬 옷을 자연스럽게 입게 됐다. 그들에겐 ‘여성스러운 꽃무늬’가 아니라 군복 패턴의 일종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주변에 숨은 코드를 읽으려면 기본적인 인문·교양 지식이 필요하다. 무엇부터 공부할까.“역사·문화·예술·정치·사회 등에 대한 지식이 많을수록 남들은 못 보는 것을 찾아낼 수 있다. 하지만 한꺼번에 모든 걸 습득할 순 없고, 우선 영화에서 도움을 얻어라. 영화 안에는 모든 것이 있다. 스토리에 필요한 시공간을 만들기 위해 예술·의상·건축·인테리어·가구·음악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정말 많은 공부를 한다. 그들이 만든 것을 보면서 우리는 ‘왜 그랬을까’라는 의문을 갖고 그 부분부터 공부하면 된다. 두 번째 방법은 여행이다. 낯선 곳에서의 색다른 경험은 남과는 다른 관점을 갖는 데 정말 큰 도움이 된다. 보이는 만큼 알게 되니까. 세 번째 방법은 페이스북 좀 그만할 것. 관심 분야를 관찰하고 상상하고 공부하는 것만으로도 바쁜데 왜 남에게 내 경험을 전달하고, 남들도 다 보는 감동 없는 사진들을 보느라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는지 모르겠다.” ●



 



 



글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사진 전호성 객원기자, 구글 이미지 캡처, 장소 까페 ?애술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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