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뇌가 자신을 사랑하면 거침없이 기억을 왜곡

중앙선데이 2015.12.13 00:21 457호 29면 지면보기
우리는 낯익은 사람을 편안하고 친근하게 느낀다. 어떤 사람이 익숙하다고 느끼면 우리의 뇌는 상대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추가적인 인지자원을 소모할 필요가 없다. 이 때문에 인지적 편안함을 느끼고 감정적 호감으로 쉽게 연결된다. 익숙함이 생성하는 감정적 호감은 상대와 직접적인 접촉이 없어도 발생한다. 가령 어떤 사람이 TV에 자주 출연해서 대중에게 익숙해지면, 사람들은 실제 만나 본 적이 없어도 그 사람에게 친근함과 호감을 느끼기 쉽다.



익숙함을 호감으로 연결하는 것은 인지적 노력의 결과가 아닌 무의식적 반응에 가깝다. 육아 전문가들에 의하면 세탁기나 진공 청소기 같은 소리들은 아기들을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이 소리들은 아기들이 엄마 뱃속에서 들었던 몸 안의 소리와 닮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최승호의 ‘생각의 역습’

누구에게나 가장 익숙하고 안전한 사람은 바로 ‘자기자신’이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자신과 관련된 것이나 자신과 비슷한 상대에 감정적으로 더 끌린다. 어느 실험연구에서 남성과 여성을 대상으로 사전접촉 없이 이성의 얼굴사진만 보도록 한 후 호감도를 측정하였다. 실험 결과, 참가자 모두 자신의 얼굴이 합성된 이성의 얼굴사진을 가장 선호하였다. 물론 실험 참가자들은 자신의 얼굴이 사진에 합성됐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우리의 뇌는 자신에게 중요한 정보에 더 많은 인지자원을 투입한다. 이 때문에 우리의 뇌는 자신과 관련 짓는 작업을 할 때 더욱 활발하게 작동하며 더 잘 기억한다. 동일한 수준의 정보라도 우리의 뇌는 자신과의 관련 여부에 따라 다른 비중으로 처리한다. 또한 자신과 관련된 기억은 대부분 자신에게 유리하게 재구성되기 쉽다. 즉 자기애(愛)로 인한 기억의 왜곡은 불가피하다.



자신에 대한 깊은 관심으로 우리의 뇌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정보를 늘 자신과 관련 지어 해석하는 데 탁월하다. 신문에 나오는 오늘의 운세나 심리 테스트 결과물이 모두 내 이야기 같은 것은 운세나 심리테스트 결과에 부합하는 기억을 스스로 찾아내기 때문이다. 한 연구에서 실험에 참가한 대학생 모두에게 다음과 같은 심리 테스트 결과를 똑같이 알려주었다. “당신은 타인이 당신을 좋아하고, 자신이 존경 받고 싶어하는 욕구를 갖고 있습니다만, 스스로에게는 다소 비판적인 경향이 있습니다.” 실험 결과 학생 대부분이 이 테스트 결과를 자신의 이야기라 생각하였다. 누구나 테스트 결과와 관련 지어 해석할 수 있는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뇌는 자신에게 중요한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이 때문에 자신에게 중요한 기준으로 상대를 탐색하고 평가하려 한다. 즉 우리는 타인을 평가할 때 오히려 자신의 본 모습과 마주한다. 반대로 상대가 정한 기준은 나보다는 상대에게 중요한 것이며, 상대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려준다.



자기애는 자신감을 높이고 자신과 관련된 기억을 긍정함으로써 장기 생존본능에 부합한다. 하지만 자기애가 과도하게 넘치면 내가 나에게 신경 쓰듯 남도 나에게 신경 쓸 것이라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 이 때문에 항상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피곤한 전시인생’을 자처하기도 한다. 하지만 타인 역시 자신에게 충실하기 때문에 나에게 신경 쓸 여력이 없다.



세상은 자기애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공존하기에 같은 경험도 다르게 기억한다. 자신을 긍정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자신의 기억마저 무작정 긍정해서는 안 된다. 자신을 사랑하는 뇌는 기억의 왜곡을 주저하지 않는다.



 



최승호



도모브로더 이사 james@brodeur.kr

구독신청

공유하기
광고 닫기